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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May 02. 2023

훈자(Hunza)의 아침

조식 풍경 및 훈자의 신성한 바위(Haldeikish) 이야기

 아침에 눈을 떴는데, 생각보다 덜 춥다.


 일단, 밤 새 전기난로가 방안 공기를 조금이나마 데웠고 햇살이 대지를 복사열로 직접 데우기 시작하니 기온이 빠르게 올라간다. 이 정도면 패딩 없어도 얼어 죽진 않겠는걸? OK OK.


정말 정말 추웠지만, 전망 하나만큼은 끝내준 호텔방. 레이디스 핑거 피크가 바로 코앞에 보인다.
호텔방 바로 앞의 초절경 테라스. 여기서 술 마시면 취하지 않을 것 같구만 한 번도 즐겨보지 못하고 온 게 좀 아쉽다.


 호텔 조식이 패키지로 포함되어 있다. 평소엔 아침을 안 먹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지만, 돈이 아까우니 뭘 주는지 구경이라도 해보자.



 파키스탄 기본 식자재를 최대한 이용하면서 전 세계 여행객들이 크게 호불호가 없을만한 글로벌 스탠더드 조식을 제공한다. 토스트, 짜파티, 잼, 버터, 커피, 짜이, 녹차, 계란 프라이, 오믈렛, 쌀죽, 야채수프, 말린 사과, 시리얼, 쥬스 등 없는 거 빼곤 대충 다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풍광 하나만큼은 충분히 방값을 했다. 아무것도 안 먹고 창밖만 바라봐도 배가 부를 지경.


천하절경일세, 절경이야...
호텔 입구. 세계 각지 여행객들이 다 보인다. 나름 이 동네 고급호텔 맞는 듯?


 나는 딱 오믈렛 작은 조각과 계란 프라이 하나에 녹차 한 잔만 곁들였다. 예전 같으면 "본전 생각"에 식욕이 있든 없든 "배가 터져라" 먹고, 티백이나 과일잼 등을 주머니에 더 챙겨 나왔어야 마음이 편했는데 나이가 드니 배는 고프지 않을 만큼 가볍게 먹는 게 최고라는 진리를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나름 건강칼럼니스트가 부캐 아닌가. 헛헛헛.(심지어 힘 빼고 솔솔솔 쓴 건강칼럼이 파키스탄 스토리보다 훨씬 잘 팔린다...ㅠㅠ)


 가벼운 아침을 끝내고, 어제 그 가이드님과 기사님, 같은 프라도 차량을 다시 만나서 출발.


뭘 보소? 어디서 왔소?


 아주 몽환적인 눈빛을 보내는 소 님. 엇, 그러고 보니 쟤네들 털이 아주 기다랗고 고급지다. 가이드님, 쟤들 이름이 뭔가요? 아, 야크입니다. 그렇구나. 뿔이 크고, 털이 긴 친구들이 야크구나.


다들 여기 주목. 여기를 봐주세요~ 찰칵.


 온순한 야크들이 자세를 딱 취해주니 아주 목가적인 사진이 나왔다. 달리던 차에서 차량 유리창을 관통해서 스마트폰 줌으로 당겨 찍은 사진이 이 정도인데(그래서 화소가 조금씩 깨진 게 보임..ㅠㅠ), 작정하고 DSLR로 찍으면 사진작가 해도 되겠다. 사방팔방이 엽서사진 뷰. 왜 사람들이 "훈자~ 훈자~" 하던 건지 알겠다.


여기저기 찍으면 다 엽서컷. 심지어 DSLR도 아니고 그냥 작가직찍 스마트폰 사진임.
뭐 하나 버릴 사진이 없네. 물 빛깔도 에메랄드색.
반쯤 가렸으니, 괜찮겠지? 이런 깨끗한 사진에는 마스킹하면 안 될 것 같다. 풍경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


훈자의 신성한 바위. 동물 모양의 암각화가 많다.


옛날에 있었던 것 같은 입간판. 구글에서 긁어옴.


훈자의 신성한 바위 - 길기트 발티스탄 정부
이 동물 조각의 대부분은 그 지역이 주민들로부터 신성시되었을 때 만들어졌습니다.


 내가 갔을 땐 있었어야 할 입간판 자체가 없었는데, 입간판 정보가 너무 성의가 없어서 그랬던 건지 치워지고 없었다.


잘 안 보이실 테니 200% 확대. 잘 보면 다리 네 개인 동물 모양들이 보인다.


 훈자의 신성한 바위 또는 할데이키시(Haldeikish)는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있는 암각화의 초기 유적지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파키스탄 길기트 발티스탄의 문화유산입니다. 바위에 새겨진 조각은 서기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바위는 훈자 강 동쪽에 있는 언덕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장소는 가니쉬 마을과 아타바드 호수 사이의 주요 카라코람 고속도로(KKH)에 있습니다. 그 바위들은 한때 잘 만들어진 돌계단으로 접근할 수 있었고 일련의 불교 동굴 대피소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이 산악 지역은 극심한 날씨로 몇 가지만 보존된 채 시간의 황폐함을 겪었습니다. 그 바위들은 파키스탄 길기트-발티스탄의 주요 관광 명소 중 하나입니다.

Haldeikish라는 이름은 바위 표면을 따라 흩어져 있는 Ibex의 조각들이 있는 '많은 수컷 Ibex의 장소'라는 뜻으로, 이 지역에 야생 Ibex가 풍부하다는 메시지를 모든 여행자들에게 보냅니다. 할데이키시에는 실크로드 '많은' 여행자들이 쓴 박트리아어, 소그드어, 카로슈티어, 티베트어, 중국어, 브라흐미어로 된 수천 개의 암각화가 있습니다. 이 암각화들은 훈자 지역을 거쳐간 다양한 문화 교류를 보여주며, 서기 1천 년부터 이 지역 전체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Sacred_Rock_of_Hunza#cite_note-2


 나는 고고사학자가 아니라서 잘 모른 채로 여기저기 정보를 긁어다 대충 해석했는데, 그러니까, 실크로드 여행자들이 각자 자기 나라 말로 길에다 낙서한 거네??? 한국어는...??? 아직 탄생하기 전이었나 보다.(참고로 한글 창제 연도는 1443년이다. 생각보다 신상이네? 창제일이 기록된 세계유일의 첨단최신문자체계 한글. 나는 한글사용자로서 한글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한문으로 여행기를 쓰라고 했더라면... 안 썼을 거다 99.999%의 확률로.)


대충 찍어도 다 예술이야...
저 멀리 "엄지척" 산이 보인다. 여기선 엄지처럼 보이지만 공식 명칭은 레이디스 핑거 피크.
햐... 스마트폰으로 내가 찍은 사진 맞나??? 맞다. 우기가 아니라 개울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Hunza River.
풍경이 좋으니 모델도 멋있어 보이네...


 그래, 원래 공기는 이래야 정상이다.


 훈자 지역은 매우 춥지만 햇살은 매우 따가운데, 공기가 너무 맑아서 산란광이 없기 때문이다. 저렇게 챙 넓은 모자를 챙겨 간 건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찍는 사진마다 이렇게 예술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빼어난 절경에 더해 너무나 깨끗한 대기질도 한몫했다. 코로나 초창기 중국이 모든 공장을 셧다운 했을 때, 한국 주요 도시의 공기도 덩달아 얼마나 깨끗해졌던가. 그 시절 찍었던 사진을 보면 놀라울 정도인데 요즘 다시 원점으로 다 돌아가버렸다. 저렴하게, 대량으로, 막대한 물량을 공장에서 찍어내야 인류가 행복해지는 건가? 아니다. 깨끗한 공기와 깨끗한 물. 이거 두 개만 충족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해질 거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나라 소득 수준과 비교하면 격차가 많이 나는 훈자 지역이지만 깨끗한 자연환경 하나는 무지무지 부러웠다. 소득 높고 오염된 곳에서 살래 소득 좀 낮지만 굶어 죽을 걱정 없을 정도론 벌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에서 살래 물어보면 나는 당연히 후자.


 아, 그런데, 그건 훈자만 그런 거고, 세계에서 대기질이 가장 안 좋은 도시 1위로는 파키스탄 라호르가 자주 꼽힌다... 다른 파키스탄 대도시도 도긴개긴... 어쨌든 나는 맑은 공기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부럽다.


 신성한 바위도 보고, 사진도 찍었으니 다시 이동.





 현재까지의 여정 기록.



 4월 23일 8시 반에 호텔 조식을 먹고, 9시에 호텔에서 나왔다. 야크 사진을 찍은 곳은 호텔과 차로 4분 거리로 호텔 바로아래 평원지대. "신성한 바위"까지 직선거리로는 1.5km밖에 안 되지만, 꼬불꼬불 이동해서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가니쉬 다리(Ganish Bridge)에서 풍경사진과 독사진을 건지고 신성한 바위(Sacred Rocks)로 이동. 여러 사진을 건지고 9시 반에 다시 다음 목적지로 이동.




 신성한 바위에서 조금만(500m 남짓?) 더 가니, 둥근 첨탑이 나오는데 대체 이건 또 뭔가. 가이드도 잘 모르고 구글에도 이정표 또는 설명이 전혀 안 나온다.(위성사진은 나온다. 찾았다.)



 바로 그 주변이 Ganish 공동묘지라고 나오는데, 그럼 화장터? 잘 모르겠다. 이건 패쓰.



 이동하는 길조차 예뻐서 눈에만 담기 아쉬워 몇 장 사진을 남겨왔다.


햐... 하다 하다 못해 터널 사진까지 예술이네. 어디서 가져온 거 아님. 작가 직찍.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한 터널 안. 터널 사진이 예술적으로 나온 이유는, 터널 안 공기조차 매우 깨끗하고 맑아서 소실점이 끝까지 보이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터널길이가 꽤나 긴 편임에도 불구하고 조명도 환풍시설도 가동하지 않는다. 시설이 없는 건 아닌데, 아마도 매우 열악한 전력사정과, 매우 한산한 교통사정을 감안해서 과감하게 가동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해당시간 이 터널을 건너 간 차는 우리 렌터카 딱 한대뿐이었거든. 오로지 전조등 불빛에만 의존해서 달려야 하는데 때마침 우리 가이드님이 한국영화 "터널"을 재밌게 봤다면서 아주 시의적절한 농담을 던진다...


저, 구할 수 있는 거죠?


 가이드 선생님... 저는 무섭다고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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