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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Sep 10. 2023

나는 왜 글을 쓰는가

글쓰기 게임론

 브런치 마을에 입문한 지도 어언 1년 반 정도 되었다.

 그간 280여 편의 글을 썼다. 평균 내면 대략 이틀에 한 편 정도의 글을 쓴 셈이니 나름 부지런하게 살았다.


 나는 고백하지만 꾸준함이나 끈기와는 거리가 매우 먼 게으른 유형의 사람이다. 뭐 하다가도 재미없다 지겹다 싶으면 곧장 잘 관두고 포기하는 편이다. 안 되는 거 끝까지 붙잡고 있어 본들 그 시간에 딴 거 하는 게 낫다는 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개인별로 케바케니까, 끈기 있게 꾸준하게 잘하는 사람들 폄하할 마음은 전혀 없고 나는 나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단 이야기를 하고팠다. 그래도 인생이 폭망하지 않고 그냥그냥 평범하게 살아지는 걸 보면 이렇게 사는 것도 그렇게 잘못된 방식은 아니라고 우겨본다. 이렇게 사는 방식의 장점이라면 이것저것 다양하게 접하고 주워 담다 보면 삶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지고 생각의 폭도 넓어진다는 것. 그리고 재미가 없으면 때려친다 그랬지 스스로 재미있으면 곧잘 또 잘 중독되어서 헤헤거리며 못 빠져나오기도 하니까 그런 걸 보면 끈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브런치 마을엔 현실 지인의 추천으로 호기롭게 입문했었다.

 흔한 경험이 아닌 해외 주재원 생활을 미주알고주알 글로 엮어내서 세상에 꺼내보고 싶었다. 원래는 파견기간이 끝날 때쯤 파키스탄 생활기를 발간해 볼 욕심이 좀 있었는데 브런치에 내 글을 시험해 보니 도저히 인기가 없는 팔리지 않는 글이란 거 깨닫고 마음 접은 지 오래다. 나는 내 글이 재밌기만 하구만 왜 글이 안 팔리려나. 아무래도 중년 아저씨 초보작가의 글이다 보니 글이 섬세하거나 포근포근하지 못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파키스탄 파견자의 삶에 궁금해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자체 분석 결론을 내렸다.


 브런치 입문 후 한동안은 조회수와 라이킷, 구독자 숫자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안 그래야지 마음먹고 입문했지만 교묘하게 만들어 둔 SNS 중독 장치를 비켜갈 수 없었다. 사실 구독자 더 는다고, 라이킷 더 받는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구만 세간의 관심을 받고 글이 잘 팔리면 인정받는 느낌이 들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된 착각이 들어서 마냥 기분이 좋았다. 포털이나 브런치 대문글로 실리는 날에는 어깨춤이 덩실덩실. 다만 요즘에는 다 잡아놓은 집토끼라고 브런치가 신경을 안 써줘서 그런건가 포털에 가는 빈도가 현저히 줄었고, 포털에 가더라도 한계효용체감법칙이 여기도 적용되는지 예전만큼의 커다란 감흥이 없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틈만 나면 글쓰기를 참 좋아라 한다. 그 글이 읽히든 안 읽히든.


 나는 왜 글쓰기가 좋을까?

 나는 글쓰기가 난이도 높은 퍼즐게임같이 느껴진다.

 글을 쓰던 안 쓰던 머릿속엔 온갖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데, 마음먹고 책상에 앉아서 자음 모음을 키보드로 토닥토닥거리며 글쇠를 하나하나 맞추고 있으면, 머릿속의 막연한 생각지도를 24개의 자모만으로 그려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완성된 글, 잘 짜 맞춰진 백지위의 자모를 보면 1,000개 들이 그림퍼즐을 잘 완성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스스로 퍼즐 문제를 내고 스스로 퍼즐을 완성하고 스스로 칭찬하는 셈. 오늘도 참 잘했어요. 짝짝짝.



 어려서 글쓰기 교육을 받았을 때는 기승전결, 서론 본론 결론 틀을 짜고 분량을 안배하는 등 미리 설계해서 글을 쓰라고 교육받은 기억이 얼핏 나는데 내가 글 쓰는 실전은 그런 거 없다. 머릿속의 생각들이 입을 거치지 않고 손가락을 통해 촤라락 펼쳐지는 그 깔끔한 맛이 좋다. 다만, 이렇게 쓰는 글은 그래도 머릿속에서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해놔서 촤라락 펼쳐질만한 말모이가 머릿속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이며 소설 집필처럼 처음부터 머릿속엔 주제 하나 말고 세부적 장면이 들어있지 않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디테일한 설계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경험상 글쓰기의 부류 중 소설 쓰기가 가장 어려웠다.(단, 어려운 만큼 그만큼의 성취감 역시 더 컸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내 글을 애독해 주시고 댓글을 남겨주시는 브친님들의 공감 역시 글쓰기의 동력이다. 당연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인정에 목마른 존재이므로 이러한 보상장치는 돈이 되든 안 되든 브런치라는 글 중심의 SNS를 지속하게 해 주는 큰 힘이다. 한국인이라곤 몇 명의 회사동료가 전부인 이곳에서 브런치를 통한 소통은 타국살이를 하며 느끼는 외로움과 고국의 향수를 잊게 해 주는 명약이다.


 나는 내 글의 최애독자이다.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운 글들이 많지만 그래도 나는 내 글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 아, 그땐 그랬지 그랬지 어쩜 이렇게 내 맘과 똑같을까 당연하지 내가 썼는데 낄낄 하면서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는다. 미친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진짜 재밌는데 어떡하라고.


 글을 쓰고 내 글을 다시 읽는 게 이다지도 잼난데 어떻게 글쓰기를 끊을 수 있겠나.

 글쓰기는 게임이고 중독이다.

 중독돼도 괜찮은 게, 어차피 하루종일 글 쓸 수는 없고 생업과 휴식에 지장 없을 정도로 충분히 컨트롤도 가능하고 심지어 돈도 한 푼도 안 드니 이보다 좋은 취미가 또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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