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Sep 16. 2023

스마트스터디 엠씨트리플

편리한 자동학습기기

가볍게 써 보지만 가볍지 않은 SF 단편소설입니다.




 서기 20XX년 가까운 미래.


 뇌과학 연구의 권위자 김ㅁㅁ 박사가 창업한 스마트브레인(주)에서 무의식 중에서의 자동학습이 이루어지는 "스마트스터디 엠씨트리플"이라는 학습보조장치를 내놓는다. 특정 알약을 먹고 수면상태도 아닌 의식상태도 아닌 제3의 상태로 의식체계를 이완시킨 후 오토바이 헬멧처럼 생긴 학습장치를 쓰고만 있으면 되는데, 학습자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지식들이 알아서 암기가 되고 어려운 개념이나 공식들의 원리를 깨치게 되는 등 소위 "학습"의 영역을 엄청나게 쉽게 만들어버리는 놀라운 기기였다.



 반신반의하던 소비자들의 놀라운 체험기가 각종 블로그 및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냥 주말 내내 헬멧을 쓰고 누워있었을 뿐인데 수학I, 수학II가 모두 이해가 되어버렸어요"

"영어 젬병이었는데 갑자기 영어가 들립니다. 신기하다 못해 살짝 무서워요. 제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반 등수 절반에도 못 들던 녀석이 갑자기 전교 1등을 했습니다. 커닝한 게 아닐지 선생님들이 조사를 했다는데, 세상에! 시험 사흘 전부터 이 기기만 쓰고 잔 게 다래요. 믿을 수가 없어요."


 이후, 시장에서는 말 그대로 "스마트스터디 엠씨트리플" 구하기 광풍이 벌어졌다. 시험 성적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이 기기를 써서 공부한 학생은 모조리 최상위권을 휩쓸었고 자력으로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들은 도저히 경쟁이 되질 못했다. 대당 가격이 200여 만원에 불과한 이 기기는 중고시장에서 3천만 원이 넘는 웃돈이 붙어 판매되기 시작했으며 그마저 머지않아 판매매물이 씨가 마르게 되었다. 학부모들은 "스마트스터디 엠씨트리플"기기가 출고되는 공장 입구에 텐트를 치고 긴 줄을 서기 시작했으며 정부는 경찰력을 투입해서 구매하는 줄을 통제해야 했다.


 "스마트스터디 엠씨트리플"은 이제 스엠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졌다. 스엠이 만드는 공부력의 빈부격차가 그대로 성적순에 연결되다 보니 가난한 집 아이들이 자력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에 취업하거나 고급 자격을 갖추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영원히 치워져 버린 것이다. 20XX년 국정감사에서 여당 야당 구분 없이 교육부에 스엠이 몰고 온 파장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촉구하는 질문이 쏟아졌으며, 여야는 결국 "스엠 관리 특별법"을 의결하고 "스엠"을 국유자산으로 귀속시켰으며 무단으로 판매하지 못하게 제한하였다.


 판매된 스엠은 모두 국가기관으로 회수되었으며 교육부는 스엠에 일렬번호를 부여하여 모든 학교에 공식적으로 보급하기에 이른다. 이제 빈부의 격차와는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은 노력을 전혀 들이지 않고 지식을 너무나 쉽게 학습할 수 있게 되었다.




 한성고등학교 2학년 기말고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ㅇ 전교 1등 : 278명 공동 1위(모두 만점)

ㅇ 전교 279등 : 한ㅁㅁ(답안지 한 칸 밀려씀)

ㅇ 열외 2명 : 질명으로 인한 시험당일 결석


 사실상 마킹 실수한 한 명을 빼곤, 전교생이 만점이었다. 더 이상 학교에 개인 간 지식의 격차는 있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내신을 어떻게 석차화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고 교육청에 문의를 넣었지만 교육청 역시 제대로 답변할 수 없었다. 아니, 그보다는 선생님들은 이제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지식의 학습은 스엠이 모두 담당하게 되었으며 그 효과가 너무나 엄청나서 1년 배울 분량이면 1주일만 스엠을 가동하면 충분했다. 선생님들이 할 일은 시간에 맞추어 학생들을 스엠 교육장으로 보내는 일과 교육부에서 제작 인증한 스엠 전용 교육콘텐츠 가동 버튼을 누르는 일뿐이었다. 스엠 보급 처음에는 업무강도가 줄어들어 너무나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선생님들 스스로가 학교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말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머지않아 교육부 역시 생활지도, 급식지도 교사와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일부 교사만 남기고 교사의 정원을 대폭 손질하기에 이른다. 이제 기존 학교 교사들은 순차적인 교원감축계획에 맞추어 학교를 떠날 일만 남았다.


 대학 입시 역시 큰 폭의 변화가 생겼다.

 입시제도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전국의 학생이 시험을 모두 만점을 받는 상황에서 시험으로 우열을 가리기가 불가능해졌다. 대학에서는 입학원서를 받아 추첨을 통해 입학생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이제 일각에서는 대학교 무용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스엠으로 모든 지식을 단기에 획기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데 대학교 입학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소리다. 사실 교육부 공무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기존 교육체계와 사회질서를 어떻게 신기술이 보급되는 속도에 맞도록 정리해 나갈지 공식적인 답을 구하기 어려웠던 것뿐이다. 사람들은 점점 대학 진학의 의미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으며 기업들도 더 이상 유명 대학의 대졸자에게 특혜를 베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을 뽑더라도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스엠이 보급된 후 5년이 지나는 기점에서 다수의 대학들은 신입생 지원자를 찾기 힘들었고 스엠 보급 10년 차에는 모든 대학이 소멸되기에 이르렀다. 소멸된 대학의 기능은 고등학교 교과를 강화하여 공교육으로 대체되었다.




 슈퍼 천재들을 양산하는 줄로만 알았던 스엠의 어두운 뒷면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다. 스엠으로 학습한 사람들은 기존 지식을 암기하고 이해하는 것에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지만 스엠으로 학습한 지식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지 않았다. 학습자들은 무의식에서 스엠으로 주입한 지식을 비판이나 의구심 없이 성경말씀과 같은 절대 진리로 인식했다. 그리고 스엠으로 학습한 사람들은 학습된 지식과 매뉴얼에 따르는 일은 매우 잘 수행했지만, 창의력을 발휘하는 일은 도무지 해 내질 못했다. 스엠이 보급된 10여 년 간 국가에 신규 등재된 지식재산권은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스엠 학습자는 기존 사회 유지에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지만 더 이상 진보된 기술을 창조하거나 기존 시스템을 바꾸지 못했다.


 사실, 국가 수뇌부는 스엠의 부작용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를 특급 국가기밀로 취급하였다. 정부의 이념과 통치철학을 주입식으로 주입하고 비판과 창의적 사고력을 제한하는 것이 그들의 권력 유지에 도움이 더 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전 국민의 창의력과 비판능력을 말살하고 전 국민의 스마트 로봇화를 완성하였다. 이제 국가는 1당 독재체제로 변했다. 모든 국민이 더 이상의 변화를 거부하며 기존 시스템 유지만을 바라도록 의식교육이 완성된 탓이다.


- 끝 -

매거진의 이전글 슬램덩크-외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