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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Apr 12. 2024

파키스탄에서 처음 먹어보는 "핵" 불닭볶음면

맵다. 진짜 맵다...

 같이 파견나온 몇 안 되는 직장동료를 제외하곤 한국인이라곤 반경 100km 이내에 한 명도 없는 파견지에서 보안상의 이유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회사 사택에서 등대지기처럼 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한국이 팍 그리울 때가 온다. 연말에는 꼭 한국에 복귀해야지... 그래, 돈도 좋지만 살던 곳이 최고야...


 우수에 젖어 준비한 오늘 저녁은 불닭볶음면.(마침 오늘 한국인 동료들은 죄다 도시로 출타 중... 레알 혼자임.)

 이곳 파키스탄에도 한국산 불닭볶음면이 팔린다. 이곳 파키스탄에서 구할 수 있는 몇 종 되지 않는 한국라면. 한국라면은 생각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린다. 수입 한국산 라면 한 봉지 가격이면 근사한 현지식 외식을 하고도 남는 가격이다.


 어쨌든, 익히 불닭볶음면의 위력을 알기에, 미리 이것저것 사이드메뉴를 준비해 놓고, 마지막에 조리를 시작한다. 우유 대용으로 불이 날 입안을 소화할 막걸리도 준비해 놨고 너무 매운 것만 먹으면 위장을 버릴까 봐 양념하지 않은 양배추와 브로콜리도 삶아놨다. 그렇다고 맨 야채만 먹으면 심심할 테니, 점심에 먹다 남은 짜장 소스랑 같이 마무리하면 딱 맞겠지. 준비 완료.



 오리지널 한국인답게, 불닭볶음면은 한국에서 이미 먹어본 적이 있어 크게 긴장하진 않았다. 다만 먹다 보면 고통지수가 점점 올라올 테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 놨으니 이만하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으니...


 자극적 매운맛을 폴폴 풍기는 불닭볶음면을 한입 와앙~ 흡입하는 순간, 어.... 이거 뭐지? 잠깐잠깐. 스톱. 내가 알던 그 맛이 아닌데? 바로 기침 및 딸꾹질 시작. 옆머리에 샘솟는 땀과 갑자기 흐르는 눈물 콧물. 내가 외국에 사는 동안 매운맛을 멀리해서 자극에 약해졌나? 일단 막걸리로 진정하고 다시 시도. 헉... 이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의 매운맛이 아니다... 근데, 그런데 왜 맛있는 거냐 너...ㅠㅠ 한 입 먹고 얼음 물고 한 입 먹고 막걸리 마시고 하다 보니 반쯤 먹긴 했는데, 이대로 다 먹다간 위장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약한 모습 보이기 싫지만 이쯤에서 타협하자고. 반쯤 남은 불닭면엔 물에 말아먹는 걸로 레시피 변경. 항복. 얼음 띄워 씻어먹자....


매움. 많이 매움.


 와따매... 물에 말아먹어도 맵다 이제... 여기저기서 땀이 샘솟듯 올라온다. 휴지 한 통 다 쓰겠네. 어쨌든, 졸지에 불냉면이 되어버린 불닭볶음면 건더기를 다 건져먹고... 대체 이거 왜 이렇게 매운 건지 제품을 다시 확인하러 간다.


 "핵" 불닭볶음면. 할랄푸드.
파키스탄도 영어권 국가라 타이틀 빼고 몽땅 영어


 급한 마음에 아까 조리할 땐 못 봤었다. 내가 구매했던 제품도 아니었던지라 사전 인식이 전혀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내가 알던 그 매운맛이 아니더라... 오리지널 대비 X3배 매운맛을 파키스탄에서 먹게 될 줄이야. 이 나라 파키스탄도 매운 음식이 있긴 한데, 이 수준으로 매운 음식은 이제껏 찾아본 적이 없었는데 이게 정말 팔리긴 팔린단 말인가? 사는 사람이 있으니 팔긴 팔겠지. 대단하다 한국라면.


 와~~ 그리고 깨알 디테일 할랄푸드. 할랄푸드 인증이란 말은, 재료에 돼지고기가 들어가 있지 않으며, 모든 육고기는 이슬람 율법에 맞게 도축하였다는 인증을 거친 먹거리라는 뜻이다. 무슬림들은 할랄 인증을 받지 않은 음식은 먹을 수 없다.


 볶음라면 먹다 눈물 흘리고 기침하고 딸꾹질한 경험은 처음이긴 한데, 그래도 묘한 만족감과 중독성이 있다. 한국의 매운맛이 그리울 때 그냥 즉효가 되겠다. 아, 그런데 진짜 매워도 너무너무 맵다. 좀 적당히 좀 하자.


 이다음에는 혼자 해 먹지 말고, 한국인 동료들 있을 때 딱 한 두 젓가락 분량 정도만 나눠서 먹어야겠다. 저거 혼자 다 먹는 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


 뭐, 그래도... 핵 매운맛 + 막걸리 조합은 고국에 대한 향수병 치유에는 썩 괜찮은 조합이라고 빡빡 우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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