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2024년 2월 26일 월요일. 오늘 파키스탄 SNS를 뜨겁게 달군 최신 뉴스 하나 소개.
(나름 핫뉴스라 한국 언론 검색도 해 봤는데 아직 없다.)
https://www.geo.tv/latest/532635
일일이 번역해서 읽어보자니 귀찮은 관계로 구글신의 힘을 빌리자.(자동 번역. 외국에 오래 살아도 내 영어실력이 맨날 고만고만한 이유 중 하나는 무료 자동번역 결과물이 썩 괜찮기 때문이다.)
후다닥 전문을 읽고 대강의 이야기를 전하면, 파키스탄의 어떤 여성이 남편과 함께 아랍어 장식이 프린트된 옷을 입고 거리에 나갔다가 이 옷을 신성모독 옷이라고 오해한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공격당하기 직전에 긴급히 출동한 여성 경찰관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출되었다는 소식. 무고한 이 여성을 구조한 용감한 여성 경찰관에게 무공 경찰 훈장이 추천되었다는 훈훈한 마무으리.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옷은 대충 저런 옷이었다고 하던데, 저런 글자를 대체 어떻게 읽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아랍어로 "삶은 아름다워"라는 문자가 적힌 거라고 한다. 종교적 의미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말. 당연히 신성모독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For the record, the words printed on the dress include ‘حياة’ meaning ‘Life’ and ‘حلوة’ meaning ‘Beautiful’, as clarified by the brand in response to a query made by an Instagram user.)
대충 무슨 일이 벌어졌나 왜 그랬나 다시 분석.
파키스탄은 무슬림 비중이 97%나 되는 무슬림 나라. 원래 인도와 분리 독립되던 건국이념 자체가 이슬람 국가 건설이라는 목적으로 출발한 무슬림을 위한 무슬림에 의한 나라가 파키스탄이다. 학교조회 회사행사 관공서행사 전 코란을 암송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사회이며(심지어 내가 있는 지사도 회사행사 전 무슬림 종교의식을 한다), 어느 누구도 절대신 알라에게 신성모독한 짓을 하면 군중재판이 즉석에서 벌어지는 나라다.
사실, 오늘일은 신성모독에 극도로 예민한 파키스탄 국민성과 높은 문맹률이 함께 빚은 참극이다. 가난한 다민족 국가 파키스탄은 문맹률이 대략 50% 정도로 알려져 있다. 국가 공용어가 우르두어이고 상용어를 영어를 쓰지만 펀자브어를 모국어로 쓰는 국민이 가장 많은, 언어부터 통일되지 않은 머리 아픈 나라다.
이슬람 종교 경전은 아랍어로 씐 것들이 많겠지. 그런데, 서민들 중 상당수는 글자를 아예 못 읽지. 길 가다 어떤 여성이 경전에서 자주 보던 글씨가 적힌 옷을 입고 나왔는데, 그중 한 사람이 그걸 보고 "저건 신성모독이다!"하고 외쳤을 것이다. 그러자마자 주변 사람들이 여성을 향해 모여들었을 것이고 이때 참여하지 않으면 신성모독에 같이 동조하는 분위기가 될까 봐 앞 뒤 안 가리고 군중심리 지배를 받으며 폭도로 변해버리게 된 것일 게다. 이상 내가 추측해 본 현장 분위기.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으면 지금부터는 저 옷에 프린트된 문구의 진위가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수의 대중이 이미 "신성모독이 맞다"고 했으니 맞는 거다. 경찰이 제 때 도착해서 저 여성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집단린치의 희생자가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이 나라는 "신성모독" 혐의에 걸려 군중재판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2021년도에도 창시자 무함마드 포스터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공장장이 직원들의 손에 산 채로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112071648001
파키스탄은 이란, 인도와의 영토분쟁, 소수민족의 무장독립투쟁, 외국인 자원수탈 방해테러, 수니파-시아파 간 종교분쟁(같은 무슬림인데 대체 왜 그러니?) 등 나라 곳곳이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곳이다. 여기에, "신성모독" 이슈에 발동이 걸리는 "군중집단린치"까지 잦은 편이니 정말 온갖 위험요소는 다 가진 나라 같다.
오늘 이 이슈로 현지 지인과 대화를 좀 하다가, 그는 이 나라 자국민임에도 우르두어 신문을 절대 사지 않는다고 했다. 가끔, 우르두어 신문에 경전 문구가 실릴때도 있는데 이걸 잘못 취급했다가는 사달이 난다는 것. 실제로 글을 모르는 식모가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군중집단린치를 당한 사건도 있었는데 이유인 즉슨, 경전 문구가 적힌 신문을 대충 버렸다가 군중에게 적발이 되어 현장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 자기는 우르두어는 읽을 줄 알지만 혹시나 실수하게 될까봐 아예 근처에 두질 않는다고.
우리나라에서도 이국적 멋이 있어 그런건지 아랍문자가 적힌 티셔츠나 에코백들이 종종 보이곤 하는데 부디 파키스탄에 그런 거 가지고 오지 마시길. 내 정말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여차하면 사고 날 수도 있어서 당부하는 말이다.
암튼 오늘도 무사히.
아무 일 없이 무탈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