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미르에서 살고 있습니다
매년 2월 5일은 "카슈미르 연대의 날(Kashmir Solidarity Day)"이라고 불리는 파키스탄 기념일이다.
한국하고 대비해 보자면 "현충일" 같기도 하고 "419 혁명" 또는 "519 민주화운동" 같기도 한데, 역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829 경술국치일"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다.
카슈미르... 일단, 말부터 생소하다. 캐시미어라고 하면 더 좀 친숙하려나. 맞다. 캐시미어 = 카슈미르다. 고급 양모의 대명사 캐시미어. 그게 카슈미르 특산물인데, 포도주 이름이 지명에서 따오듯 고급양모 이름도 이곳 지명에서 따와서 캐시미어가 되었다.
카슈미르라는 지명은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있는 국제영토분쟁지역 중 하나인데, 중국도 여기 자기 지분이 있다며 밥숟갈을 얹었다. 정작 카슈미르 사람들은 자기는 인도인도 중국인도 파키스탄인도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며 자치국가 성격을 띠고 있지만, 실상은 중국 통치권, 인도 통치권, 파키스탄 통치권으로 쪼개져서 암묵적인 국경을 유지하고 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소개 페이지 참고.
https://brunch.co.kr/@travelandmap/25
파키스탄은 매년 2월 5일을 잠무와 카슈미르 지역과의 연대의 날로 기념한다.
1990년 이후 인도 보안군에 의해 불법적으로 점령당하고 대규모의 인권 침해를 겪은 잠무와 카슈미르지역의 주민들이 이 연대의 주요 핵심이다. 지난 2019년 8월 5일 인도가 일방적·불법적으로 지위를 변경했다. 이는 인도 정부의 또 다른 범죄 행위이며, 유엔 헌장, 유엔 결의안 및 1948년 인도주의 선언에 대한 심각한 위반이다. 카슈미르 주민들은 이러한 구금 및 포위 중인 환경 속에서도 카슈미르 연대의 날을 연속으로 기념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국민들은 다섯 가지의 목표를 위해 카슈미르와의 연대를 기념하고 있다.
첫째는 인도가 주민들의 의사에 반하여 불법적으로 카슈미르 지역을 점령한 2019년 8월 5일 이전으로 카슈미르 지역의 지위를 회복시킬 것을 인도 정부에 역설하는 것이다.
둘째, 잠무와 카슈미르 불법 점령지에서 인도의 집단학살을 중단하는 것이다.
셋째는 점령지역에서 불법적으로 인구 통계학적 변화를 시키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고
넷째, 카슈미르 분쟁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것이다.
다섯째, 이 오랜 분쟁의 해결과 카슈미르인들의 포기할 수 없는 자기 의사 결정권을 인정해야 하는 유엔이 국제기구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출처 : 주한 파키스탄 대사관, 부분발췌
카슈미르 사람들이 크게 힘이 있는 민족도 아니고, 경제력도 약하고, 군사력도 없다시피 하고, 가진 자원도 빈약하니 사실 국제적으로 별로 관심을 받는 지역은 아니다. 태반의 한국인들도 이런 곳이 있는 줄조차 모르고 살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곳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영토분쟁지역"으로 분류되어 정확한 국경선도 없는 곳이며 인도와 파키스탄(한술 더 떠 중국까지) 서로 자기 땅이라며 싸우는 곳이다.
2019년 8월 5일, 인도 정부는 인도령 카슈미르의 자치권을 임의로 박탈하고 인도 직할지로 편입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반발하는 카슈미르 주민들은 대규모 인권침해, 폭행, 감금, 구금, 고문에 시달렸다. 언젠가 다녀온 이슬라마바드 역사박물관에는 "카슈미르 사진전"이 개최되고 있었는데, 나는 마치 우리나라 광주사태 역사기록물을 보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국교가 힌두교인 인도는 인도령 카슈미르에 살고 있는 무슬림 주민들의 공동체를 파괴하고 강제이주 시키며 그 자리에 힌두교도들을 이주시키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독립 이래 무려 30여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학살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다(다만, 양 쪽의 주장이 모두 다르며 정확한 통계는 확인할 수 없다).
카슈미르 준국경지대에는 지금도 긴장도가 매우 높으며 연중 발포 및 사망사고의 빈도도 적지 않다. 2019년도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전투기까지 출동하여 인도 전투기 2대가 파키스탄군에 의해 격추되는 사태까지 일어났고 양국 간 핵전쟁 직전까지 갔었다.
내가 겪어본, 또는 지금 같이 겪고 있는 카슈미르 사람들은 모두 순박하고 착하다. 그들은 스스로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단지 카슈미르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삶이 불안하고 다양한 인권침해를 당한다. 가장 핵심적인 갈등의 이유는 역시 종교문제인데, 누가 무슨 종교를 믿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냥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주고 서로서로 존중하면 정말 안 되는 걸까.
사실 이게 현실세계에선 안 된다. 우리나라처럼 무종교파가 50%가 넘어가는 국가에선 종교색이 정치나 회사, 또는 각종 공식단체에서 종파로 나뉘는 일이 잘 없지만, 국교가 정해진 나라에서 이교도로 살아간다는 것은 멸시와 차별, 기회를 박탈당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같은 종교 내에서도 종파에 따라 수많은 이권 패밀리가 갈라지고 그들만의 끈이 생겨 해당 그룹 내에 들어가지 못하면 배척되는 사례들을 자주 본다. 인도령 카슈미르는 주민들은 대부분이 이슬람인데 딱 정치 지도층만 힌두교 층이라 영토논쟁 시 주민동의 없이 인도령에 편입되어 분쟁의 첫 단추가 채워졌고 그게 지금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주민들은 인도령 카슈미르 주민보다는 행복해 보인다. 적어도 파키스탄 정부 사람들도 무슬림이라서 종교적인 박해를 하진 않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카슈미르 사람들은 자기를 인도인도 파키스탄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지역 사람들하고 말하다가 파키스탄 사람들(파키스태니)이라고 말하면 정색을 하며 내 말을 정정해 준다. "카슈미르 사람들(카슈미르 피플)"이라고 불러달라면서. 파키스탄 연방기를 쓰긴 하지만, 카슈미르 지역 내에서는 카슈미르 주기(State Flag)만 쓰는 경우가 더 많고 국기게양대에 카슈미르 깃발을 같이 게양하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
인도도, 파키스탄도 아예 카슈미르를 독립국가로 인정해 주고 완충지대 삼아 살면 합리적인 해결책이 될 것도 같은데 양쪽 다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는 것 같다. 이 또한 이해가 되는 것이, 인도도 파키스탄도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며 수많은 인종과 언어가 모여있는 곳이다. 특히 파키스탄은 발루치스탄과 파슈툰족의 독립요구가 끊이지 않으며 만일 카슈미르를 독립국가로 인정해 버리면 사방팔방에서 독립요구가 끊이지 않을 것이고 결국 나라가 와해될 지경으로 갈지도 모른다.
오늘은 "카슈미르 연대의 날" 답게 연대를 상징하는 인간사슬 행사가 지사 근교에서 있었다.
이슬라마바드로 이어지는 주도로에 위치한 두 개의 다리가 모두 폐쇄되어 파견 한국인도 꼼짝없이 갇혀서 이동을 못했다.
이번주가 마침 또 총선이라(2월 8일)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정치적 시위로 변질되지는 않을까 매우 조마조마 걱정했었지만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 일단 사람들 많이 모이는 장소는 피하고 봐야 한다.
우리는 유치원 때 폭력 쓰지 말고 욕하지 말고 싸우지 말고 배려하고 이해하며 사이좋게 살라고 배웠다.
그런데 왜 어른이 되어서는 총칼 대포 전투기를 몰고 상대방을 죽일까. 심지어 그게 배우고 똑똑하고 선발된 사람들에 의해 내려진 결정이라는 것이 더욱 아이러니하다. 어느 종교의 교리도 남을 괴롭히거나 죽이라고 한 종교가 없을 텐데 종교의 가르침으로 이웃과 좀 사이좋게 살면 안 되려나.
오늘도 여전히 해결될 기미도 안 보이고 해결될 대책도 요원한 불안한 카슈미르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 거센 평화의 물결이 퍼져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두가 평온히 걱정 없는 세상이 되길 기원해 본다.
- 이것저것 많은 생각이 드는 2024년 2월 5일, 카슈미르 연대의 날에. 카슈미르에 살고 있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 작가 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