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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선 May 15. 2020

인도와 파키스탄의 종교전쟁, 카슈미르 분쟁

카슈미르는 왜 분쟁의 땅이 되었을까?

하루 한 편, 쉽게 읽는 세계의 분쟁 지도 3.

인도와 파키스탄의 종교전쟁, 카슈미르 분쟁




 카슈미르는 세계지도의 점선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지역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이 만나는 기다란 국경선이 매우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 어떤 세계지도는 이 지역을 아예 제 4의 색으로 칠해버리기도 한다. 커다란 나라들이 맞붙어 있으니 그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서라든가 지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싸움일까 싶지만, 카슈미르의 사정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지금은 버젓이 다른 나라가 되어있지만,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는 본디 하나의 나라였다. 이들이 분리된 이유는 무엇보다 종교적 이유가 컸다. 인도 지역은 대다수가 힌두교를, 파키스탄은 이슬람교를 믿었던 것이다.*

 파키스탄은 독립 당시에 동파키스탄(현재의 방글라데시)과 서파키스탄이라는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 지역은 공교롭게도 인도를 사이에 두고 육로가 완전히 동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이 두 지역은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것 빼고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훗날 방글라데시는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이렇게 분열한 인도와 파키스탄이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결국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지대인 카슈미르 지역은 그야말로 접전지가 되었다.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기도 했지만 주민의 80%는 이슬람교도인데, 지배계층은 힌두교도라는 점이 더 큰 문제였다. 주민들은 파키스탄에 귀속되기를 원하며 반란을 일으켰고 파키스탄 측에서는 주민들에게 무력을 지원했다. 반면 힌두교도인 지배층은 인도에 지원을 요청하면서 인도에 복속하겠다는 문서에 조인해 버렸다. 이렇게 1947년,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카슈미르 지역에서 발발했다. 

 

* 참고로 인도 아래에 위치한 섬나라 스리랑카의 주류 종교는 불교다. 남아시아의 종교는 이렇게나 다원적이다. 



 1949년 유엔이 나선 후에야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종결되었고, 카슈미르 지역에는 정전 라인이 그어졌다. 인도의 지배 지역은 잠무카슈미르 지역이 되었고, 파키스탄은 북부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중국이 악사이친 지역을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면서 카슈미르는 세 개의 나라의 분할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전쟁의 피해를 보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맞게 이동하다가 사망한 이도 3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후로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두 차례 더 전쟁을 치렀고, 1980년대 말부터는 이슬람 과격파에 의한 분리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뿐인가, 이들 두 나라는 핵보유국이기도 하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국제적인 반테러 운동이 활성화되었지만, 카슈미르 지역의 긴장 상태가 완화될 기운은 통 보이질 않는다. 2019년에도 여전히 대규모 공습이 오갔다.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독립전쟁과 종교전쟁의 성격이 맞물려, 카슈미르는 앞으로도 지구촌의 우려를 받는 지역이 될 것이다.


** 국경선을 함께 맞댄 중국 또한 핵보유국이다. 인도와 중국은 예로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이러한 관계를 이용해 파키스탄은 중국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 이 글은 <지리 덕후가 떠먹여주는 풀코스 세계지리>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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