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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Aug 15. 2024

방탄차 타고 가다 죽을뻔한 썰 푼다.txt

방탄차라 쓰고 이동식 찜기라고 읽는다.

 나는 업무 차 파키스탄 분쟁지역(Dispute area)에 살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외국인 노동자.


 작년까지는 권고규정이었던 외국인 방탄차량 이용규정이 올해 초 중국인 피습사망사고가 생기면서 강제규정으로 바뀌는 바람에 이래저래 급하게 본사 승인을 받고 방탄차를 구매해서 사용 중이다.


 맘 같아서는 미 대통령처럼 캐딜락 비스트나 벤츠 마이바흐 급을 사고 싶었으나, 예산 한도도 봐야 하고 향후 감사도 받아야 하고 내 위로위로 직장 상사들 눈치도 봐야 하는 관계로, 정말 중고 시장을 샅샅이 뒤져서 고르고 고르고 골라 시장에서 가장 저렴한 수준인 대중브랜드의 중고 방탄 개조차량을 상반기 구매했다.


이 차가 네 차더냐? - 아닙니다. 저는 미국 대통령이 아닙니다.


그럼 이 차가 네 차더냐? 아닙니다. 본사는 예산이 없답니다.


제가 타는 방탄차도 보여드리고 싶으나, 보안자료인 관계로... 외부에선 일반차와 큰 차이가 안 나요.


 하아... 근데 이 녀석, 사자마자 여기저기 말썽이 잦다.

 아무리 중고차가 레몬시장(껍데기만 봐선 알 수 없는, 정보 공개가 안 되는 시장)이라지만 전 소유자한테 속았네 속았어. 잠깐이지만 실차 주행테스트를 거치고 당시엔 문제가 없었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일단 인수한 후에 여기저기 손을 대대적으로 봤다.


 본사에서 지사를 시찰하는 손님이 오던 7월 어느 날, 손님 모시고 오려고 모처럼 이슬라마바드로 방탄차를 몰고 출장을 나섰다.


 사실, 방탄차를 타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1. 창문이 내려가지 않는다.

 - 방탄차는 모든 유리가 방탄유리로 교체 또는 덧대어진다. 문짝 내부도 철갑철판으로 강화되어 공간이 없다. 방탄유리는 엄청나게 두꺼우며, 이 유리가 기존 차체 내부로 수납될 공간도 없으며 방탄유리가 워낙에 무거운 까닭에 도어 레귤레이터 모터가 이를 감당할 수도 없다. 따라서, 모든 방탄차의 유리창은 고정 형태이며 탑승 후에는 창문 개방이 안 된다.


2. 승차감이 매우 안 좋다.

 - 방탄차는 엔진룸, 캐빈룸 모두가 장갑판으로 강화되므로 차가 매우 무거워진다. 방탄 등급에 따라 적게는 수백 kg에서 많게는 수 ton까지 더 나간다. 증가한 중량에 대응해서 서스펜션도 매우 단단해지며 타이어도 런플랫 타이어로 교체된다. 모든 교체는 "총 맞아도 시스템이 유지되며 탑승객을 보호하며 당분간 굴러갈 수 있게" 하는 기능에 집중되며 당연히 승차감이 희생된다. 대충 시트가 조금 좋은 탱크 탄다고 생각하면 비슷하겠다.


3. 창 외부를 바라보는 게 매우 이질적이다.

 - 총알을 막아야 하므로 방탄차 유리는 매우 두껍다. 차에 탑승해서 밖을 바라보면 일반 차량 유리와는 달리 이글이글 외부 시야 왜곡이 생긴다. 그렇다고 창유리를 내릴 수도 없으니 갑갑함이 배가된다. 사이드 유리만 그런 게 아니고 앞 유리 뒷 유리 모두 다 그렇다.


4. 차가 굼뜨다.

 - 차가 많이 무겁다. 그런데 개조된 방탄차는 대중차와 엔진과 브레이크는 그대로니 출발도 버겁고 정지도 버겁다.(그래서, 방탄차 전용으로 설계된 차량은 엔진 사이즈가 무지막지하다.)




 방탄된다는 거 하나만 빼면, 일반 차량대비 편의성이 월등히 떨어진다. 나는 원래 히키코모리 성 집돌이라서 외출하는 거 내켜하지 않았는데, 이동 차량을 방탄차로 바꾸면서 더더욱 나가기가 싫어졌다. 암튼, 상기의 이유로 방탄차 탑승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어쨌든, 국외 출장자 의전과 안내도 회사 업무니까 나가긴 나가야지.

 경호차량을 앞세우고 방탄차 탑승 후 30여분 쯤 지났나. 갑자기 운전기사님이 차를 세운다.


"지사장님, 갑자기 차에 엔진 과열경고등이 들어왔습니다. 차를 좀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아, 큰일이군요. 일단 가장 가까운 카센터로 갑시다."


 다행히 왔던 길 3분만 돌아가니, 경정비를 겸하는 조그만 세차장이 있다.

 급한대로 차를 넣고 후드를 열고 냉각수통을 점검해 봤더니, 손을 대지 못할 만큼 뜨겁다.

 조심조심 냉각수 캡을 여는데, 내부의 냉각수가 폭발할 듯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아, 이거 심각하네.

 부글거리는 냉각수가 좀 빠져나가고 난 후 레벨을 봤더니, 있어야 할 물이 없다. 이거, 어딘가 샜네 샜어. 근데, 냉각수 샌 흔적이 보이지가 않는다. 엔진룸에서 냉각수가 새면 응당 후드 앞쪽에서 흰 연기가 올라와야 정상인데 그러진 않았단 말이다.


 일단 새는 곳은 모르겠고, 급한대로 생수통으로 네댓 통 냉각수를 보충하고 엔진을 재시동했더니 온도가 살살 떨어지면서 정상 수치로 돌아온다.(참고로, 차량용 냉각수는 정수기로 정수된 물이 가장 좋지만 정수된 물을 쓰기 어렵다면 한국에선 병입수 생수보단 수돗물이 더 낫다. 가급적 미네랄 등 불순물이 없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선 수돗물 자체가 없고 관정수를 써야 하는데, 석회질이 매우 많은 물이므로 병입수를 쓰는 것이 그나마 낫다. 냉각수는 냉각+방청+부동 역할을 겸해야 하므로 여름철에 냉각수를 보충할 때에도 반드시 차량용 부동액을 절반 섞어 써야 한다.)


 부동액 보충은 이슬라마바드 정비소까지 가서 다시 하기로 하고 엔진이 돌아왔으니 일단 출발. 나 갈길이 멀고 바쁘단 말이다. 고장 난 건 알겠으니 살살 달래가지고 도시까지 이동부터 하자고.


 다행히, 이슬라마바드까지 가는 동안에 다시 엔진경고등이 점등되진 않았다. 아마도 어딘가 미세하게 물이 새는 것 같은데, 당장 정비소 입고해서 새는 곳을 잡아야겠다. 아,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슬라마바드 도착 1시간 전에 터졌다.


"기사님, 좀 더운 것 같은데요? 에어컨 온도 좀 내리시죠?"


"어, 이상하다...? 지금도 최대로 낮춘 건데요?"


 에어컨 송풍구에서 찬바람이 좀 시원찮다 싶었는데, 갑자기 찬바람이 뚝 안 나온다. 흐억. 이 차 창문도 못 여는 방탄찬데. 지금 와서 길을 돌릴 수도 없고 클났네.


"공조장치에 이상이 생겼군요. 에어컨 가동을 중지하고 외기송풍만 가동하세요. 냉매가 누출된 거라면 컴프레서 공회전만 걸릴 텐데, 곧 컴프레서 태워먹을 겁니다."


 7월은 한국도 덥지만, 이슬라마바드는 더욱더 더운 시기. 에어컨 가동이 안 되니 예열되는 오븐처럼 실시간으로 실내 온도가 올라간다. 아 이거 총 맞아 죽기 전에 삶겨죽겠네. 몸에 있는 모든 땀구멍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온도를 조금이라도 낮춰야 하니 외기 송풍 모드를 최대치로 해 놓았지만, 이미 차량 내부는 완벽한 온실효과가 적용되고 있었다.


"기사님, 안 되겠어요. 일단 후속일정 다 취소하고 저만 숙소에 내려주시고 당장 정비소에 가 보세요."


 파키스탄에는 에어컨 자체가 없는 낡은 차들이 많다. 소규모 봉고차를 이용하는 대중교통에도 태반이 에어컨이 없다. 에어컨 좀 없다고 차량 운행이 안 되는 건 아니고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광경이긴 한데, 이 차는 "창문개방"이 불가한 방탄차라서 그게 문제인 거다. ㅠㅠ


 어쨌든 유사히... 미리 예약한 숙소에 당도해서 차 문을 여는데, 와~ 이 시원함 상쾌함. 근데, 그날 이슬라마바드 외기온도가 36도였던 날이었다. 건식 사우나에서 한 시간쯤 있다가 나오는 느낌하고 비슷.


 이후 일정은 이슬라마바드에 전진배치되어 있던 다른 회사분들과 다시 합류해서 어떻게 어떻게 마무리했다. 그날 밤늦은 시간에 방탄차 기사님 연락이 왔다.


"지사장님, 문제의 원인을 찾았습니다. 일단, 차량을 개조하면서 부착한 방탄장갑 지지대에 크랙이 생기면서 장갑판이 내려앉았어요. 그게 라디에이터를 밀면서 손상시켰고 하부에 구멍이 생겼습니다. 장갑판 지지대는 용접해서 수리되고요, 라디에이터는 교체할 수밖에 없겠어요.

 좀 더 안 좋은 소식이 있는데, 엔진이 과열되며 헤드가스켓에 일부 누유가 보인대요. 이 참에 헤드가스켓 교체하는 것이 추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아니 왜 이런 고장이 우리가 차를 사자마자 생긴대요. 에어컨은 뭐가 문제래요?"


"압축기가 완전히 맛이 갔답니다. 장갑판이 라디에이터와 콘덴서를 뒤로 밀어버리면서 냉각팬을 눌러버렸고, 저속주행 시 냉각팬이 돌면서 콘덴서를 식혀줬어야 했는데 팬이 눌려서 안 돌아가서 냉각이 안 되니 압축기에 무리가 갔던 것 같습니다. 압축기도 통째 갈아야 한대요."


"그래서 고속주행 땐 에어컨이 나오다가, 시내 들어오면서 퍼진거군요. 내일 손님들 모시고 도로 가야 하는데, 오늘 고칠 수 있대요?"


"오늘 밤에 당장은 어렵구요, 내일 오후까지는 고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아, 큰일났네. 일단 알겠습니다. 고생 많으셔요. 일단 총무부와 상의하고 연락드릴게요."


 이 차는 결국 정비소에 맡겨놓고, 긴급히 내일 하루만 방탄차를 임시로 렌트해서 타는 걸로 계획 변경. 방탄차 렌트비가 만만치 않게 비싸긴 하지만 방탄차가 아니면 이동 자체가 불가하니 별 방법이 없다.


찍혀서 물이 새는 라디에이터 ㅠㅠ


 다행히 렌트 방탄차도 제 시간에 수배가 되었고, 다음날 본사 출장 손님들 모시고 지사를 방문하는 일정에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내가 나올 때 문제가 터졌기에 망정이지, 손님들 모시고 지사로 들어가는 길에 이런 문제가 터졌으면 손님분들 파키스탄 극기훈련 제대로 시켜드릴 뻔했다.


 아니 유튜브를 보면 파키스탄 큰형님들 손재주가 좋고 낭만이 넘친다고 했는데 이 방탄차는 대체 누가 개조한거야? 파키스탄 큰형님들 손재주 좋은 거 맞아요? 개조 후 총 한번 맞아본 적 없는 녀석이 왜 길 가다 말고 퍼지냐고. 총탄 막으라고 장갑판 덧대었는데 왜 내부 팀킬을 하고 그래. 이래가지고서야 믿고 타겠나.


 큰맘 먹고 업어온 방탄차가 온전한 우리 식구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덜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얼마나 또 동고동락을 같이 해야 무탈하게 우리랑 잘 지내게 되려나.


 나 있는 동안만이라도 제발 좀 문제 만들지 말아줬음 좋겠어요, 방탄차 양반. 제발 잘 지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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