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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Oct 04. 2024

백만년만의 도시 외출, 캔슬

꼭 내가 나갈려고만 하면 그래

 본좌 원래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을 극혐하는 인물이었으나, 세월의 풍파아래 무릎을 꿇고 되는대로 살기로 내려놓고나니 맘이 좀 편해졌다.(그건 그거고 SI Unit 잘 못 쓰는 건 여전히 용납 못한다.)


 제목도 외출 취소라고 쓰려다가 요새 언어습관이 한글단어 절반에 영어단어 절반 섞어쓰는 이상한 화법이 되어버리고 있어서 현장 느낌을 살리려 그냥 저리 적었다. (영어권 국가 사시는 분들 공감하실 듯. 급하게 말하다보면 정말 쉬운 한국어 단어가 생각이 안 나고 그냥 그 자리 영어 단어가 들어가있다. ㅠㅠ 환장한다. 글타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내일은 한 달 전부터 잡혀있던 중요한 기업미팅이 있어 오늘 모처럼 이슬라마바드로 출장을 나가는 날이었으나, 그냥 나가게 해 주면 여기가 파키스탄이 아니지. ㅡㅡ;;;


 올해 가을 들어서면서부터 파키스탄 수도에서의 과격시위가 많아졌다. 거의 매주말 시위소식이 들린다. 처음에는 신고된 평화시위를 표방하다 언제나처럼 또 인파 해산용 최루탄몽둥이가 날아다니고 도로가 전면 통제된다.


 지난주에 데모했으니 이번주는 좀 잠잠하려나 했었는데, 오늘(2024.10.3.목) 오전에 보안 담당자가 속보를 전한다.




"지사장님, 내일 대규모 시위가 있을 거랍니다. 이번에는 경찰들이 선제적으로 주요 도시 진입로를 사전에 통제할 거라고 해요. 만일 이슬라마바드로 가실 거라면 서둘러 지금 출발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도로가 차단되면 중간에서 오도가도 못할수도 있어요."


"도로 차단 시간이 공고가 되었나요? 언론보도 있나요? 저 좀 보여주세요."


"정부에서 시위 관련 소식은 철저하게 언론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도로 통제 소식도 공식으로 접수된 건 없지만 제 정보망에 걸리는 소식들을 전해드리는 것뿐입니다. 아마 낮에 통제가 가능할 땐 부분적으로 열어주겠지만, 해지기 시작하면 전면 통제가 될 것 같아요."


"그럼, 언제 다시 도로가 열릴까요?"


"아마도 시위 인파가 해산되어야 열릴 것 같습니다. 언제 다시 열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요."


"있어봐라... 이거, 섣불리 나갔다간 여차하면 못 돌아올 수도 있다는 거네요? 웨이트... 잠깐 저 생각할 시간 좀 주세요."




"팀장님들, 잠시 모여보세요. 이만코 저만코 하다던데, 우리 우짜죠? 당장 가, 말아?"


"문 닫히기 전에 후딱 출발하시죠. 한달 전부터 준비한 행사인데요."


"아니 잠깐잠깐. 우리는 그렇다 치고, 저 쪽 회사는 올 수 있대요? 상황 파악부터 좀 해바바요."


"아, 저쪽 회사 팀장들은 어제 선발대가 이미 이슬라마바드 도착을 했구요, 법인장님은 내일 새벽에 출발하신다고 했습니다."


"오늘 밤에 도로 폐쇄라던데? 내일? 아니 거기도 아무 정보를 모르고 있는 거 아닐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실무자 연락 좀 해 보겠습니다."


"아냐아냐... 급한데, 내 법인장님 직통해볼께요. 이런 건 장들끼리 해결해야지."




"법인장님, 잘 지내시죠? 접니다, 지사장. 드디어 내일 뵙는군요. 이슬라엔 언제 출발하세요?"


"아~ 지사장님~ 목소리 들으니 반갑습니다. 저는 내일 아침 일찍 나서려구요."


"음... 법인장님, 아직 소식 못 들으신 모양입니다. 직원들이 속보를 전하는데, 오늘 밤에 주요 간선도로가 모두 막힐거래요. 내일 도로사정은 기약하기 어렵습니다."


"아, 내일은 금요일인데도 벌써 움직이나요? 저는 몰랐어요. 어쩐다.. 제가 지금 당장 움직일 상황은 아닌데..."


"아, 난감하군요. 이거, 내일 갔다가 꼼짝없이 도시안에 갇혀서 며칠 못 돌아올 수도 있거든요.

 법인장님. 이거 말씀드리기 황송하지만, 이번 행사는 잠시 연기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저희 만남은 주변이 좀 조용하고 안전해지면 제가 다시 자리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군요. 괜히 무리하지 마시고 그러는 편이 좋겠습니다."


"양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곧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들어가셔요~"




 자자. 안전제일이니 일단 출장길 캔슬.

 근데 나만 안 가면 사태가 해결되나? 아니지.


"지사장님. 직원들이 많이 동요하고 있는데요. 이슬라마바드나 이슬라 근교 거주하는 직원들이 오늘을 넘기면 내일도 그렇고 주말 내내 집에 못 갈 수도 있어요."


"쓰읍.... 아니 내가 길 막았나. 나한테 왜 그래.... ㅡㅡ;;; 흠.... 일단 매니저들 다 와보라고 해요."




"상황이 어떻죠?"


"이슬라로 통근하는 직원이 한 10명 정도 되고, 두 명은 교대근무자입니다. 원래 내일 오후 통근버스가 출발할 예정인데, 아마도 내일은 도로가 폐쇄될 것 같습니다. 그럼 다들 집엘 못 가요. 오늘 통근버스 조기 출발을 허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 그럼, 구멍 나는 교대근무는 누가 채우고, 오늘 근거리 퇴근자는 누가 태워요? 그냥 막 지르지 말고, 납득 가능하고 실행 가능한 계획을 세워서 다시 오세요."


이슬라마바드 행 광역 출퇴근 버스는 금요일(퇴근), 일요일(일터복귀)에만 운행을 하는데, 그전에 근교 출퇴근자를 태워주고 다시 그 버스로 출발하는 스케줄로 운영되고 있었다. 상황에 따른 조기퇴근을 허락해 버리면 근거리 사람들의 출퇴근 수단이 없어지고 현장 교대근무에 구멍이 생겨버린다. 아니 왜 나보고 고민하게 만들어. 솔루션 만들어 오래두. 생각없이 그러라고 했다가 문제 생기면 다 내 탓만 할 거잖아. ㅡㅡ+




"지사장님. 관련된 사람들끼리 회의를 했고 절충안을 만들어 왔습니다. 광역퇴근버스를 지금 운행하면 도로 폐쇄 전에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광역버스를 먼저 운행하면 근교 출퇴근버스가 없어지는데, 조금 번거롭지만 버스가 아니라도 오늘만 소내 다른 일반차량을 두세 번 왕복 운행하면 직원들 퇴근에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교대근무자는 대체 근로자 수배가 안 돼서, 해당 근무자들은 집에 안 가고 주말에 남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알겠어요. 상황이 그래서 어쩔 수 없는 거 수용한 거 맞지요? 제가 억지로 남긴 거 아닙니다?(이 와중에 대기수당 달라고 할까 봐 늘 불안한 지사장) 오늘의 조기퇴근은 안전상황에 따른 불가항력으로 인정할 테지만, 내일 출근을 안 하는 문제는 모두 개인휴가 처리하시기 바래요. 불가항력의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근교 출퇴근자와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고, 또한 주말 대기의 옵션도 있기에 이 정도 절충하심이 맞지 싶습니다."


"예. 그 정도는 직원들도 모두 동의할 겁니다. 배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사장님"




버스가 떠나고 세 시간쯤 후 왓츠앱 메신저.


"자자~ 모두 안전하게 잘 도착하셨나요? 걱정이 됩니다."


"예 지사장님. 벌써 도로 일부가 막히고 있긴 하지만 차선 일부는 개방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해가 지면 전면 통제가 될 것 같아요. 내일은 도심지 인구밀집 지역 중심으로 인터넷 통제도 있을 거라는 썰이 있습니다."


"어디 공고나 기사 좀 없나요? 뭐 이런 깜깜이가 어딨어요."


"시위 통제 관련은 정부가 정보를 다 통제해서요, 개개인 페이스북이나 X를 통해서 알음알음 전해지는 게 전부예요."


"그거라도 좀 공유해바바요."


연방정부는 오후 6시경부터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컨테이너로 폐쇄하고 있습니다.
오는 10월 4일 금요일에, 임란 칸의 PTI 정당이 시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컨테이너로 도로가 막혀서 벌써 불편이 초래되고 있군요.


#이슬라마바드 #라왈핀디 - 교통 상황 업데이트 오후 6시.

M1 고속도로가 폐쇄되기 시작했습니다. Bhattar 교차로 및 기타 유료 도로는 폐쇄되었습니다.
도시 간 간선도로는 현재는 개방 중이지만, 11시 이후에 폐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내일 도심 지하도로 운행가능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내일 자정까지 M1 및 M2에서 불필요한 이동을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학교들이 내일 임시 휴교하거나 온라인 수업을 한다고 합니다. 미리 확인해보세요.
CIE 시험을 치르는 사람은 1시간 전에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내일 인터넷이 중단됩니다.




암튼, 해지기 전에 모두 다 잘 도착했다니 다행이다.

일단 보내긴 보내놨는데, 다시들 잘 돌아와야 할 텐데.

주말 내 상황이 잘 정리되고 일터로 돌아올 땐 제발 아무 이슈가 없길 빌어본다.


오늘도 다이내믹 쫄깃한 파키스탄 지사 라이프.




 글 발행 다음날 덧붙이는 이야기.

 오늘(2024.10.4.금) 오전에 대사관에서 주의당부 카톡이 왔다.

 해외체류 자국민에게 이런 서비스를 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긴 한데, 내가 가진 아쉬움은 좀 빨리 알려주면 안 되냐 이거다. 늘 정보가 너무 늦다. 이거 받고 이동계획 세웠다면 이미 도로에 갇혔다. ㅠㅠ



 암튼 오늘도 무탈히 넘어갈 수 있기를. 인샬라.




 2024.10.5. 토요일에 덧붙이는 글.

https://www.youtube.com/live/R7tkRS2cv0s

 어제(10.4.금요일) 시위대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어김없이 최루탄이 발포되었다.


https://www.dawn.com/news/1863167/dozens-arrested-as-pti-defies-blockades-to-reach-d-chowk


"경찰은 당 지도자 임란 칸의 여동생 두 명을 포함해 100명 이상의 PTI 회원을 체포했습니다. 시위대와 법 집행 기관 간의 폭력적인 충돌이 하루 종일 보고되었으며, 돌멩이와 최루탄 교환 사례가 여러 건 목격되었습니다. - DAWN 뉴스 인용 -"


"금요일 늦은 밤, 10월 5일(오늘)부터 수도를 확보하기 위해 군이 배치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라왈핀디 도로에서도 군용 차량이 목격되었습니다. - DAWN 뉴스 인용 -"


 오늘부터는 군부대 투입. 이거 뭐, 나아지는게 아니고 점점 심각해지는구나...


이슬라마바드 살고 있는 지인이 보내 준 오늘(2024.10.5.토) 자 최루가스 살포 현황


 암튼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 칩거하고 살아야겠다.(원래 그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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