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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Oct 08. 2024

"흑백요리사"를 보다 말고 꺼버린 이유

저랑은 안 맞아요

 본 글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를 폄훼하거나 일부러 가치를 깎아내리고자 하는 목적의 글이 아닙니다. 이 프로그램과 성향이 맞지 않는 한 시청자가 왜 본인이 이 프로그램 보면서 불편한지 풀어내는 독백같은 글입니다. 이 프로그램 좋아하시는 분들은 가볍게 "뒤로가기"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요즘 장안의 화제작 "흑백요리사".


 이곳 파키스탄의 인터넷이 많이 열악하긴 하지만, 달래고 달래서 쓰면 넷플릭스와 유튜브 정도는 비교적 잘 돌아간다.(영상이 멈추는 빈도가 잦긴 하지만, 아예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한국 서버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국가 접근코드가 달라 아예 열리지 않거나, 열리더라도 엄청나게 느린데 이는 아마도 한국 서버의 자료를 국가 간 백본으로 끌어와서 그런 것 같고, 유튜브나 넷플릭스는 이 나라안에 미러 서버가 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속도 편차가 크게 날 리 없다.)


 뭐 암튼, 여기도 넷플릭스는 되는지라, 주말에 큰맘 먹고 1화를 열어봤다.(사실 나는 중독을 경계해서 시리즈물은 거의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제어할 의지라곤 없는 사람이라...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적 조류는 따라잡아야겠기에...)



 우선 참 잘 촬영된 기획물임은 인정.

 내가 아마추어 영상 촬영 및 편집을 해봐서 조금 아는데, 이런 영상 퀄리티 갖추기 쉽지 않다.


1. 전문 요리사 100명을 한 공간에 집어넣고 방대한 요리재료와 대규모 요리시설을 갖춘 세트장을 확보한 것

2. 요리는 전문이겠지만 리얼리티 영상물 촬영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들 데리고 깔끔하게 녹음따고 어색하지 않은 대화와 표정을 실시간 고품질 영상으로 잘 담아낸 점

3. 공간감과 심도, 조명을 매우 적절하게 사용해 가며 요리 재료의 질감, 요리 과정의 소리, 요리사의 노력과 압박감, 심정을 그대로 스토리에 녹여 시청자에게 전달해 낼 수 있게 담은 카메라 워킹

4. 몇 대의 카메라들 동시에 동원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어색하지 않고 물 흐르듯 깔끔하게 풀어낸 환상적인 편집


 햐, 대한민국 리얼리티 쇼의 기획과 촬영이 이렇게나 발전했구나 싶을 정도로 수준높은 작품임에는 부인하지 않는다. 요리마다 색감은 또 얼마나 예쁜지, 저건 요리가 아니라 예술이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만, 첫 도입부가 비슷한 부류의 리얼리티 피지컬 100 장면이 좀 오버랩되어서 그거 짝퉁인가 하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했다.


 그런데, 나 이거 불편해서 못 보겠다.


 대한민국에서 각 잡고 뽑아온 전문 요리사인 만큼, 출연진 중에선 요리 못하는 분들이 없다. 백수저는 천상계, 흑수저는 지상계 정도의 느낌으로 표현했지만, 흑수저 요리사들도 모두 한 실력 하는 유명한 셰프들이다.


 뒷얘기가 어떻게 벌어지나 모르겠다. 어쨌든 1화에선 20명의 백수저 셰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80명의 흑수저 셰프들이 20개의 결선 티켓을 놓고 요리경연을 펼친다. 각자 정성껏 준비한 맛깔난 요리를 두 명의 심사관이 심사해서 합격 여부를 가린다.


 흠......... 글쎄.


 음식을 맛으로 평가하는 게 두 명의 심사관 평가로 객관성과 공정함을 가질 수 있을까?


 내가 맛있어하는 음식 중 마누라가 싫어하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음식은 지극히 개취의 영역 아님? 근데, 사회적 명망이 높다고 해서 그 심사관이 "맛있는 음식"과 "맛없는 음식"을 판단할 자격이 있을까?


 물론 교과서적인 요리제목에는 교과서적인 레시피가 있고, 대중들이 선호하는 맛의 기준도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경연대회는 재료 무제한, 요리 종류 무제한인 열린 경연장이란 말이다. 딱 주어진 같은 재료와 같은 요리기구만 사용해서 주어진 요리를 시간 내 가장 맛있게 만드는 요리 경연이라면 이해가 된다. 그런데, 각양각색 요리를 만들라고 시켜놓고 가장 맛있는 스무 개 요리? 시작부터 영 불편하다.


 심사관들의 심사평은 재미로 들어줄 수는 있지만, "맛있는 된장국"과 "맛있는 파스타" 중 어느 기준으로 더 맛있는 걸 고를 것이란 말인가? 하물며 밥 하나만 지어도 된밥 좋아하는 사람 진밥 좋아하는 사람 다 따로 있고 탕수육 부먹파 찍먹파 갈라져서 영원히 싸우는 거 모르냔 말이다. 정답이 어딨어. 나 좋아하는 게 맛있는 거지.


 의기양양 참석한 흑수저 요리사들이 공감하기 힘든 심사평으로 코앞에서 "탈락" 판정을 즉석에서 내려버리는 광경은 시청자인 내게도 무척이나 무례하게 느껴졌다. 영상을 보면서 짜증이 났는데 왜 이걸 계속 보고 있어야 하는 건지 이유를 더 찾을 수 없어 그냥 꺼버렸다.


 영상미 하나는 참 잘 기획된 요리 프로그램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무례하기 그지없다. 나는 재미를 위한 각종 리얼리티나 연예 프로그램이라 할지라도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과정에서 참된 재미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주면 좋겠다. 그리고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에는 절대미각보다는 존중과 감사를 담뿍 담아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정성에 좀 더 집중해주면 좋겠다. 저런 프로그램이 자꾸 인기가 많아지면, "권한"을 가진 높으신 양반들이 뭐든 "지맘대로" 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될까 봐 참 싫고, 엄마가 해주신 정성어린 밥상에 애들이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하며 감사할 줄 모르고 맛 품평이나 하고 앉아있을까봐 또 싫다.


 흑백요리사, 난 안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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