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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Oct 12. 2024

SAMTOH 유감

누구를 위한 샘터인가

 브런치 서핑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SAMTOH.



 뭐지? 삼토흐? 어디서 물 건너온 넘인고?


 SAMTOH의 정체를 깨닫고 충격에 빠졌다.

 SAMTOH는 "삼토흐"가 아니고, 월간 교양잡지 "샘터"의 새얼굴이다.


 50607080 세대라면 이 교양잡지를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저렴한 가격과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 알찬 내용들과 한글 중심의 편집으로 한자를 모르면 읽을 수조차 없던 시사잡지들에 비해 대중들이 읽기 쉬운 간행물이었고, 내용 또한 천박하지 않고 수준 높은 글들이라 전 국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잡지였다. 웬만한 공공장소(관공서, 은행, 터미널 미니문고, 심지어 군대까지)에선 어지간하면 다 찾아볼 수 있던 국민 교양지.


 눈에 다시 들어온 반가운 샘터가 심히 불편해 보였던 이유는, 오로지 변경된 로고 때문이다.




 일단 샘터의 역사부터.

 1970년 4월에 창간된 월간지. B6판 크기의 120면에서 150면 내외. 발행인은 김재순(金在淳)으로 사단법인 샘터사에서 발행하였다. 거짓 없이 보람있게 인생을 걸어가며, 조국을 사랑하며 나라 일을 소중히 여기고, 충성을 다하며 직장을 가정처럼 만든다는 3대 정신을 바탕으로 창간되었다. 수상(隨想) · 체험기 · 시 · 콩트 · 동화 · 영화 · 미술 · 과학 등 각 분야에 걸쳐 생활과 밀착된 내용을 다양하고 간략하게 수록, 간편하게 넣고 다니며 아무 데서나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들고 있다. 판매도 서점뿐만 아니라 거리의 좌판대에서도 쉽게 살 수 있도록 획기적인 판매망을 조직하였다.

 20살 안팎의 고교상급생 · 남녀대학생 · 근로청소년 · 군인들의 책읽기 습관을 기르고 독서인구의 저변확대와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 창간 때부터 한글만 쓰기를 원칙으로 하고 쉽게 익힐 수 있는 우리말 찾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83년 4월호부터는 가로쓰기를 채택하였다. 이 잡지의 특징은 한국인의 잡지가 되기 위해 긍정적인 눈으로 현실을 보고,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숨은 장점을 캐내어 민족애를 깨달으며 감명깊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을 골라 실어 독자들이 싫증을 느끼지 않고 감동된 상태에서 앞날에 대한 희망과 나아갈 길을 터득하도록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 이하 중략 -

[네이버 지식백과] 샘터 (국어국문학자료사전, 1998.,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부분발췌


 요게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모를 리가 없는 오래된 순우리말 로고.



 요렇게 단행본 사진을 보면 기억이 더욱더 새록새록 떠오르실 것 같다.(자연스레 작가 고인물 인증)


 다만, "샘터" 한글로고를 쓰던 옛날에도 매우매우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는데......


 "샘터"로고는 명필로 이름을 날리던 소전 손재형 선생의 육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분의 작품을 창간호때부터 "장평비"를 일그러뜨려 상하로 잡아 늘려 표지로 쓰는 일을 저지르다니. 고유 로고의 장평비(가로세로비율)를 일그러뜨리는 게 얼마나 기업가치, 작품가치를 크게 훼손하는 것인지 모르고 그랬음이 틀림없다.


무려 창간호의 제호를 원본 작품 상하로 잡아늘림


로고 고유의 장평비를 지키지 않으면 이미지가 이렇게 다가온다


 샘터가 최초 창간되던 시절이 1970년도이니까, 그땐 기업 브랜드 경영에 대한 이해가 좀 없어 그럴 수도 있었겠다 이해해 본다. 다행히, 그 이후에 발행되었던 한글로고 "샘터"는 최초 작품의 장평비를 충실히 반영하여 원본의 느낌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늦게라도 원본의 느낌을 되찾게 되어 참 다행이다. 휴우.




 이 샘터의 로고는 이제 (주)샘터사 대표로고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제 이 독특한 서체는 (주)샘터사 표기에만 활용되는 정도


 왜냐하면 월간 샘터 잡지의 대표로고가 SAMTOH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영문명 발음이 살짝 비슷(똑같지 않다. SAMTOH 삼토흐)한 것 빼고는, 향수 어린 월간 샘터와의 연결고리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파격적인 변신이다.

 

변경된 샘터. 아니, 삼토흐.


국내 최장수 문화 교양 월간지 샘터가 창간 51주년 기념호인 4월호를 3월 23일 펴내며 새 단장을 했다. 샘터는 김 전 의장이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모토로 1970년 4월 창간한 ‘국민 잡지’다. 피천득 시인,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등을 필진으로 두고 다채로운 글을 실어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발행부수가 50만 부에 달했다. 그러나 잡지 시장 침체로 수요가 줄면서 최근 발행부수는 3만 부로 떨어졌다. 2019년엔 폐간 위기에 내몰렸으나 독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기사회생했다. 한 30년 독자는 “꼭 샘터를 발행해 달라”는 당부와 함께 사무실에 1000만 원짜리 수표를 놓고 가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샘터의 변화는 표지 제호다. 1970년 4월 창간호 당시 서예가 손재형 선생이 붓글씨로 쓴 이래로 50년간 사용한 ‘샘터’ 제호가 사라졌다. 그 대신 영문 ‘SAMTOH’를 하단에 배치했다. 이종원 샘터 편집장은 “샘터의 상징 같은 제호를 바꾸기까지 고민이 많았다”며 “시대가 변한 만큼 젊은 세대들이 좋아할 수 있는 서체로 제호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 아래 동아일보 기사 부분발췌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401/106186549/1


 기사를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아리송. 이해가 안 되는 오늘작가.

 


 "샘터" 한글제호를 없애고, "SAMTOH"라고 바꾸면 갑자기 젊은이들이 좋아하나? 왜? 왜애???


 무언가 더 심오한 뜻이 있나 싶어 샘터 홈페이지도 찾아봤다.


https://www.isamtoh.com/main/index.php


 


 나 처음엔 내가 접속한 국가가 "파키스탄"이라서 영문판 홈페이지로 자동 접속된 줄 알았잖아.

 "한글" 언어변경 버튼 어딨지 한참을 헤매다가 "그런 거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왜? 왜애애애애애애애????


 아니 샘터 정체성 어디갔어?


독서인구의 저변확대와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을 길들이기 위해 창간 때부터 한글만 쓰기를 원칙으로 하고 쉽게 익힐 수 있는 우리말 찾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샘터" 부분재발췌 -


 당시 수준있는 간행물들이나 신문이 한자에 너무 매몰되어 조사 빼고는 다 한자판이던 시절, 샘터만이 한글쓰기 원칙을 고수하며 책읽기 문화 보급에 힘쓴 철학이 있는 잡지였는데, 홈페이지 메뉴 구성 자체에 "한글"이 하나도 없다니! 나 이거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세계로 뻗어나가는 K-한류문화 속에서 "샘터"의 세계화를 위해 그랬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 또 찾아봤지. "SAMTOH" 영문판을 팔고 있는건지.

 .....애석하게도 그런 거 없다.



 그럼 대체, 영문 제호 SAMTOH영문 메뉴(심지어 내용은 모두 한글)인 홈페이지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걸까? 엘레강스하고 쉬크하면서도 트레디셔널하지만 한편으로 헤리티지를 담고자 하는 보그병신체를 답습하려는 걸까? 아니면 젊은 이미지 변신을 하고 싶어 나이 든 중장년층이 오는 걸 막으려고 그랬던걸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86/0002150694?sid=103


https://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00519








 제호, 기업로고, 브랜드명이 영원히 같을 필요는 없다.

 시대와 문화의 변경에 따라 적절히 옷을 갈아입어야 구태한 느낌이 들지 않고 생동감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기업 로고 관리를 참 잘하는 곳 중 하나는 애플이라고 생각하는데, 기업의 철학과 이미지에는 큰 손을 대지 않으면서 늘 시대를 반영한 깔끔하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엔 비슷하게 기아차 로고.



 딱 저 시기적절하게 잘 바꿔오고 있다는 개인적 평가이다.

 전통을 고수한다며 1944년 최초로고를 고수해 왔다면 얼마나 고리타분한 경운기 같은 이미지의 자동차였을까 상상하니 끔찍해지기까지 하다. 2020년에 변경된 최신 로고도 변경 당시에는 저게 뭐냐며 욕을 처먹긴 했지만, 요즘에는 동그란 마크 속의 KIA 이미지가 올드하다며 오래된 기아차 엠블렘을 최신 디자인 엠블렘으로 자비 들여 교체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호평받고 있다.


 그런 면에서, 시대 조류에 맞게 "샘터"로고를 현대화하려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방향성이 문제인 것이다. 바뀌는 로고가 바뀌는 사회문화와 기업 경영 브랜드 철학을 반영해서 그 뜻이 담겨야 할 텐데, 이번 "SAMTOH 삼토흐" 로고에는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고, 각종 신문기사 및 대표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그 속 뜻을 파악하려 해도 보그병신체커뮤니티 센터 같은 사대주의 감성 말고는 다른 뜻이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다.




 한강 소설가가 노벨문학상에 선정되었다.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 노벨상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벨상" 자체가 엄청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결국 사람이 평가하는 수상 시스템이고 그 평가가 매번 공정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학이나 수학 등 비교적 정량적 평가가 가능한 시스템은 그래도 좀 낫지만, 평화상이나 문학상은 솔직히 상 주는 사람 맘 아닌가?

 한강 소설가의 작품성에 대해 내가 평가할 자격도 능력도 없지만, 만약 우리나라가 1970년대 정도의 국력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고 가정하면 나는 한강 소설가가 여전히 노벨상 선정은커녕 후보에도 못 올라갔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만일, 한강 소설가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아프리카 콩고나 소말리아에서 태어나서 그 나라 언어와 문자로 작품을 펴 냈다면 과연 똑같은 가치를 인정받아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었을까?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아닐 것 같다.


 뜬금없이 노벨상 얘길 왜 꺼내냐면,


 이제 대한민국의 위상은 세계 어디에 꺼내놔도 절대로 밀리지 않는다.

 과거에 미국이나 유럽 여행 가서 인종차별을 당하면 약소국 설움으로 끽소리 못했지만, 요즘에는 당당하게 "지금 인종차별 하는거죠? 당신 이름 뭔가요? 매니저 오라고 해요."라고 찍 밟아줄 수 있을 만큼 어깨 쫙 펴고 살 수 있다. 전 세계적 인권이 신장된 이유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국력과 국격 자체가 올라가서 어딜 가도 당당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5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당당하고 전혀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 한글 제호를(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내 생각에 그렇다는 거지만),

 발음도 요상한, SAEMTER도 아닌 SAMTOH 영문 제호를 바꾼 이유에 대해선 아무리 신세대와 MZ 감성을 들먹여도 나는 이해가 되질 않고 서운할 뿐이다. 이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 세계 수출상품도 아닌데.


 샘터 제호와 디자인의 변경의 권한은 당연히 (주)샘터사에 있다.

 다만, "월간 샘터"를 "전국노래자랑" 처럼 한국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라 친다면 적어도 국민감성 정도는 고려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




 샘터 잡지사 편집장님. "SAMTOH"를 (구) 한글 "샘터"로 돌려주신다면, 후원금 5만 원 드릴 의향이 있습니다. 제 작가 이름 걸고 약속할게요. ㅠㅠ (저도 흙수저 생계형 직장인이라.. 금액이 크지 않음은 양해해 주세요..)




 악플 방지용 사족.


 "월간 샘터"에 대한 좋은 기억과 감성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중장년층으로서, 그리고 한국과 한글을 너무나 사랑하는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샘터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제언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샘터"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몇 시간을 들여 이런 글 쓰지도 않아요.





 자꾸 덧붙이는 글.

손 댄 김에 PPT 도형으로 대충 만들어 봄



 만일 내가 편집장이었다면 이런 식의 변화를 꾀했을 것 같기도 하다.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되, 고루해 보이지 않으려 했습니다. 손재형 선생님의 최초 서체의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이며 한국적인 미를 담고자 했습니다. 서체의 장평비와 전체적인 느낌은 유지하되, 기하학적 조형미컴퓨터 서체의 첨단 이미지도 가져오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에 담긴 한국적인 미도 가져오려고 했어요. 샘터의 정신은 잃지 않되, 디지털 정보통신 시대상은 반영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거죠. 영어가 범람해서 한글을 오염시키는 현실이지만, 샘터만은 고유 한글 디자인을 지킬 겁니다."


 아. 내가 썼지만 어쩐지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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