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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라냐 쪽팔려서 못살겠다

어떤 나라에서 누군가가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단다.

그래서 독립적인 사법기관에서 체포영장을 발급했고, 수사기관에서 영장을 집행하러 피의자의 집에 방문을 했드랜다.

그런데, 그 피의자는 "체포영장" 발급이 "불법"한 일이라며 자신의 "경호기관"의 물리력을 이용해서 체포에 불응하는 일이 2025년 1월 3일에 실제로 발생했다. 심지어, 그 경호기관은 사설 경호업체도 아니고 나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기관이랜다.


와아.... 이게.... 2025년도에 "자유 민주주의" "입헌 공화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인가?


이쯤 되면 두 개의 나라가 한 땅덩어리에 공존한다고 해석해야 하지 않나?


이게 정당하니 어쩌니 법적 해석이야 의견이 분분하니(사실 내가 보기엔 분분하진 않지만 백만 번 양보해서 그냥 그렇다 치고) 양쪽 말이 다 일리가 있다고 가정해 놓고(소수 의견은 진짜 아무리 들어봐도 억지일 뿐이지만) 다시 상황을 보자.





[ 가정 1 ] 피의자는 억울하며, 영장발급이 불법이다.


- 사실, 이런 경우가 없지 않았다. 역사를 뒤돌아보면 제주도민 대부분을 명확한 근거도 없이 좌파 빨갱이로 몰아붙이며 동족상잔을 해버린 제주 4.3 사건, 불법 계엄령에 항거해서 시위하던 참시민에게 무차별 발포해 버린 광주 민주화운동, 철권 통치시절 참된 자유민주주의를 거론하면 빨갱이고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며 다 잡아 처넣던 군사독재 시절 등 공권력에 의한 억울한 피해자가 어디 한두 명 나왔던 나라였던가.


- 억울하게 구속영장 발급받은 사람은 그럼 어떻게 했나? 공권력에 대항할 수 있었던가? 그저 대학 캠퍼스, 성당, 교회, 절 등을 전전하며 숨고 숨고 또 숨어가며 이름 얼굴 가려가며 숨죽이며 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나 당당하니 잡아가려면 잡아가라" 하며 공권력에 공권력으로 대항했던 사례가 있었던가?


- 공권력에 공권력으로 대항이 시작되면 그때부턴 정부군 vs 반란군 내전이다. 이미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진 거다. 정규 경찰도 군인도 정부군에 붙을지 반란군에 붙을지 선택을 해야 한다. 실제로 저런 상태 내전이 되면 스스로 헷갈려서 두 진영을 왔다 갔다 하는 부류도 많다고 한다. 시리아 내전 사태 공부해 보면 시작이 어떻게 잘못돼서 나라가 어떻게 망가지는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 아무리 피의자가 억울할지언정, 숨어서 공권력의 수사망에 잡히지 말거나, 일단 당당히 구금되어 재판장에서 공권력의 부당함을 알리고 무죄를 주장하거나, UN 인권위 등 국제인권기관에 호소하거나 하는 등 논리적이고 합법적 방법으로 맞서야지, 공권력의 영장 자체를 부정하며 같은 나라에 살아갈 방법은 없는 것 같다.




[ 가정 2 ] 사업기관의 영장발급이 정당했다.


- 헌법과 법률에 의거한 정상적인 절차와 방법에 의한 영장이라면 거부할 수가 없으며 거부해서도 안 된다. 백번만번 양보해서 그게 억울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도망가거나 은신해야 정상이다. 사적 권력으로 국가와 맞서는 순간 또 다른 내란이 된다. 내란이 별 건가. 국가 시스템을 전복시키고 사회를 마비시키는 행위가 내란 아닌가. 대체 저 피의자는 내란을 몇 번이나 시도하는 건가.






사태가 이 지경이면, 국가 최고 권력자는 적절하게 판단을 해야 할 게 아닌가.

행정부와 최고 의결자가 이 사태가 부당한 영장발급이라 판단한다면 수사기관에 중지 행정명령을 내리고, 해당기관의 장을 문책하면 될 일이고, 정상적인 영장발급이라 판단한다면 공적 경호기관에 "영장집행에 협조하라"라고 명령을 내리면 될 일이다. 사실 생각보다 해법은 간단하다.


그런데 이게 뭔가. 왜 다들 손 놓고 있나? 책임자 뭐하나?


아니 이게 나라냐?


피의자 체포영장을 집행하러 1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출동했는데, 못 잡고 그냥 왔다고?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지리산이나 한라산 깊은 산속에 숨어있는 것도 아닌데?


그럼 이제부터 체포영장 발급되어도 "내 생각엔 체포영장 그게 불법인 거 같은데?" 하며 누구도 게겨도 된단 말? 영장 집행을 방해하면 그 순간부터 "공무집행방해" 아니냐고. 그런 법적 장치는 왜 동작하지 않는데?


나는 사건이 벌어진 저 나라가 진작에 "공정"한 나라가 아님을 알고는 있었지만, 모든 국민들이 다 보고 있는 사건을 저렇게 대 놓고 "불공정"하게 처리할 줄은 정말 몰랐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게 "상식"이지만, "상식"은 "상식"일 뿐 "법은 사람 가려 적용된다"는 실무대원칙을 이번에도 이기진 못했다.


내가 진짜 쪽팔리고 부끄럽고 슬퍼서 이런 사건이 벌어진 나라가 어디라고 차마 내 입으로 말하지도 못하겠다. 그 나라 국민인거 외국가서 티내는게 싫어서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워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떻게 만든 자랑스러운 나라인데, 그랬던 나라의 국격이 법도 가치도 원칙도 없이 둘로 쪼개져서 목소리 큰 불량배들이 싸우는 듯한 내전 직전의 나라(어쩌면 내란중인 나라)가 되어버렸나.


애통하고 슬프다. 아니 이게 진짜 나라냐. 쪽팔려서 못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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