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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커피를 마시다가...

대학생 하숙시절 때 생각이 났다

나는 카페인 민감증이지만, 커피를 꽤나 좋아하는 스타일.


커피를 마시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정신에너지의 고저가 너무 급변하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출근해야 하는 주중에는 가급적 커피를 피하는 편이지만, 온전히 내 시간인 주말에는 가끔 이 마약 같은 카페인의 감성을 즐긴다. 달고 쓰면서 시고 고소하며 향긋한, 정말 대체불가한 맛이다.


오늘도 나른한 주말을 맞아, 실로 오랜만에 믹스커피를 찾았다.



정말 오랜만에 마시는 커피군...


커피믹스 스틱을 보면, 대학 때 같은 집에서 하숙하던 과 후배가 늘 생각이 난다.


스틱형 커피믹스는 사람마다 취향별로 설탕 양을 조절할 수 있도록 앞쪽에는 커피 알갱이가, 뒤쪽에는 설탕이 충진되어있다. 그래서, 설탕과다섭취가 걱정되는 분이나 커피를 너무 달지 않게 즐기려는 사람들은 뒤쪽 "설탕조절부분"을 손으로 꽉 쥐어 녹이는 양을 조절하면 된다.


여기까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상식.



캠퍼스엔 여학우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공과대학을 왔지만, 마음만은 싱그럽던, 흰머리도 없었고 얼굴에 주름도 없었고 광채가 났던, 젊디 젊었던 그 어느 날.


그 후배님과 커피믹스 한 잔을 즐기려는데, 후배가 커피스틱 반대편을 찢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란 내가,


"아니 ㅇㅇ군, 그러면 설탕 양을 조절할 수가 없잖아!"


뭐든 정도에 벗어나면 불편해하는 내가 못 참고 한마디 또 나서는데, 답변이 정말 걸작이다.


"이러면 대신 커피 양을 조절할 수 있잖아요."


아.


순간 머릿속에서 "징~~~" 하는 묵직한 소리가.


그렇지. 설탕물을 메인으로 즐기고 커피 양을 조절해서 먹는 사람도 있겠지. 내가 세상을 너무 좁게 보았구나. 그저 광고에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세뇌되고 있었어. 믹스커피, 커피를 많이 먹든 설탕을 많이 먹든 그거야 소비자 취향인거지, 누가 1회 커피소비량을 지정된 대로 강제할 수 있는가. 설탕을 조절해서 마시고픈 대부분의 소비자는 제조사가 시키는 대로 스틱 앞부분을 찢어서 설탕을 조절하면 되고, 커피를 조절해서 마시고픈 일부 소비자는 뒷부분을 찢어서 커피의 양을 조절하면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응용문제.

그럼, 커피와 설탕 모두를 조절해서 마시고자 하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그렇지. 가운데를 반토막 내면 된다. 가루를 안 흘리고 반토막 내기가 좀 힘들겠지만 세상일이 마냥 내 뜻대로 쉬울 거라 생각하면 안 되니까 독특한 취향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수고는 감수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런데.

그건 그거고.

당시 우리 공과대학 선배 동기 후배 통틀어서 저 커피믹스 스틱, 설탕 양을 조절하거나 커피 양을 조절해서 마시는 사람, 내 주변에서 한 명도 못 봤다. 그건 나와 내 후배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앞으로는 커피믹스 스틱 앞을 찢든 뒤를 찢든 가운데 반토막을 내든 세로로 절개하든 크게 상관하지 말고 본인 편한 대로 해서 대충 타 먹자.


그거,

사실 그렇게 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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