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민의 서러움
파키스탄에서 지사장으로 살고 있는 나는 날마다 본사에 일일보고서를 작성해서 날린다.
공장 가동현황이 매일 보고되긴 하지만 그건 사실 본사의 큰 관심사항은 아니다. 어차피 주간/월간보고서에 포함되는 내용이니까.
일일보고의 핵심은 파키스탄에 테러위험이 심해진 다음부터 '저 아직 살아있어요' 비콘 시그널 격인 셈이다.
오늘도 보고서를 쓰려고 테러 중심의 파키 국내뉴스와 대한민국 내 파키스탄 파급뉴스를 검색해 보다가 마음이 갑갑갑해짐을 느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50308043500076?input=1195m
사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파키스탄은 동쪽으론 인도, 북쪽으론 중국, 서쪽으론 아프가니스탄 및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이다.
인도는 적국이라 왕래가 거의 없고, 중국은 전통적으로 이민에 매우 인색한 나라라서 역시 왕래가 많지 않다. 이란과도 얼마 전까지 미사일 맞교환을 했을 만큼 썩 친한 사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은 참 애매한 관계인데 적국도 우방국도 아닌 애매한 줄타기를 하는 나라다.
이 이상한 관계를 분석한 나무위키 항목이 있어 가져와본다.
이 이상한 관계는 잘못된 국경선 설정에서부터 출발한다(듀랜드 라인이라 불리는 이 국경선, 또 영국이 그렸다....). 파키스탄 북서부에는 파슈툰족들이 사는데 이 민족들은 원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다. 민족적으론 아프가니스탄에 더 끌리지만 국적은 파키스탄 소수민족인 셈. 그러다 보니 이 지역 사람들은 파키스탄인이라는 정체성도 희미하고 중앙정부의 통제력도 잘 안 먹힌다.
암튼 아프간 입장에선 파키스탄은 동포가 사는 나라임과 동시에 자기 고유영토를 잠식해 들어온 침략국가 이미지가 동시에 생길 수밖에. 여기에 미국이 아프간을 손 봐준다며 평화유지군을 보냈을 때 길을 열어준 곳이 또 파키스탄이니 이거 적국이야 우방국이야 안 헷갈릴 수가 없다.
일단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오늘 키워드는 '난민'.
파키스탄에 사는 아프간 난민은 '소련-아프간 전쟁'과 '아프간 내전' 시절 급증했다.
여기에 미군이 떠난 후 탈레반이 정권을 다시 잡으며 폭정을 피해 피난온 정치난민까지 더해져서 1세대 난민 및 난민의 자녀 손주까지 합치면 그 수가 400만 명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파키스탄 중앙정부는 Proof of Registration Cards(PoRs)를 발급받은 합법 난민을 제외한 모든 불법 체류자들에게 이달(2025년 3월) 중 자국을 떠나라는 행정 명령을 내렸다.
불법 체류자에게 추방 명령을 내리는 거 맞지. 맞지... 맞긴 맞는데... 참... 마음이 불편하고 애처롭다.
아니, 저들은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파키스탄에 살고 싶어 왔나. 그저 생존하려고 왔지.
전쟁과 화마, 폭정을 피해 죽음을 무릅쓰고 생존의 땅을 찾아왔을 사람들일 텐데 어딜 다시 가라고. 돌아가면 그들의 본국과 고향에선 그들에게 환영 플래카드 펼치며 두 팔 벌려 환영한대?
언젠가 넷플릭스에서 본 '로기완' 영화가 오버랩된다.
북한에서 탈출한 '로기완' 청년이 바라던 딱 하나는 '남의 땅에서 살아갈 권리'를 얻는 것.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참 먹먹해졌었더랬다...
나라가 부강해야 국민이 행복한 건데.
자국에 전쟁, 테러, 폭정이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 건데.
한국과는 별 상관없는 난민 추방 뉴스를 보면서 온갖 복잡한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도 약해지고 내분이 생기면 보트 피플 난민 되지 말란 법이 어딨나.
그러니까 안에서 고만 좀 싸우고 나라 부강하게 만들 공통의 목표부터 좀 챙겨보면 좋겠다.
나는 이게 남 일이 아니란 생각이 살살살 든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