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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Jun 07. 2022

일기는 일기장에? 수필은 브런치에?

브런치에 일기 쓰면 안 되나?

 어느 날 친분이 있는 브친작가님으로부터 "일기는 일기장에 쓰세요."라는 댓글로 상처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응? 내 글도 태반이 일상잡다 일기인데? 이게 무슨 신박한 참견이지?"


 내가 브런치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아무리 뻘짓거리 아무말 대잔치를 써놔도 브런치는 어느 정도 필터링 된 사람들만 오는 곳이라서, 그 뻘짓 아무말 대잔치 글에도 라이킷을 눌러 반응해주시고 공감하는 말에 응원 댓글을 달아주는 작가님이 계시는 내면의 소통이 가능한 공간이라, 열린 블로그에 비해 마음을 다칠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때때로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댓글 의견이 달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 역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만~" 수준의 점잖은 표현으로 나를 폄하하거나 공개적 망신을 주던 경우는 아직 없었다.


 "역시 브런치. 역시 글 쓰는 사람들은 생각들도 깊고 배려심도 깊어."


 이런 식으로 나 역시 브런치 작가라는 자뻑 뽐뿌에 하루하루 취해서 살고 있었는데 저런 주제넘는 공격성 발언이라니. 속상해하는 브친 작가님을 대신해서 열폭해버렸다.


 그런데 그러고 하루종일 일기와 에세이, 수필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을 해 보다가, 나쁘지 않은 주제 같아서 생각한 바를 일단 글로 남겨서 공유해보고자 한다.


아래는 네이버 어학사전에서 찾은 일기의 사전적 정의이다.

일기

1.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
2.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장부.


요번에는 에세이(essay)의 정의

에세이(essay)

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보통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뉘는데,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머, 위트, 기지가 들어 있다.


찾는 김에 에세이의 동의어인 수필도 찾아보자.

어학사전에는 "수필"의 정의가 "에세이"의 정의와 완전 동일한 내용이 나오니까 "중학생이 즐겨찾는 개념 국어교과서"에서 해설된 수필의 설명부분을 링크한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3406194&cid=47319&categoryId=47319


간단히 정리하면


(수필 = 에세이) > (일기)


즉, 수필을 써서 공유하는 것이 허락되는 브런치에서 일기를 쓰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니, 브런치에 공개일기 쓰시는 분들은 주눅 들지 마시라.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브런치에서 일기 쓰지 말라고 공지한 적 없다. 그리고, "난중일기", "안네의 일기" 등 일기 그 자체가 시대를 대변하는 위대한 작품이 된 사례는 얼마든지 있으니, 우리 브친 작가님들의 일기가 후대에 그렇게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자. 여기서 끝내면 너무 밋밋한 글이 되니, 내가 조금 더 고민해본 내용을 공유해보련다.


 왜 일부 사람들은 일기처럼 보이는 글을 공격하려고 할까?

 솔직히 말하면 나도 가끔씩 아니 이걸 왜 브런치에 썼을까 하는 글을 보기도 한다. 다만 그 역시 작가님의 깊은 속 뜻이 있을 것이고, 내가 그 진미를 이해 못 해서 그려려니 생각하고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을 뿐이다. 브런치에 개인 일기를 쓰던 반성문을 쓰던 그거야 브런치를 운영하는 작가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다만, 내 입장에서 읽기가 좀 불편한 글은 대충 아래 분류에 속한다.


1. 에세이 같기는 한데, 말 그대로 그냥 진짜 "일기"인 글

 나도 글을 즐겨 쓰는 사람이고, 난독증은 아닌데, 글 읽다 보면 작가가 제시하려는 주제가 뭔지 도통 감이 안 잡히는 글들이 있다. "아침에 바쁘게 출근했는데, 상사가 이런저런 일로 불렀고, 저녁에는 장을 봐서 상을 차렸으며, 빨래가 밀렸는데 못하고 잤다." 뭐, 이런 식의 글.

 무언가 시리즈의 큰 단락의 줄기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아무 앞뒤 연결되는 글도 없이 그냥 저렇게 끝나는 글은 그냥 일기 맞다. 사실 나도 저런 글은 불편하며 피하고 싶다. 읽고나도 아무런 감흥도 없으며 그냥 무례하게 알고싶지 않은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느낌밖에 안 들어서다.

 적어도 단편집으로 만드는 글이 아니라면, 작품 하나마다 한두 개의 주제로 정리가 되어야 읽는 사람이 편하다. 작품 말미에 하고 싶은 한두 줄의 느낌을 전달하고 공유하고 싶어 긴긴 말들을 풀어내는 건데, 다 읽어도 그래서? 그런데? 그게 왜? 의문이 들면 좋은 작품으로 라이킷 하긴 힘들어진다.


2. 정제된 시도 아닌데 너무 미사여구와 함축적 언어 수사로 떡칠돼서 머리가 아픈 글

 짧은 언어로 감동을 주는 함축적인 글인 시는 이해한다. 작가만의 언어로 그럴 수도 있고, 시를 즐길 지식과 수양이 안 된 내가 이해 못 할 수도 있지. 그런데 시적 표현도 아니면서 온갖 미사여구와 은유법을 가져다 쓰면서 정작 뭘 말하려고 저러는 건지 이해안되는 말들을 풀어내는 작품이 있다. 개인적으로 사양하며 피하고 싶다. 자고로 글은 읽히려고 쓰는 것이고 일단 쉽게 술술 읽혀야 좋은 글이라는 것이 내 지론.


3. 제목으로 낚시하는 글

 우리가 날마다 얼마나 많은 기레기님들의 뉴스 제목과 유튜브 제목에 낚이나. 이걸 브런치까지 와서 당해야 하나. 구체적인 예를 들고 싶지만, 그들도 사정이 있을 거니까, 그리고 나 역시 내가 공격받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브런치에서는 남들 공격 안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니 굳이 예시를 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제목이 이목을 끄는 중요한 수단임에는 너무너무 공감하지만, 제발 제목으로 장난치는 짓은 하지말자.


4. 너무 전문용어를 많이 쓴 글

 뭐, 이건 이해한다. 해당 업무분야의 전문가끼리만 소통할 글이라면 내가 안 읽으면 그만이니까. 너무 전문적인 냄새가 심한 글은 적정한 독자 영역이 있는 법이다. 내가 모르니 친절하게 쉽게 써주세요~라고 요구할 자격이 나한테는 없다. 어쨌든 마찬가지로 내가 피하는 유형의 글.



 자. 글이 살살 길어지는 것 같으니 결론을 내 보자.

 왜 첫 줄에서 그 사람은 "일기는 일기장에 쓰세요."라고 공격성 멘트를 했을까?

 내가 그 사람이 아니니 알 도리는 없지만, 독자 입장에서 추정해보건대 아무래도 1,3번의 조합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공감될만한 제목에 이끌려 독자가 되려고 왔지만, 다 읽어보니 제목에 적힌 내용은 본문 내용의 귀퉁이밖에 안 되고, 알고 싶지 않은 남의 신변잡기만 훔쳐보고 온 느낌을 받았으리라. 그래서 읽느라 소비한 시간만 아깝고, 열 받아서 저런 말을 꺼내지 않았으려나.





 글쓰기 초보자인 내가 훈수를 둘 만한 일은 아니지만, 일기를 수준 있는 에세이로 격상시키려면 글 하나에 한 주제만 담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단락의 전개가 한 주제만 향하도록 기승전을 잘 요리하면 독자에게 "일기는 일기장에 쓰세요."라고 공격받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런치는 작가들이 만들어가는 공간.

 발행하는 모든 글이 모두 다 반짝이는 작품으로 남기는 어차피 어려우니 주눅 들지 말고 습작 일기라도 꾸준히 써서 발행해보시라. 하다 보면 그 또한 작품이 되겠지. 그리고 브친님들. 조금 마음에 들지 않고 수준 이하 글을 만나도 따뜻하게 응원해주시면 안 되시려나? 여기는 그리 각박한 바깥세상이 아니고 좋은 사람들만 모인 아름다운 브런치 세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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