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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보다 나은 오늘 Jun 16. 2022

오탈자 교정과 문서 편집이 중요한 이유

나도 결국 꼰대? 아니다. 다 이유가 있다.

 직장생활 근 20여 년 만에 드디어 실무자에서 벗어나서 관리자가 되었다.


 "가늘고 길게"를 외치며 "대충 살고 월급만 받는" 월급 루팡을 꿈꾸며 회사생활을 시작했으나, 그때까진 잘 몰랐다. 내가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 욕구가 강한 사람은 그냥 대충 사는게 더 힘들다. 그렇게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살다 보니 어느덧 자연스럽게 고위관리자가 되어버렸다. (진급 스트레스를 받고 계시는 전국의 직장인 독자분들께는 죄송하고 주제넘은 표현이나, 제 입장에서 그냥 운 좋게 그렇게 되었다고 이해해주시길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내가 젊었던 실무자 시절, 유독 문서에 깐깐한 처장님이 계셨다.

 줄 간격, 폰트, 자간, 표에 들어가는 선 굵기 하나까지 빨간펜을 다 드셨다. 아니 저분은 신문 교정교열사이신건가 업무 전반을 관리하는 기술직 상위관리자인건가 헷갈릴 정도였다. 늘 문서에 드러나는 교정 교열이 먼저 지적이 되고, 정말 기술적인 설명과 이해, 의사결정 및 판단은 그 뒷전이었다.



 자재 검수하고, 현장 감독하고, 운전부서 협조받고, 안전계획 수립하고, 부족물품 발주내고 몸이 열 개라도 바빠 죽겠구만 무슨 기술문서까지 중앙일간지 수준의 편집을 바라시나. 너무하시네. 아니, 말만 통하고 의사소통만 되면 되는 거지. 문서란 게 기록하고, 공유하고, 의사 전달하고 본연의 기능만 다 하면 되는 거 아냐?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때에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제 내가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문서가 많아졌다. 그런데, 폭력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폭력을 대물림한다고 했던가. 아윽. 이제 내가 오탈자, 줄 간격, 사진 장평비를 자로 재어가면서 잔소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잔소리가 너무 안 먹혀서 스스로 역으로 스트레스받고 있는 중이다.




 에피소드 몇 가지.


 에피소드 하나.


 최근에 직원 채용공고를 지역 신문에 실을 일이 있었다. 인사담당자를 통해 채용계획을 보고받고 지역 신문에 채용광고를 의뢰했는데, 다음날 실린 광고를 보니 기가 찬다.


"인사담당자 나한테 좀 오라고 하세요."

(몇 분 후)

"지사장님, 부르셨나요?"

"A 씨. 광고가 이게 뭡니까. 내가 몇 차례 대외문서는 챙겨보라고 강조했잖아요. 여긴 여백이 안 맞고, 저긴 우리 회사 로고가 세로로 길게 잡아 늘려져 있고. 검수를 하긴 한 거예요? 아니 이러면 일반 시민들이 우리 회사 수준을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이거 뭐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원."

"어.. 이상하다. 이게 왜 이렇게 되어있지? 제가 검수해서 넘길 때는 괜찮았는데. 아~ 지사장님. 이건요, 신문 여백이 세로가 더 길어서, 그림으로 변환시킨 우리 공고 이미지가 칸에 넣으려니 잡아 늘려져서 그런 거예요. 괜찮습니다."

"(뒷목을 잡고) 아이고 머리야. 이봐요. 여백이 여유가 있으면 그냥 여백을 남기든가, 줄 간격을 늘려서 보기 좋게 맞추던가, 이렇게 전체를 잡아 늘리면 어떡해. 아니 진짜 편집의 기본을 알고 일을 하는 겁니까? 신문사도 그렇지, 남의 회사 로고를 이렇게 마음대로 쓰는 사람들이 어딨어? (점점 말 톤이 올라간다.) 이번 건은 이미 나가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만, 다음번부터는 초판을 확인하고 내 승인받고 발행하도록 하세요. 이건, 대외 이미지 신뢰도에 관한 거야."




 에피소드 둘.


"지사장님. ○에 보고할 관리실적 및 계획입니다. 검토 바랍니다."

(몇 분 후)

"B 매니저. 당신은 매니저이잖소. 아니 그럼 기본은 지켜서 들고 와야지. 내가 내부 문서면 크게 뭐라고 안 해. 나만 알아들으면 서명해주잖아요. 이건 대외문서 아니요? 그럼 페이지 번호도 맞추고, 각 표에 기본으로 숫자 정렬도 하고, 그래프에는 단위도 명기하고. 문서의 기본이란 게 있잖아. 아니 내가 지사장인데, 이런 거까지 일일이 빨간펜 들어야 해요?"


(참고로 혼난 직원은 둘 다 현지인. 대충 다 영어로 진행됨. 나도 흥분해서 어떻게 말했나 정확히 기억이 안 남... 대충 저런 톤.)




 뭐, 이런 거 말고도 잔소리는 넘실넘실 넘쳐나는데, 가끔 좀 심하게 잔소리 한 날은 숙소의 방문을 잠그고 잔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내가 왜 실무 내용과는 0.1도 상관없는 저런 문서의 "비주얼"에 집착하는가 그 이유이다.


1. 문서는 무조건 예뻐야 한다.

 문서가 예뻐 보이려면 적당한 기준이 있다. 개조식으로 쓸지, 서술식으로 쓸지 통일성을 갖추고, 단락에 맞는 글씨체와 폰트를 설정해야 하며, 문서의 분량에 따라 목차와 페이지를 맞추고, 적절한 표와 사진을 배치하고 여백을 확보하는 등, 예쁜 문서를 만드는 얘기만 해도 책 몇 권은 쓸 만큼의 노력과 정성을 필요로 한다.

 그럼 다시, 더 고차원적 질문. 문서가 왜 예뻐야 하나? 예쁘지 않은 문서는 읽기가 싫다. 편집에 성의가 없는 문서를 읽으려면 무척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 문서를 읽기 전에 딱 봐서 예쁘고 깔끔한 첫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읽기 편하며, 읽기도 전에 신뢰가 쌓인다.


2. 오탈자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회사의 공식적 문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작성되어야 한다. 특히 대외 공문이나 보고서에 오탈자가 있으면 이는 신뢰도를 수직으로 떨어뜨린다. 한번 생각을 해봐라. 오탈자 없이 정갈한 중앙일간지 신문과 몇 단락에 하나씩 편집 오류가 보이는 듣보잡 지역신문. 당신이라면 어디 실린 기사를 신뢰하겠는가? 회사의 공식 문서에 오탈자가 있다는 뜻은, 단순히 그 내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문서 전체의 신뢰도를 갉아먹는다. 이 회사는 실무자가 쓴 걸 중간관리자가 검토하지도 않나? 이거, 믿을만한 검증된 소리인가? 오탈자 몇 개가 이런 의문을 갖게 만든다.


3. 누가 회사 로고에 마음대로 손을 대는가!!!

 회사 로고는 그 기업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로고 자체가 담고 있는 고유한 철학이 있으며, 로고를 사용하고 적용하는 표준 매뉴얼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로고의 철학을 무시하고 가로 세로로 마음대로 늘리고 줄여 사용하는 직원들이 있다. 미치겠다. ㅠㅠ 회사 로고는 국기와 마찬가지로 그 조직 내에서 신성시되어야 하며, 로고만 보아도 기업 철학과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도록 엄격히 관리가 되어야 한다. 이걸 잘 관리하지 못하면 수준 이하의 "짝퉁회사"가 되어버린다.


어느 아이폰이 예쁘고 신뢰가 가는가?


 자. 장황하게 썼지만, 결국 나도 꼰대처럼 장평비, 오탈자, 폰트 따지고 있는 이유는 결론적으로 딱 한 가지 이유이다. 회사의 품격을 유지하며, 대외적으로 신뢰감을 심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


 아. 물론, 내용의 정확성 및 문서 발행의 시효성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지만 그걸 잘해놓고도, 편집이 엉망이고 오탈자가 있는 문서는 대외적인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릴 뿐이다.


 브런치는 스트레스 해소용 취미활동인데 갑자기 일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내 글을 읽는 직장인 독자분들도 덩달아 스트레스 받으시겠다.


 ㅠㅠ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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