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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나은 오늘
Jun 24. 2022
큰 아이가 세 살쯤 되던 무렵, 집에 갑자기 금붕어 두 마리가 입양되었다.
마트에 갔던 집사람이 아이들이 좋아한다며, 작은 어항과 함께 즉흥적으로 붕어 두 마리를 사 오면서 가족이 되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나는 집에 생명체를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보다 먼저 생명을 다 할 것이고, 그걸 수습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무언가 애정을 쏟아 기르기 시작하면 이별하기가 힘들어서 시작하기가 어렵다.
금붕어가 들어온 첫날부터 마음이 무척 불편하다.
두 마리의 붕어가 살아가기엔 같이 사 온 어항이 너무 작아 보였던 것. 아우, 바라만 봐도 갑갑해 갑갑해...
다음날 당장 커다란 수조를 사 왔다. 수조에 붕어를 풀어놓고 키워보니, 너무 밋밋하다. 붕어도 몸을 숨길 곳도 쉴 곳도 필요하겠지. 바닥 자갈도 사고, 인공 어초도 사고 수조를 예쁘게 꾸몄다.
그렇게 초보 붕어 아빠로 입문했는데, 며칠 키우지도 않아서 물이 너무 탁해진다. 매 번 물을 갈아주는 것도 보통 귀찮은 게 아니다. 여기저기 검색해보니 측면 여과기와 산소공급기가 있다. 또 사 온다. 정성스레 설치하고 작동을 시키는데 물살이 너무 세서 소용돌이가 친다. 붕어들이 안 떠내려가려고 안간힘을 다해 헤엄치는데 이거 24시간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사람처럼 느껴져서 안쓰럽다. 인공수초를 더 사 오고 여과기 방향을 한쪽으로 고정해서 물살이 요동치지 않을 정도로 조정했다. 여과기에 물은 걸러지면서도 잔잔할 정도만큼의 수조 흐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금붕어들도 때때로 롤러코스터 타듯 수영을 즐기다가 자기만의 안식처에서 쉬다가 나름 적응을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금붕어들은 씩씩하게 잘 자란다. 처음에는 엄청 작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몇 달 잘 먹여 길렀더니 나름 꽤 커졌다. 굶어 죽는 물고기는 잘 없지만, 배 터져 죽는 물고기는 많다고 들어서 먹이 주는 건 한 번에 너무 많이 주지 않도록 애들한테 신신당부했었는데 성장 속도에 맞춰 밥 주기 잘했던 것 같다. 원래 크지 않은 품종인지, 수조 사이즈에 맞추어 몸 크기를 조절하는 애들인지 모르겠지만, 몇 개월 폭풍성장하더니 더 커지진 않더라.
캠핑 가서 불멍 하면 마음이 편해지듯이, 헤엄치는 금붕어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날마다 밥 주고 눈 마주치고 헤엄치는 붕어들 바라보며 힐링하고 있다 보니 점점 붕어들한테 정도 들고 때때로 말도 걸고 그랬었다.
가족들이 다 집에 있는 날은 괜찮은데, 가끔 어디 여행을 갈 때는 금붕어들이 무척 신경이 쓰인다. 여과기 덕분에 매일 물을 갈아줄 필요는 없지만, 밥은 아침저녁으로 매일 줘야 하는데, 수조 사이즈가 크다 보니 어디 편하게 들고 가서 맡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웃에게, 날마다 우리집에 찾아와서 물고기 밥 좀 부탁합니다~ 말할 수 있는 처지도 못 된다. 이런 경우를 위한 상품이 이미 있었다. 자동 모이 투여기. 배터리를 넣고 타이머를 설정하면 정해진 시간에 모이통이 싹싹 회전하면서 일정 분량의 모이를 수조에 톡 떨어뜨리는 장치.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갈 때엔 자동 모이 투여기 덕을 톡톡히 잘 봤었다. 하루 두 번 모이 주는 밥시간은 물고기들이 꼬리를 흔들며 밥 당번을 매우 반겨주는 시간이기 때문에, 자동 모이 투여기는 여행 등 집을 비울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았다. 꼬리를 흔들며 밥 잘 받아먹는 물고기 보는 것이 사실 금붕어를 키우는 큰 이유 중의 하나니까.
집 화장실에는 큰 양동이를 두고 항상 수돗물을 받아두곤 했었다. 수돗물에는 염소가 섞여있어 금붕어 서식용으로 바로 공급하면 안 된다. 입구가 넓은 양동이에 며칠 물을 삭혀두면 염소 냄새가 빠지면서 보드라운 물이 되는데, 그런 물로만 물갈이를 해 줘야 한다. 암튼 덩치는 손가락 세 마디도 안 되는 쪼꼬만 아이들이 일은 엄청 시킨다. 물을 미리 받아 삭히고, 간간이 오래된 물과 새 물을 교환해주고, 때때로 수조를 완전히 비우는 대청소를 해주고 해야 비린내 안 번지고 깨끗하고 건강하게 금붕어를 키울 수 있다. 필터 청소와 물갈이는 매 주말, 수조 대청소는 서너 달에 한 번씩 해 줬던 것 같다.
금붕어를 키우면서 이사를 두 번 했었다. 나름 큰 수조라서 옮길 때도 애를 좀 먹었는데, 이사하는 날에는 수조의 물을 1/4 정도만 채우고 랩으로 감싸서 물이 튀지 않도록 했다. 숨 막혀 죽으면 안 되니까, 상부에 바람구멍을 몇 개 숭숭 뚫어놓고 승용차로 고이고이 모셔다가 새 집으로 같이 이사하곤 했었다. 삭힌 물도 따로 챙겨야 했고 잔손이 꽤나 많이 가던 일이었지만, 어쩔 수 있나. 모셔서 같이 가야지.
금붕어는 의외로 수명이 꽤나 길다. 작은 어항에서는 10여 년, 환경이 좋은 대형 수조에서는 30년까지도 산다고 한다. 우리 집에 입양된 아이들도 큰 아이가 거의 10살이 되던 해까지 무탈하게 잘 자라주었다.
튼튼한 애들이네. 애들 대학 갈 때까지 자라주면 좋겠다 싶었는데, 어느 날 두 마리 중 한 마리의 활동이 눈에 띄게 둔해지고 밥을 잘 안 먹기 시작하더니... 결국 배를 뒤집고 둥둥 떠버린다... 7년을 같은 집에서 동고동락했는데, 이상하게 집에서 슬퍼하는 사람은 나뿐인 거 같다. 도저히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어서 집 앞 나무 밑에 작은 표식을 하고 모종삽으로 땅을 파서 묻어주었다.
한 마리가 남았는데, 친구가 먼저 가서 외로워서 그런 건가, 병이 옮은 건가 몇 주가 채 지나지 않고 마찬가지로 시름시름 에너지가 빠져가다가 동동 떠서 작별을 고한다. 지난번 묻었던 첫 묘소 옆에 두 번째 녀석도 같이 묻어주었다. 그러고 여느 장례식장에서 그렇듯 즐거웠던 날도 귀찮았던 날도 함께한 날들을 회상하며 명복을 빌어주고 돌아왔다. 수년전 회상의 기억이라 지금은 무덤덤하지만, 당시에는 내가 쪼고만 물고기 한 마리에 왜 이러나 싶었을 정도로 심히 슬퍼했었다.
나는 정이 들었던 수조를 도저히 버릴 수 없었는데 어느 날 안 보여서 물어보니 미니멀 라이프 성향의 마누라가 진작에 버렸단다. 아... 조금만 더 기억이 잊히면 버리던가 하지. 나는 아직 감정 정리가 덜 되었는데. 그거, 집 얼마나 차지한다고. 어쨌든 이제 더 이상 집에 금붕어는 없다.
입문용 애완동물로 금붕어 키우기는 괜찮은 편이다. 개나 고양이에 비해 손이 크게 많이 가지 않으며, 놀아달라고 보채지도 않고, 짖거나 쿵쾅거리는 일도 없고 발정이 나서 힘들어하지도 않는다. 충분히 수명이 길어서 잘 만 키우면 수십 년 키우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물갈이 및 수조 청소는 수조 사이즈가 조금만 커지면 상당한 근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내 몸하나 건사하기 힘든 날에도 금붕어 집사가 되어야 하는 수고쯤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방랑생활이 끝나고 귀국하게 되면, 영혼의 친구가 되어줄만한 금붕어를 다시 입양해서 키울 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