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발산 그 사이 어딘가

0617_ 음악이라는 향수

by Amy
music.jpg

멜론을 끊지 못하는 이유는 음악에 담긴 내 기억 때문인 것 같다. 그게 기쁜 기억이든 씁쓸했든 지나고 나면 괜스레 더 애틋해지기 일쑤라서 더더욱. 그리고 내 삶 속 각 순간마다의 다채로운 색채를 알고리즘이 알량하게나마 분석해 주고 비슷한 걸 내어주기도 하는데, 10프로의 확률이어도 내 입맛에 딱 맞는 걸 줄 때는 너무 기특하기도 하다.



대체로 테디의 음악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고등학생 때도 빅뱅보다 2ne1을 더 좋아했다. 그 뒤를 이은 블랙핑크와 아직 별로 조명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는 이즈나와 MEOVV까지. 내 안에 있긴 한데 일상에서 다 발산할 수도, 당연히 충족시킬 수도 없는 못된 년 같은 구석이 이런 노래들을 들을 때 그나마 숨 쉬는 거 같다. 교회를 다니고 진심으로 신앙이 내게 유의미하면서도 그런 기질은 아예 없어질 수는 없는 건가? 그냥 소멸시키는 건 포기하고, 때때로 연명할 정도로 먹이 가끔 던져주고 데리고 산책 가끔 시켜줘야 폭발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건가.



멜론은 각 달 별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노래들을 순위 매겨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어주는데, 간혹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때면 첫곡에서는 내가 이랬나 생소하다가도 금세 그때의 감정으로 다시금 쏙 빠져들게 된다. 누군가는 향으로 어떤 시절의 자신을 기억한다 하는데 그것도 물론 공감가지만, 아무래도 음악을 이길 순 없는 것 같다.



불안정한 10-20대 초반을 지나 드디어 나름의 가치관의 뿌리가 세워지는 느낌, 오래도록 잠수하다 비로소 숨 쉬는 것 같던 때 많이 듣던 Hillsong의 This is Living(acoustic ver.) 한 구절 한 구절 그렇게 곱씹으며 마음 저 밑바닥에서부터 부르던 노래가 내게 또 있던가. 어두컴컴해질 때면 아무도 없길 바라며 동아리방에 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게 그때의 호흡이자 나만의 예배였다.


7년을 사귀고 결혼하게 된 우리 사이. 그 긴 기간, 열정이 들끓는 20대에 흔들린 적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런 나를 항상 붙들어준 구남친 현남편에게 드는 나의 미안함과 고마움, 애정을 대변해 주는 거 같던 고갱의 too good for me.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한으로 치달았을 때 나 대신 욕해주고 멋대로 굴어주는 거 같아 고마웠던 빈지노의 Break. 퇴근길에 틀어놓고 나도 함께 “난 자유롭고 싶어”라는 노래를 부르다 보면 머리에 잔뜩 쌓인 열기가 조금이나마 날아가곤 했다. 이 노래에 대해 같이 이야기한 적 없는데 프로필뮤직으로 설정해 둔 옆자리 동료와는 괜히 더 깊어지는 기분.


아이유 음악 중 안 들어본 게 없는데, 한 번도 와닿지 않다가 어떤 인간도 나를 위로할 수 없을 때 살며시 다가와 눈가에 고인 눈물을 같이 씻어주던 한낮의 꿈. 피처링된 양희은의 목소리를 들으며 인간은 목소리도 늙는구나, 그런데 그 인생의 풍파가 잔뜩 묻은 목소리 자체가 위로의 포옹이 돼주기도 하는구나 처음 느끼기도 했다.



태초의 인간들도 기록만 못 했을 뿐 노래하지 않았을까. 마음의 소리를 악보에 옮기면 선율만 더해졌을 뿐인데 참 그리 마음을 씻겨주기도, 꽁꽁 뭉쳐있던 실타래를 풀어 폭죽과 함께 멀리 날려주기도 한다. 일기를 꾸준히 쓰지 못했어도 지난날에 많이 들은 플레이리스트가 그 어떤 기록보다 정확한 향수가 되어주기도 하고.


아무래도 멜론은 한동안 해지하지 못할 것 같다.ㅎㅎ

이전 07화호기심 화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