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13_ 생기부의 악몽
이제는 (적어도 한동안은) 남의 일이 돼버린, 작년 이맘때쯤 꿨던 꿈이 있다. 파이리가 진화해 리자드, 또 한 번 진화해 최고봉인 리자몽이 되듯 그때의 내 꿈도 3단계의 진화과정까지 겪었다.
일상에서 작고 큰 스트레스가 있을 때면 시험 보는 꿈을 꾸곤 한다. 과목은 내가 제일 싫어했던 수학. 무엇을 위한 시험인지, 내가 몇 살인지 아무 정보도 없다. 단 한 가지 분명한 건 시험 준비가 안 되어있다는 사실. 시험 보는 도중에 난감함을 느끼는 시점에서 꿈이 시작될 때도 있고, 때로는 시험 직전 범위를 살펴보는 데 하나도 모르겠어서 식은땀이 나는 시점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주변 교사들과 이야기해 보니 시험 보는 꿈을 꾸는 사람들이 꽤나 흔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꿈이 반복되면서 주변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의사들 중에는 더 자주, 더 압박감 있게 꾼다는 자들도 있었다.
어느새 ‘스트레스받는다는 뜻이구나’ 하고 어느 정도 자연스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꿈을 꾸면 ‘내가 요즘 무엇에 압박감을 느끼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라는 건강한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작년 이맘때는 내가 일하면서 가장 큰 생기부 스트레스를 받을 때였다. 고등학교 교사라면 열에 여덟아홉은 아마 생기부 쓰는 순간이 제일 스트레스일 것이다.
내가 교직생활을 처음 시작한 인문계 고등학교는 한 반에 20명 남짓, 총 7반이었으니 참으로 이상적인 학생수를 자랑했다. 그 분량에 4년간 익숙해졌던 터라, 1년의 중학교 생활을 거친 후 2024년 근무했던 고등학교의 생기부 양은 익숙해지기 쉽지 않았다. 한 학급에 35-38명씩 13반. 겨울방학에는 담임반의 분량 또한 끝내야 했다. 동아리에 16+1 분량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구열이 높은 학생들이 있어 개세특 분량 또한 만만치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겨울방학 중 한일교류사업에 참여해야 했으니 그로 인해 뺏기는 시간들도 꽤나 많았다. 2학기 중에 최대한 많이 끝내려 했으나 그때도 맡은 일이 꽤나 있었어서 바랬던 분량의 발끝도 못 미친 채 방학은 시작됐다.
내가 1월 내내 하루에 끝낸 양은 평균적으로 35명*500자. 내 본인의 생각이나 일기를 쓴다 해도 하루에 쓸 수 없는 양을 매일매일 공장처럼 찍어냈으나 끝이 보이질 않았다. 모니터 옆에 쌓여가는 과자봉지와 커피자국이 남은 컵들. 가끔은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기도 했으나 그럴 시간이 없었다. 또 막상 학생들의 1년간의 활동지를 보면 노력이 갸륵해 질을 타협하는 것도 만족스러운 답안은 아니었다. 연수도 열심히 다니고 생기부를 많이, 정성스레 써주는 것에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을 비우고 생기부 AI가 되었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려 노력해 봐도 스트레스는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꿈속에서 이번에 나는 수학수업을 해야 했다. 공식도 하나 기억나지 않는 미적분이라던가.. 칠판 앞에서 무력한 나는 결국 학생들에게 문제를 풀라고 하고 교무실에 내려와 급히 수업준비를 하려 했다. 했으나..! 문제를 너무 빨리 푼 스마트한 학생들이 금세 뒤따라와 교무실 문을 두드리며 “선생님 저희 다 풀었어요! 언제 오세요?” 하고 보채는 꿈이었다.
그 꿈 이후로 일주일을 더 공장 가동했으나 생기부는 여전히 안 끝났고. 꿈속에서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다만 이번에는 애들이 보채서 교실로 다시 올라가는 길에 교감선생님을 마주쳤다. 실제로는 교감선생님과 사이가 좋은 편인데.. “**샘, 수업 중에 어딜 가세요?“라는 질문에 진땀을 뺐다.
그 꿈 이후로 또 일주일. 개학이 이틀 남았는데 생기부는 아직 안 끝났고 압박감 최대치. 결국 같은 꿈을 또 꿨다. 다만 이번에는 애들이 보채서 교실로 다시 올라가는 길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에는 역시나 교감선생님이 계셨고, 같은 질문에 진땀을 빼던 와중에 엘리베이터가 추락해 버렸다.
그 꿈을 꾼 다음날 무사히 생기부를 다 마쳤고, 역대급으로 괴로웠으나 역대급으로 뿌듯하기도 한 채로 개학을 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생기부로 고통받는 선생님들도, 학기 중에 산뜻하게 끝내셨다는 분들도 계셨다. 수정사항이나 오류를 들고 교무실에 삼삼오오 찾아오는 학생들도 많았다. 어쨌든 간당간당 하지만 오류사항도 없이 무사하게 세이프!
지금 생각해 보면, 항상 너무 진지하게 임하고 너무 기준치가 높다. 그래서 생기부 스트레스가 더 심했을지도... 아직은 복직 후 어떤 태도로 임하는 것이 답인지는 모르겠고, 미리 고민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우선순위가 조금은 달라진 현재의 상황에 또 나의 최선으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거 밖에는. 그때의 일은 그때의 내게 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