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두 번째로...... 비행기를 놓치다
마지막날 12시쯤 돌아가는 비행기라 생각하고 여행 첫날부터 마지막을 장식할 숙소 주변의 브런치카페를 서치해뒀었다. 왜인지 모르게 마지막 브런치에 대한 기대가 높아 하루에 한 번은 남편에게 이야기했던 것 같다. 우리 이 날 맛있는 브런치 먹고 공항 가면 되겠지?
계획대로 일어나 느긋하게 짐을 싸고 체크아웃을 하고, 전날 내 맘에 확정해 둔 브런치카페를 구글 맵에 찍어 남편에게 건넸다. 임신 전부터 여행 중 길 찾기는 남편의 몫! 한번 갔던 길은 잘 기억하지만 지도를 지독히도 못 보는 나와 공간감각이 끝내주는 남편. 숙소에서 25분쯤 걸었나, 산뜻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는 회사원들과 등교하는 학생들을 콧노래 부르며 지나쳤다. 출근, 등교하는데 우리는 브런치 먹으러 간다~ ♪ 이게 바로 평일 브런치의 유쾌함이지. ㅎㅎ
도착했는데 웬걸, 내가 찍어준 곳이 아니네. 남편이 지도를 들고 가던 중 실수로 다른 걸 클릭했나 보다... 차를 가지러 다시 숙소에 25분을 걸어갈 것을 생각해서 여기서 그냥 먹자고 했지만, 하필 비건 브런치라서 남편이 싫어한다. 고민하다 결국은 다시 20분가량을 걸어 내가 처음 찾았던 브런치 카페로.... 이번 여행 내내 유독 덜렁거리는 남편에게 짜증이 났지만... 마지막 브런치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애써 눌렀다.
빠르게 걸어오느라 땀이 송글 맺히고, 머물 시간은 좀 촉박해졌지만 카페는 기대만큼 예뻤다. 여기는 뭐 직원들도 상큼하고 예쁘시다. ㅎㅎㅎ
메뉴도 내 마음에 쏙 들고, 기분 좋게 마지막 브런치를 짧게나마 즐겼다. 오키나와에서 제일 맘에 들었던 카페라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더 여유를 부리고 싶지만, 돌아 돌아온 거리 때문에 결국 얼마 앉아있지 못하고 다시 숙소로 출발... 차를 가지고 렌터카를 반납하러 업체에 갔다.
여행을 준비할 때 남편은 직장을 다니고, 직장이 유독 바빴고, 나는 휴직 중이었으니 거의 모든 것을 내가 알아보고 예약을 했었다. (이번 경비는 온전히 남편이 번 돈.. ^^;) 그 와중에 남편 폰으로 예약한 게 딱 2개 있었으니 렌터카와 비행기티켓. 꼼꼼히 체크를 하는 성격이 아닌 남편을 이미 잘 알기에, 내가 트리플이라는 여행 어플로 대략적인 여행 스케줄을 정리해 뒀었다. 남편과 공유도 했지만 거의 나만 체크하면서 이제는 가야겠다- 등의 말을 하곤 했었다.
렌터카를 반납하려는데 남편이 갑자기 허둥지둥한다. 차키가 없댄다. 차 안에 차키가 없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테니.. 잘 찾아보라는 말에 온갖 곳을 다 뒤지더니 캐리어 깊숙한 곳에서 꺼낸다. 왜 캐리어에 차키를 넣어두지..? 짜증이 다시 한번 치밀어 올랐다.
간신히 오전 10시에 렌터카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가는 셔틀을 탔는데 남편이 이상한 말을 한다. 오전 8시까지 반납으로 자기가 잘못 설정했는지 2시간이 지나서 추가 돈을 더 냈다고.
뭔가 쎄하다... 예약은 분명 나랑 더블체크하면서 했는데, 틀렸을 리가 없는데? 급하게 남편보고 비행기티켓을 체크해 보라고 하니.. 이럴 수가 12시쯤 오키나와에서 출발이 아니라 12시쯤 한국에 도착이다.......
청주공항으로만 운행하는 에어로케이로 예약을 했었는데, 그 항공사는 전날이나 당일에 알림톡이 안 오는 항공사였고.. 나는 트리플 어플을 몇 번을 확인했으나 12시 출발로 이미 머릿속에 잘못 입력되어 몇 번을 봐도 오정보가 고쳐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몇 번을 마지막날 비행에 관해 이야기했어도 남편은 한 번을 자신의 폰에 있는 항공 정보를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10시쯤 공항으로 가는 렌터카업체 셔틀에서야 깨달아버렸으니... 이미 비행기는 떴고, 급히 알아봤지만 환불은 당연히 못 받고. 남편이 급히 알아본 다음 비행 편은 3시쯤 출발하는 인천공항 행. 3시까지 오키나와공항에서 기다려야 하는 것보다 화가 나는 것은 우리 차는 청주공항 주차장에 있다는 것................ 결국 원래는 2시간 비행 + 1시간 자차 = 총 3시간에 안락하게 도착할 수 있는 우리 집을... 공항에서 버려야 하는 5시간뿐만 아니라.. 2시간 반 비행 + 집까지 버스로 2시간 + 택시로 20분 = 총 5시간을 이동해서 가야 한다는 사실.......................
한국에서부터 일본 귀여운 가게들에서까지, 육아용품을 구매할 때마다 한 푼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아등바등했던 내 과거와....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매서울 추위와 한가득 짐과 함께 대중교통으로 돌아갔을 때 빠르게 소진될 나의 체력이.... 한꺼번에 머릿속을 채우더니....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물론 비행시간을 착각한 내 잘못도 있지만, 내가 매일 말했는데 한 번을 체크해주지 않은 남편에 대한 분노가 터져버렸다. 사실 말하자면 매우 긴 이야기이나 짧게 말하면 신혼여행 출발 시에도 남편의 불찰로 호주행 비행기를 놓쳐 다음날 출발했었다. 그때는 여러 이유로 빠르게 용서가 가능했다. 하지만... 뱃속의 샬로미의 안녕도 걱정되면서.. 이미 피곤한 상태의 임산부에게 자비란 쉽게 행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 너무 너무 화가 났다.
남편은 거의 울 듯이 자책을 하면서 자신을 때리라고 했다. 여행 내내 덜렁거렸던 것들이 다 생각나면서 정말 너무 미워서 진짜로 공항에서 남편을 퍽퍽 때렸다. 지나가는 일본 아저씨가 쳐다본 것 같기도 한데, 울면서 가슴팍을 퍽퍽 때렸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려서 손톱으로 얼굴을 한번 긁기도 하고..(그 와중에 상처낼만큼은 안 함..) 그래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머리로는 '어차피 공항에서 기다려야 할 시간에 못 갔던 우미카지 테라스나 택시 타고 갔다 올까?'라는 계산이 진즉에 섰지만, 기분이 너무 좋지 않아서 그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받아들였다. 정말 오랜만에 감정조절이 아예 안 됐었다.
한 것도 없이, 울고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흘러 다른 관광지를 들를 시간은 없었고, 배도 고파 이렇게 된 거 마지막으로 먹부림이나 하자 싶었다. 한 번쯤 먹어보고 싶었지만 여행 중 기회가 없었던 포크타마고오니기리도 먹고, 오키나와에만 있다는 A&W버거도 먹었다.
좋게 생각하자... 하고 돌아온 인천. 비가 내린다......... 결국 대중교통으로 집까지 돌아오는 동안 아무리 안 맞으려 했으나 중간중간 비를 맞았고,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남편에게 짜증을 부렸다.
긴긴 여정 끝에.... 집에 와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사과를 했다. 이놈의 호르몬.... 사과를 하다 보니 눈물이 또 광광... 다행히 어쨌든 잠들기 전에 화해를 했다.
다음날. 몸이 심상치 않다. 감기에 걸렸다.
오키나와 여행 첫날부터 너무 옷을 얇게 입어 감기에 걸렸던 남편. 이번에는 안 옮으리라 그렇게 애를 썼는데 어제 추웠고, 여독도 있었을 테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가하는 길에 비를 맞아서인지 결국 감기에 걸렸다. 다시 화가 난다..........................
그렇게 걸린 감기는 2주를 갔다. 산부인과에서 임산부가 먹을 수 있는 약도 처방해 주시긴 했는데, 아무래도 먹기가 찝찝해 먹지 않았다. 잠자다가 기침 때문에 깨기도 하고, 머리가 아프고 몸살기운이 계속 있어 선약들도 취소하고 집에서 오래도록 쉬었다...... 아플 때마다 남편한테 화가 났다.
이럴 거면 뭣하러 그 돈 들여 오키나와를 갔나?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고, 한동안 여행을 못 갈 걸 알기에 나를 생각해서 남편이 가자고 한 여행이었다. 본업 외에 외주를 잡아 번 돈으로 간 여행이었다. 즐겁고만 싶었는데..
평소에 둘이 여행을 다닐 땐 내가 체크를 주로 하고, 남편은 길 찾고 운전하고 짐 들어주는 걸 주로 했었다. 문제가 없었는데. 샬로미의 존재로 인해 나는 내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것이 최우선순위가 되었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신경이 다른 데로 쏠려있다 보니 남편이 나 대신 체크해줘야 할 것들이 생겼는데 그리 안 해버릇했으니 빵구가 유독 많이 난 여행이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탄 2주 동안... 아쉬웠던 점은 우리가 부부로서 그리고 가족으로서 서로 채워나가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내가 주로 계획도, 체크도 잘하고, 남편은 긍정적이고 다른 부분들을 잘 하지만. 샬로미가 태어나면 신경 쓸 큰 것이 하나 더 생기니, 결국 남편도 미리 계획하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더블체크하는 습관이 어느 정도는 꼭 필요하다. 내가 1000번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웬만한 사람들에게 잘 없을 2번째 비행기 놓치는 사건을 겪고 나니, 남편도 알아서 깨달았던 것 같다.
이번 여행 전에는 사실 내가 왜 이렇게 남편한테 쉽게 짜증을 내나, 남편을 존중하는 모습을 일상에서 보여줘야 딸도 좋은 걸 보고 배울 텐데, 남편은 착한데 나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 짜증 날 만하니까 짜증 낸 것도 있구나..ㅋㅋㅋㅋㅋ 역시 둘 다 노력해야 하는구나.
우당탕탕 오키나와 태교여행. 남편과 갔던 여행 중에 제일 재밌거나, 제일 설레거나 하는 여행은 아니었다. 제일 갈등도 짜증도 피곤함도 아쉬움도 많았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돌아보니 남편의 나를 향한 사랑이 마음에 제일 크게 남는다. 군말 없이, 시킨 사람 없는데 자발적으로, 잠도 줄여가며 돈을 벌어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가준 남편. 샬로미와 처음으로 셋이 하는 여행이라며 즐거워하던 남편. 언제나 그렇듯 작은 것에도 기뻐하며 춤을 추던 남편. 여행 가서도 매일밤 다리를 주물러주고 튼살크림을 발라주고, 무거운 건 절대 못 들게 해 준 남편. 내가 순간 잘해준 건 까먹고 서운함만 폭발해 공항에서 본인을 때릴 때도 말없이 맞고 있던 남편...
여전히 둘 다 부족하고 평생을 완벽할 수 없겠으나, 서로 채워주고 맞춰가며 아름답게 함께 늙기를 소망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 첫 번째는 부모의 좋은 관계라고 생각해 왔다. 때로는 인간인지라 우리도 삐걱거리지만, 가장 큰 선물을 샬로미에게 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완벽하진 않지만, 계속해서 각자 그리고 또 가족으로서 함께 성숙해 나가는 가족이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