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보다 내가 더 잘 먹고 다니는 여행은 정말이지 처음이야
둘째 날 일찍부터 푹 잤더니 셋째 날 일찍 눈이 떠졌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준비해 주신 한국+일본식 조식을 먹었다. 평소 여행에서 하루 2만 보 넘게 걷고, 아침에 잘 일어나지 못하는지라 9시까지 조식인데.. 먹을 수 있겠지 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첫 입을 먹었을 때는 슴슴하니 그냥 괜찮네 였는데 웬걸 내 반찬들을 싹싹 비우고 남편 반찬까지 더 먹었다. 밥도 반공기 리필..... 아침밥도 잘 안 챙겨 먹는 내가 이렇게 잘 먹다니.. 이건 임신의 힘인가 담백한 사장님의 음식솜씨 덕인가.... 임신준비기간부터 커피를 끊고, 임산부라 일본 와서 온천을 누리지도 못했지만, 그래서인지 남편이 전날 호텔대욕장 내 자판기에서 뽑아온 커피우유는 입가심으로 아주 꿀맛이다. 오히려 좋아.
아침을 든든히 먹고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하며 예약한 공방으로 향했다. 오키나와에서 이틀간 예전과는 사뭇 다른 체력으로 놀랜 와중이었으니, 전날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공방을 추천해 주셨을 때 이거다 싶었다. 많이 걷지 않으면서도 오키나와에서만 만들 수 있는 추억 쌓기! 유명맛집 플리퍼 스테이크 주변에 위치한 공방에는 귀여운 앵무새와 관광객에 매우 호의적이신 사장님 부부가 기다리고 계셨다. 소박하면서도 아기자기 귀여운 제품들이 사장님 부부와 꼭 닮았다. 많은 후보군 중 우리는 테이블매트를 칠하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실크스크린의 원리로 채색하는데, 과도하게 어렵지 않아 적당한 시간을 소요한 채 힐링할 수 있었다.
시사, 건물 지붕마다 있길래 이건 뭘까 궁금했는데 오키나와의 수호동물이라고 한다. 암수 한 쌍이 항상 함께인데, 입을 벌리고 있는 수컷은 악을 내쫓고, 입을 앙 다물고 있는 암컷은 복을 놓치지 않고 선한 기운을 지킨다고 했다. 미신은 믿지 않지만 오키나와에 태교여행으로 왔으니 좋은 기운을 간직하고자 나는 시사 디자인을 골랐다. 남편은 어제 감명 깊게 본 돌고래쇼를 추억하며 바닷속 친구들이 있는 것으로!
채색하는 도중 시시콜콜 사장님 부부와 대화를 나눴다. 나와 남편의 짧은 일본어를 듣더니 마구 칭찬해 주시던 사장님, 알고 보니 우리의 일본어 실력보다는 뛰어난 한국어 실력을 숨기고 계셨다. 일본어와 한국어를 엉망으로 섞어 소통하지만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간사이 지방에서 은행원으로 일하시던 시절 오키나와에 휴가를 왔는데, 그 시간이 너무 힐링이 되어서 이주를 결정하셨다고 했다. 오키나와와 이 공방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느꼈던 그 쉼을 선물하고 싶은 맘으로 야심차게 한국어까지 공부하셨는데, 코로나로 인해 몇 년간 쓸 일이 없으셨다고 했다. 돈이야 은행원 시절이 더 많이 벌었지만 현재 훨씬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계시다는 말씀에 뭔가 마음이 훈훈해졌다. 같이 간 사람과만 소통하며 좋은 곳들 다니는 것도 물론 좋지만, 역시 여행은 현지 사람들과 이야기와 삶을 나누며 더욱 풍성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여유를 즐기며 완성한 작품은 한국에 와서 후작업을 해야만 결과물을 볼 수 있었지만, 후작업도 간단했고(남편이 함ㅋㅋㅋㅋㅋㅋ), 지금은 우리 집 한 켠을 장식하며 그때의 사랑스러운 추억을 잔잔히 뿜어낸다. 살짜쿵 비가 올락 말락 한 아침이라 더욱 산뜻하고 만족스러운 하루의 시작! 귀여운 동전지갑도 하나 겟하고, 주변 아기용품점으로 향했다. 추리고 추려 정말 맘에 쏙 드는 몇 개의 옷가지와 담요, 장난감을 구매했다. 샬로마 우리는 이렇게나 기대하며 너를 기다리고 있어..! 남편과 아기용품을 구경하는 것은 정말 그 자체로 너무나 큰 행복이다.
코우리섬도 구경하고 섬 내 발견한 귀여운 카페에서 늦은 점심도 먹었다. 문자 그대로 에메랄드빛 바다는 아름답게 빛나고, 평화롭다... 액티비티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물놀이를 못 해 못내 아쉽지만, 샬로미까지 함께할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남편이 강력히 원해서 방문한 카페는 함박스테이크도 맛있었지만 프렌치토스트가 일품이었다. 레시피를 배워오고 싶을 지경! 점심이라 함박 두 개 시킬까 고민했는데 프렌치토스트 안 시켰으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국제거리에 도착했다. 호텔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나온 국제거리 시내. 세계 어딜 가든 화려한 밤거리 구경은 하루쯤은 꼭 해줘야 한다. 일본 5번째 방문이지만 처음 먹어보는 이치란라멘! 워낙 유명하지만 호불호가 갈린다 들었다. 15-20분 정도 기다리는 건 나쁘진 않았는데, 우리나라처럼 대기석에 의자를 조금이라도 놔줄 순 없는 걸까 ㅠㅠ.. 중간에 다리가 너무 아파서 화장실에 가 변기에 좀 앉아있었다. 내 얼마 안 되는 체력을 여기서 이만큼 소진하다니... 너무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임산부는 별게 다 서러울 수 있구나. 그렇게 기다려서 먹은 이치란라멘은 웬걸 내 입맛에 딱이었다. 원래도 남편이 양이 더 많고, 라멘이나 면 종류는 남편이 훨씬 더 많이 먹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리 추가를 해봤다. ㅎㅎㅎㅎ 사리는 샬로미가 먹은 걸로. 확실히 20주쯤 되니 식욕도 들고 먹는 양도 들었다. 입덧 기간을 되돌아보면 감사할 뿐이다. 직원을 대면하지 않고 그릇에다 돈을 내고,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서빙하시는 것도 뭐 한 번쯤 드디어 체험하기엔 재미있었다.
4박 5일의 여정 중 4일째 날은 잔잔하고 아기자기하게 산책을 많이 했다. 국제거리의 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우키시마거리가 나오는데, 고즈넉하니 각자의 개성을 살린 가게들이 매력 있었다. 골목골목 구경하고 시장까지 한 바퀴 돌며 미깡(귤) 구매해서 과일 충전 ㅋㅋㅋㅋㅋ 그리고 드디어 먹는 오키나와 스테이크!!!! 정말 임신하고 많은 게 바뀌긴 했다. 원래라면 우키시마거리에서 구경만 하고 지나치진 못했을 텐데.. 옷이든 소품이든 뭔가는 내 손에 들려있었을 텐데 귤을 들고 스테이크 오픈런이라니..ㅋㅋㅋㅋㅋㅋ 예쁜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면 그 돈으로 샬로미껄 사고 싶고, 맛있는 걸 먹고 싶다. ㅋㅋㅋㅋㅋㅋㅋ 모성애와 식탐.. 이라는 동물적 본능에 더 가까워진 나.. 나쁘지 않아.
오키나와는 스테이크가 저렴하다고 들어서 한국에서부터 기대를 했었다. 입덧이 끝난 후 제일 끌리던 음식 탑2가 딸기와 소고기였기에!!!! 88스테이크로 가 부채살스테이크 1, 안심스테이크 1을 먹고 더 먹고 싶어서 런치스페셜까지 주문해서 2인 3스테이크를 해치웠다ㅎㅎ 부채살이 제일 맛있었고, 음식점을 나갈 때 파인애플을 추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매우 아쉬웠지만... 저렴한 가격에 스테이크를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우선 대만족! ㅎㅎ 버터밥도 잘 어울렸다. 평소면 스테이크가 아무리 맛있어도 고기만으로 배를 채우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스테이크도 먹고 파스타도 좀 집어먹고 했어야 하는데 샬로미가 아주 입이 고오급인지 임신 후 소고기 마지막 조각은 항상 내 것이 되어버렸다. ㅎㅎㅎㅎㅎㅎ 디저트로 블루씰 아이스크림 한 번 더 먹어주고!
이번 여행은 정말로 잘~ 먹고 돌아다닌다. 이토록 먹을 것에 치우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던가.. ㅎㅎ 항상 여행을 가면 나름의 미식가인 남편은 음식이 중요하고, 나는 그곳에서의 경험을 더 중시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입덧이 끝난 직후여서 그런지 내가 남편보다 더 잘, 더 많이 먹은 최초의 여행이 된 것 같다. ㅎㅎㅎㅎ 샬로미 덕분에 인생에 다양한 첫 경험을 하는구나.. ^^ 먹는 즐거움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지, 입덧을 거치며 정말 많이 깨달았다.
스테이크를 먹고 미나토가와 스테이트사이드 타운을 구경했다. 미군 가족들이 이전에 살던 곳이라고 하던데, 그들에게 익숙한 대로 골목골목 도로명이 미국 스럽다. 아기자기 예쁘지만 일찍 닫는 가게들이 많아 일부러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좋은 산책이었다.
저녁에는 첫날 아메리칸빌리지의 밤 분위기가 너무 맘에 들었던 나머지, 아메빌을 한번 더 방문했다. 선셋비치에서 노을도 구경하고, 가자마자 아사이베리도 먹고! 체력이슈로 미처 다 돌아보지 못했던 연말 분위기 뿜뿜하는 빈티지가게들을 맘껏 구경했다. 어차피 지금 나는 입어봐도 핏이 나지 않으니..ㅎㅎㅎㅎ 남편 옷가지들만 골라주고 나서는데도 만족스럽다. 드디어 아메빌을 구경하고 싶었던 그 할당량이 다 찬 기분^^ 그리고 한 손에는 타코야끼...ㅋㅋㅋㅋㅋㅋㅋ 옷보다 먹을 것이라니.. 나 참 많이 변했다. 어느새 또 다리가 아프길래 꽉 찬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갔다.
마지막 밤을 기념하며 남편이 찾아둔 호텔 주변에 야끼또리 집! 술은 못 마시지만 그래도 기분이라도 내고 싶었다. 꼬치들과 오니기리, 다양한 사이드들. 호쾌하신 사장님 덕에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한국에서 산부인과 담당 선생님께 스시 먹어도 되냐고 여쭤보면 탈만 안 나면 되지 당연히 된다고, 그럼 일본사람들은 애 어떻게 낳냐고 하셨었는데.. 친절하신 사장님은 내가 임신 중인 걸 알아채고 날계란도 못 먹게 하신다. ㅎㅎㅎ 일본도 역시 임산부들은 먹거리를 조심하긴 하네ㅋㅋㅋ 남편과 웃으며, 먹으며, 마지막밤의 낭만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