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비비안 마이어-존재의 ‘발견’ 혹은 ‘찾기’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 도서 <역광의 여인, 비비

by 오색빛깔 라희뷰

다정한 혹은 괴팍한, 비비안 마이어

(사진 1) Vivian Maier © vivianmaier.com


죽음 후 발견된 사진으로 마침내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 그러나 생전에 그를 알고 지냈던 수많은 이들은 무척 다정한 사람으로 혹은 이상하고 괴팍한 모습으로 기억한다. 상반된 두 얼굴로 비춰진 인물, 비비안 마이어를 곱씹는 두 작품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Finding Vivian Maier>(2013) 그리고 도서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 Une Femme En Contre-Jour >(2022)다.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경매에서 그의 사진을 입수해 세상에 공개한 존 말루프를 화자로 하여, 비비안 마이어를 기억하는 친구, 이웃, 고용주, 지금은 성인이 된 그가 돌봤던 아이들 등의 인터뷰로 존재를 역추적한다. 더불어 그가 남긴 사진 작품과 각종 수집품, 글과 영상 기록물 등을 교차해 보여준다. 이와 달리 도서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소설가 가엘 조스의 시선으로 그를 묘사한다. 공원에서 쓰러져 무관심 속에 죽음을 맞이한 비비안 마이어의 모습으로 시작해 불행한 그의 가족 계보를 찬찬히 훑어가며 사진이 그의 삶에 들어오게 된 과정과 연관된 사람들을 보다 세밀하게 바라본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비비안 마이어를 추적하고 관찰하고 묘사한다. 그 경계에서 우리는 자신이 포착한 또 다른 비비안 마이어를 만난다. 또 다른 비비안 마이어는 나 자신이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나 혹은 원하지 않는 나일 수도 있다. 이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쓰여진 영화의 원제와 같이, 비비안 마이어라는 존재를 ‘발견 Finding’하는 과정인 동시에 ‘찾는 Chercher’ 여정이기도 하다.

조각난 인물, 퍼즐의 완성

(사진2,3) Finding Vivian Maier(2013) © Rabin Pictures / Vivian Maier © vivianmaier.com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에서 존 말루프가 사진작가나 기자의 것으로 예상하고 추적해간 필름 상자의 주인은 다름 아닌 유모였다.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을 돌봐주던 유모 비비안 마이어는 수천만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단 한 장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고 세상을 떴다. 존 말루프가 현상해 공개한 사진만 15만 장, 아직 필름 째로 남아있는 자료도 상당했다.

인터뷰이가 저마다 달리 묘사하는 비비안 마이어는 다소 기괴하면서 비밀스러운 존재다.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밝히려 하지 않았고 프랑스 억양이 섞인 영어를 쓰면서 한참 유행이 지난 옷을 입

고 성큼성큼 걷고 늘 카메라를 목에 메고 다녔던 사람. 아이들을 데리고 산과 들로 나가 자연 속

에서 놀아주며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 도살장과 빈민가에 데려가 트

라우마를 남긴 사람. 매일 뉴욕타임즈를 읽으며 인간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헤드라인을 수집

하길 좋아했고 방을 넘어 정원까지 신문지를 쌓아두고서 그걸 정리하면 불같이 화를 냈던

사람. 모두 인터뷰이 입장에서 말한 단편적이고 일방적인 기억이지만 그 또한 비비안 마이어라는 인물의 퍼즐을 맞추는데 도움은 된다.


(사진4,5) 도서<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2022) © 뮤진트리 / Vivian Maier © vivianmaier.com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를 읽어보면 그가 살아온 삶을 보다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비비안 마이어는 할머니 외제니와 어머니 마리아, 딸 비비안 본인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기구한 삶의 반복 속에서 존재를 부정당하며 살아왔다.

결혼식 전에 몸을 허락해 아이를 낳고 연인에게 버림받은 할머니, 사생아였던 자신의 출생 신분을 덧씌우려 새로운 이름을 지어내 거짓말을 일삼던 어머니, 경마에 미쳐 가산을 탕진한 아버지, 약물 중독에 빠져 폭력적인 오빠 등 비비안은 척박한 가정 환경 속에 던져졌다. 사람들의 멸시와 모멸을 겪으며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정처없이 떠돌아야 했던 삶이었다.

그러던 중 비비안은 할머니의 친구인 잔 베르트랑의 도움으로 거처를 삼고 그에게서 예술적 영향을 받게 된다. 사진과 조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던 잔 베르트랑을 롤모델로 삼고,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을 통해 영혼의 안식을 얻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에서 파편화된 비비안 마이어를 알게 됐다면 <역광의 여인, 비비안 마이어>를 통해서 그 간극이 촘촘히 메꿔지는 듯했다. 유추하건대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을 통해 자신이 알던 나를 벗어나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할 수 있었기에 이름이 중요치 않았고, 그렇게 또 다른 자신으로서 택한 사진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진6,7) Vivian Maier © vivianmaier.com


그렇다면, 비비안 마이어는 그렇게 많은 사진을 찍었음에도 왜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을까. 두 작품을 통해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다만 비비안 마이어 스스로도 자신이 사진에 재능이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있다. 그가 프랑스 마을의 사진관 주인에게 ‘자신에게 좋은 사진이 많이 있으니 현상해서 협업해보자’고 제안한 편지가 발견됐기 때문.

비비안은 사진을 통해 알을 까고 세상으로 나오려는 노력을 했지만 이루어지진 못해 안타까움을 남긴다. 그의 사진을 감상하고 ‘알려지기만 했으면 유명 사진작가가 됐을 것’이라고 한 사진가 매리 엘런 마크(Mary Ellen Mark)의 말처럼, 현실이 되지 못한 가정은 아쉬움만 더한다.


존재가 맞닿은 진동, 그로써 빚어진 사진

(사진8,9) Vivian Maier © vivianmaier.com


비비안 마이어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신비로움이 더해져 부수적으로 사진이 주목받은 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물을 저편에 두고 그의 사진만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사진가들의 좋은 평가가 잇따른다. 특히 대중은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에 엄청난 사랑을 보낸다. 전 세계 전시장에서 그의 사진전을 요청하는 현상이 그것을 증명한다. 존 말루프의 언급과 같이, 세계사진협회는 주류 예술가의 전철을 따르지 않은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더라도.


"비비안은 촬영하면서 인물을 바라보고 그렇게 가까이 접근해서 사진을 찍었어요. 이건 시사하는 바가 아주 커요. 낯선 이의 공간으로 성큼 들어가도 받아들여질 정도의 융화력이 있었죠. 그리고 묘한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두 존재가 맞닿아 진동하는 그런 순간. 그리고 거기에서 사라지는 거죠."
-사진가 조엘 메이어 로윗츠(Joel Meyerowitz)


영화 곳곳에 배치된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보면 타인을 조용히 깊이 있게 관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버려진 푸대자루 마냥 바닷가에 널부러진 사람의 뒷모습은 외롭고 쓸쓸하다. 맑은 눈동자로 카메라를 해맑게 바라본 아이들의 모습은 싱그러움이 가득하다. 거리에서 동냥을 하다 얻은 빵 한 조각으로 부랑자의 얼굴에 행복함이 스친다. 대화가 고픈 듯 저돌적으로 말을 걸어오는 이들도 있다. 은밀하게 감정을 교류하는 손짓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울을 옮기는 사람 뒤편에 서서 그 거울에 비춰진 비비안 자신을 찍은 사진도 눈에 띈다.

다큐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은 비비안 마이어가 잠시 살았던 프랑스의 산골 마을 생 쥴리앙 앙 샹소르에서 열린 사진전을 찾은 관람객의 모습이다. 비비안 마이어의 카메라에 찍혔던 이들이 전시회에 찾아와 젊은 시절의 자신이 담긴 사진 앞에서 노년의 현재 모습으로서 포즈를 취한다. 그 시절을 돌아보며 회상에 잠기고 갖가지 이야기꽃을 피운다. 치매로 인해 그 시절을 잊은 어머니를 쓰다듬는 딸의 모습도 화면에 담겼다. 그야말로 2차원과 3차원이 만나는 현장이자, 시공간이 초월된 현실이다. 뭉클해진다. 사진의 아름다움이 순간을 포착하는 데 있다고 하면, 사진의 깊이는 켜켜이 쌓인 시간의 향기로 만들어질 것이다.

나 자신을 구원하고 사랑하는 법


"비비안은 유모였으니까 하위 계층이잖아요. 상류층으로 여겨지는 위치는 아니니까요. 결혼도 안 했고 사교 생활도 없었고 사람들이 우러러볼 지위도 없었어요.
하지만 한 순간도 굽힌 적이 없었죠. 원하는 걸 한 거예요.
우리에게도 그렇게 가르쳤죠. 자기가 원하던 인생을 살다 간 거예요."
- 인터뷰이 사라 매튜스 루딩턴(Sarah Matthews-Ludington)



(사진10,11) Vivian Maier © vivianmaier.com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고 사진으로써 메시지를 남기려 했던 비비안 마이어. 생계를 위해 유모로 일했지만 예술을 향한 사랑과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고 격조 또한 높았다. 비비안 마이어는 사진 작품과 그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겠느냐고, 그리고 그걸 어떻게 남기고 누구와 나누고 싶냐고. 그는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배회하면서 소외되고 버려진 것들을 찬찬히 살피고 흔적이 사라지는 숨결을 사진으로 붙잡아두었다. 그렇게 남긴 사진으로써 우리가 숨가쁜 삶에 스쳐가 미처 보지 못했던 대상과 풍경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 사진 속 대상이, 그 상태가 바로 너는 아니냐고.

또한 비비안 마이어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줬다. 현실에 적응하되, 타협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라고. 누군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그에 따른 노력과 과정은 자신이 분명히 알고 그렇기에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고 그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환경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무너뜨린 가족들의 선택과 달리, 외롭지만 묵묵하게 자신이 지향하는 예술의 길로 나아감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한 비비안 마이어의 행보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스스로를 어둠 속에서 빛으로 끌어내 앞으로 나아간 그의 행보를 천천히 따라가보려 한다.


(사진12) Vivian Maier © vivianmai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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