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비스 ELVIS>
여기 다시 불러들인, 엘비스
(사진 1) Baz Luhrmann, <ELVIS>(2022) © Warner Bros.
영화 <엘비스> 의 개봉을 알리는 포스터가 거리에 나붙었을 때, 화려한 장식에 눈길이 머물렀다. 오페라 연출가 출신으로 화려한 미장센과 음악적 활용이 뛰어난 <물랑 루즈>의 감독 바즈 루어만이 연출했으니, 대중음악계의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를 감각적으로 담아냈으리라는 기대감도 차올랐다. 사실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해 이전까지 큰 관심도,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포마드를 발라 한껏 세운 헤어스타일, 광택 있는 소재로 만든 나팔바지에 펄럭거리는 망또를 걸친 독특한 의상을 입고 한쪽 다리를 흔들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패러디한 것만 봐왔다.
영화 <엘비스>를 보고 나니 엘비스 프레슬리의 삶에 강렬하게 휘말렸다가 빠져나온 기분이다. 이 작품 속 엘비스 프레슬리는 미국을 넘어 세계 대중음악계의 판도를 뒤바꾼 전설적인 인물이다. 무려 10억 장의 앨범을 판매하고, 로큰롤 뮤지션 최초로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생중계 콘서트를 열었던 시대의 아이콘. 대단한 인물인 건 알겠다. 문득 궁금증이 인다. 1950년대 가수를 70여 년이 지난 오늘, 왜 굳이 소환해야 했을까.
경계인, 깨어 있기에 나아갈 수 있어
(사진 2) Baz Luhrmann, <ELVIS>(2022) © Warner Bros.
영화 <엘비스>를 통해 본 엘비스 프레슬리는 인터뷰에서 스스로 몽상가라고 말했을 만큼 늘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정치적 압력과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자신의 마음 속 목소리를 들으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노래를 통해 메시지를 던진 이였다.
이 작품은 매니저 톰 파커를 화자로 내세워 엘비스 프레슬리를 묘사한다. 이는 후에 엘비스를 부당한 계약으로 옭아맨 혐의가 드러난 톰 파커의 입장에서의 항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부단하게 자신의 방향과 속도를 찾으려 노력했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이 비춰진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40~50년대, 가난한 형편 탓에 흑인 커뮤니티에서 자라 자연스럽게 흑인 음악의 소울을 체득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사회적 역풍 가운데 선 경계인이었다. 흑인 음악을 하는 백인이라는 이유로 주목을 받고 유명세를 얻지만, 그의 문화적 영향력을 인지하고 인종통합금지책을 펴는 정치 세력에 의해 방송 출연금지 조치를 당한다.
엘비스는 매니저 톰 파커를 통해 몸사리기 압박을 받지만 고민 끝에 내면의 목소리에 따른다. 객석을 인종별로 갈라놓은 멤피스 스타디움 공연에서 엘비스는 ‘문제를 일으키길 원하지 않았지만 피하지도 않아’라는 노랫말을 담은 ‘트러블(Trouble)’이라는 문제곡을 부르고 금지된 골반춤까지 추며 일격을 날린다. 짜릿한 해방감을 주는 이 장면은 엘비스가 자신을 둘러싼 사회적 메시지를 온몸으로 읽어내고 깨어 있으려 했다는 면에서 그를 다시 보게 만든다.
한편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로큰롤 음악이 아닌, 스웨터 광고를 위한 캐럴송 정도를 부르는 가수로 전락시키는 톰 파커에 대응해 다시금 자신의 방향을 찾고자 하는 모습도 그려진다. 엘비스의 현재를 객관적으로 진단해줄 음반 기획자를 찾고,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좇아 로큰롤과 리듬 앤 블루스, 가스펠 등을 구성한 공연을 선보일 때 그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특히 총격 테러를 당한 존 에프 케네디와 그보다 앞서 희생된 흑인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을 추모하며 밤새 곡을 만들어 공연하는 모습은 진정한 아티스트 엘비스의 면모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야심 차게 온갖 것을 준비한 컴백 특집방송에서 모든 걸 비우고, 오로지 ‘이프 아이 캔 드림(If I Can Dream)’ 노래 한 곡에 자신의 진심을 담아 열창하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엘비스는 그렇게 시대적 혼돈 속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고 노래에 메시지를 담아 사회에 전하려 했던 인물이었다.
(사진 3) Baz Luhrmann, <ELVIS>(2022) © Warner Bros.
엘비스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꿈꾸는 자는 늘 살아 움직인다는 것. 판자집에서 살던 트럭 운전수가 가수의 꿈을 이루고 나아가 로큰롤의 전설로 남기까지 엘비스는 계속해서 꿈을 꾸었다. 처음에는 엄마에게 핑크 캐딜락을 사드리고 싶어서, 나중에는 자신과 같이 열악한 출신 배경의 사람들에게도 희망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는 계속 꿈을 꾸었고 또 이뤄냈다. 시대적 혼란과 언론의 횡포,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도 엘비스가 쓰러지지 않고 버텨낸 힘은 꿈과 희망이었고, 그를 움직인 힘이었다.
꿈꾸는 자는 스스로 깨어 있으려 한다. 엘비스가 진흙탕 같은 현실에서 스스로를 구원해낸 건 그가 여전히 꿈을 꾸는 자였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또한 인생의 방향을 바로 보고 속도를 조절하려면 서늘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마주해야만 한다.
방향과 속도의 결정, 존재의 완성
(사진 4) Elvis Presley(1956) ©Getty Images
그토록 열정적인 엘비스가 꿈꾸기를 멈추고 나서는 살아갈 힘을 잃은 듯하다. 그가 이혼한 아내 프리실라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자신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한다. 공연도 마다하고 칩거 생활로 체중만 늘어가던 그가 재기를 위해 고대하던 영화 ‘스타 이즈 본’조차 톰 파커의 반대로 캐스팅이 불발되자, 엘비스는 마흔을 넘기도록 길이 남을 명곡도 남기지 못했고 제임스 딘처럼 진중한 배우가 되지도 못했다며 자신의 업적을 폄하한다.
엘비스가 꿈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해진 건, 톰 파커와 결별하고 해외 투어를 떠나려던 계획이 무참히 부서진 이후다. 인터내셔널 호텔의 지원 조건에 끌려 단기간만 공연하려 했지만 그 사이 테러 위협이 가해진 데다, 엘비스 몰래 이중 계약을 한 톰 파커의 계략으로 5년간 꼼짝 없이 호텔 공연을 수행해야 했던 것.
톰 파커의 만행과 위조된 신분을 뒤늦게 알고 엔터사 대표인 아버지의 관리 부실로 날아든 빚더미 청구서도 무시한 채 엘비스는 그를 떠나려 하지만, 파커의 한 마디로 결국 주저앉는다. “나는 너고, 너는 나야. 나도 널 이용했고 너도 날 이용했어. 네가 떠나면 나도, 네 아버지도 외롭겠지. 그리고 너도 영원의 바위에 이를 수 없겠지.”라는 말을 그는 이기지 못했다.
톰 파커가 말한 ‘영원의 바위’는 어린 시절부터 마블 매니아였던 엘비스가 가닿고 싶어하던 영혼의 정착지다. 초능력을 가진 마블 주인공처럼 자신 또한 그렇게 모든 어려움을 뚫고 예술적 경지에 이르고 싶던 엘비스의 이상향이다. 망또를 걸친 그의 독특한 무대 의상도 그로부터 기인한다.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던 그에게 주변에 아무도 없고 결국에 자신이 꿈꾸던 이상향에도 가닿지 못할 것이라는 말은 가장 큰 두려움을 주었을 것이다.
엘비스는 전 세계를 향해 날아보고 싶다던 꿈을 스스로 접은 이래, 어둠 속으로 침잠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이런 엘비스의 심경을 화려한 야경이 내다보이는 호텔 펜트하우스에 머무는 그가 객실 커튼을 모조리 닫아버리고 암흑 속에서 쇼파에 털썩 눕는 모습으로 연출했다. 영화 속 그 어떤 모습보다도 아련하고 쓰라린 장면이었다.
(사진) Baz Luhrmann, <ELVIS>(2022) © Warner Bros.
엘비스의 정신적 기둥이었던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는 길을 잃었다. 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자면 그때 정서적으로 독립했어야 했다. 그러나 생의 중요한 기점에 엘비스와 그의 가족은 톰 파커의 결정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심지어 스스로 내려야 할 결정을 내맡기는 모습을 보인다.
미국 보수층의 눈치를 보느라 군대를 가야 할 상황에서 그는 선택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기자 회견에서 슬픔을 전시하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 또한 엘비스에게 음악적 영향을 끼친 흑인 뮤지션 빅 마마 쏜튼의 장례식에 참석 요청을 받았을 때, 각종 해외 공연 제안이 들어왔을 때, 로큰롤 가수 이미지에 맞지 않는 영화와 광고를 수주했을 때 그는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인생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를 완성해가는 것과 같다. 엘비스는 중요한 결정을 타인에게 맡기고 자기 결정력을 잃어버림으로써 스스로 서는 힘을 잃었다. 그가 내일을 향한 꿈을 꾸며 자신을 설계할 때는 진정 살아 숨쉬고 있었지만, 반대로 꿈을 접고 무기력하게 다른 이의 결정에 따라야만 할 때의 그는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엘비스가 전하는 또 하나의 깨달음은 그것이다. 진정 나 자신으로 살아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엘비스의 삶을 비춰보며 우리는 끊임없이 내일을 향한 꿈을 꾸고 자신의 삶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고 조절할 줄 아는 자여야 할 것이다.
삶의 나침반을 볼 줄 아는 자, 선택하라
(사진) 방탄소년단(BTS) © HYBE
엘비스 프레슬리의 삶을 영화 <엘비스>를 통해 지켜보면서 방탄소년단의 최근 행보가 겹쳐 보였다. 자체 예능 ‘찐 방탄회식’을 통해 방탄소년단은 단체 활동 중단을 선언하며 개인 활동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각자 성장할 시간을 갖고 다시금 모여 더 오래 활동하겠다는 뜻이었다.리더 RM은 말했다. “제가 여전히 지키고 싶은 건, 우리가 함께 ‘진심’으로 무대에 선다는 원칙을 지키며 행복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 그게 제가 원하는 전부에요. … 저는 방탄소년단을 오래 하고 싶어요. 방탄소년단을 오래 하려면 제가 저로써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
최정점의 인기에 있는 아이돌로서 그야말로 용기 있고 과감하며 결단력 있는 선택이었다. 서른을 앞둔 그들은 비로소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할 시간을 갖기로 스스로 선택했다. 그의 말대로 아이돌 시스템은 무언가 끊임없이 생산해야 하는 구조라 개인 인격체로서 숙성할 시간이 없다. 멤버들의 생각도 일치했고 이미 입장 정리를 하고 방송에 임한 것이었다. 팬들을 비롯한 방송연예계 사람들은 그들의 선택을 충분히 수긍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77년에 삶을 마무리했지만 1990년대생 방탄소년단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방탄소년단이 가수가 아닌 나 자신의 삶을 바로 세우기 위한 선택을 한 것처럼, 엘비스에게도 미성숙한 자신을 마주하고 성장하기까지 기다려주는 시간이 있다면 어땠을까. 2022년 현재를 살아가는 방탄소년단, 그들에게는 스스로 성장할 시간을 충분하게 가질 자격이 있다. 그들이 진정한 어른으로서 펼쳐갈 다음 행보가 기대되기에 우리는 기다릴 수 있고 기다려야만 한다.
방탄소년단의 이러한 선택은 청년 세대에게 생각거리를 던진다. 환경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 시대에 살아가는 청년들이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시사점을 제시한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맹렬히 달려가는 아이돌 시스템 속에서 적응하고 성공한 이들이 그 환경에 본질적인 질문을 품고 제동을 거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 또한 선택이 아닌 일방적으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수동적으로 휩쓸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환경을 주체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삶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것이 영화 <엘비스>로 불러온 1세대 아이돌 엘비스 프레슬리에서 MZ세대 방탄소년단으로 이어진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안아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삶의 나침반을 볼 줄 아는 자는 진정한 지혜를 얻은 자이다. 자신의 삶의 방향과 속도를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하나의 인격체인 나 자신으로서 온전히 살아가는 길이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영화 <엘비스>로 지금 여기 소환되어 우리에게 전하려 한 메시지는 아마도 그게 아니었을까.
There must be lights burning brighter somewhere
Got to be birds flying higher in a sky more blue
If I can dream of a better land
Where all my brothers walk hand in hand
(빛이 더 밝은 곳이 있을 거예요)
(새들은 더 푸른 하늘에서 더 높이 날고요)
(모든 형제들이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다면)
Elvis Presley 의 <If I Can Dream>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u-pP_dCenJA&list=RDu-pP_dCenJA&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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