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필리아>를 보며 든 단상
선물 같이 찾아온, 기억의 조각
(사진) Claire McCarthy, <Ophelia>(2018) © IFC Films
영화 <오필리아> 포스터를 봤을 때, 왠지 모를 흥분이 일었다. 우리가 알던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아니라 그가 사랑했던 연인 오필리아의 입장이라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포스터 속, 앙다문 입술로 어깨 너머를 고요하게 바라보는 오필리아의 표정을 보니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누군가는 스쳐 지나갔을 법한 이 작품에 이끌린 건, 내 삶의 조각 중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이 차지했던 비중이 꽤 커서 그런 듯하다. 소싯적, 대본에 연출가의 디렉팅을 깨알같이 적어두고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던 기억,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관객을 마주볼 때 벅차올랐던 감정이 스친다. 대학원 전공생의 의무이자 책임감으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5대 희극이 실린 희곡집을 교과서처럼 끼고 다니기도 했으니, <햄릿>이라는 작품은 그 시절 나 자신을 찰나에 불러오는 매개체라고 할까. 그래서 연관된 어떤 것이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 작품을 보기로 택한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영화 메이킹 스틸사진 속 클레어 매카시 감독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다. 스틸사진을 보면, 긴 웨이브 헤어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여성 감독 클레어 매카시가 민소매 윗옷에 꽃무늬 레깅스를 입고 힙쌕을 맨 차림으로, 한 팔에는 하드커버의 대본을 끼고 디렉팅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을 보고 웃음이 픽 나왔다. 그건 나의 ‘로망’이었다. 꽤 화려한 모습으로 촬영 현장을 누비며 디렉팅을 하는 모습의 나. 그렇게 여러 가지가 겹쳐진 이유로 영화 <오필리아>를 봄으로써 나의 로망을 채워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또 다른 관점으로 다르게 본 세상
(사진) William Shake-speare, <The tragicall historie of Hamlet Prince of Denmarke>(1603) © Huntington Library
원작의 내용을 꿰고 있는 관객으로서 재해석된 작품을 대할 때 미묘한 입장차가 생긴다. 마치 정해진 운명의 한 인간을 손바닥에서 들여다보는 조물주와 같이, 전체를 내려다보는 입장으로 작품에 다가선다. 조물주가 정해놓은 길을 미물이 따르지 않으면 왠지 모를 괘씸함이 스멀거리면서 더 크게 눈을 뜨고 보게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오필리아>는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는 극중 인물의 행동으로 인해 처음엔 놀라고 연이어 감탄하면서 더욱 깊이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바위 틈에 피어난 들꽃을 볼 때처럼, 가녀린 오필리아의 강인한 생명력에 존경심을 갖게 한다. 오필리아를 둘러싼 다른 인물들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새로워서 다시금 원작을 들춰보고 싶게 만든다. 이 작품을 통해 클레어 매카시 감독이 셰익스피어가 가진 수백년의 무게를 이겨내고 자신만의 판을 펼쳐낸 데에 무한한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모든 작품의 첫 장면은 작품의 윤곽을 잡는 동시에 감독의 연출 방식을 가늠하게 한다. 연꽃이 핀 호수를 미끄러지듯 따라가면 평안하게 물 위에 누워있는 오필리아의 모습이 보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허밍이 깔리는 가운데, 오필리아의 나레이션이 흐른다. “오래 전 내 이야기는 역사가 되고 신화가 되었죠.…드디어 내 입으로 내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왔네요.” 역사를 넘어 신화로까지 여겨지는 셰익스피어의 햄릿 이야기를 내 방식대로 제대로 풀어보겠다는 선전포고. 이 나레이션부터 내 마음에 훅 들어왔다. 클레어 매카시 감독의 두둑한 배포가 느껴졌다.
영화 전반에는 춤추듯 유려한 카메라 워킹부터 켈트족 음악을 연상케하는 선곡, 중세 유럽의 고풍스러운 의상까지, 고전적이지만 현대적으로 미장센을 표현해낸 감독의 스타일과 내 취향이 맞닿았다. 클레어 매카시 감독이 이뤄주길 기대한 ‘로망’에 한 걸음 더 다가선 느낌이었다.
(사진) Claire McCarthy, <Ophelia>(2018) © IFC Films
영화 <오필리아>의 중심축에는 시녀 오필리아, 왕비 거투르드, 그의 숨겨진 쌍둥이 언니이자 치료사 메틸드가 있다. 감독은 오필리아를 지혜와 용기를 갖추고 주변인과의 연대를 통해 극적 문제를 해결해가는 인물로 그려냈다. 또한 왕비 거투르드는 사랑과 젊음을 갈구하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권력의 힘을 놓지 않으려는 입체적인 인물로 표현했고, 치료사 메틸드는 옛 연인이었던 자신을 마녀로 몰아세우고 선왕을 독살한 클로디어스의 만행에 분노해, 노르웨이 군사를 이끌고 덴마크 성에 들이닥치는 모습으로 전사처럼 표현했다.
가장 주목했던 감독의 극적 해석은 오필리아의 죽음을 풀어낸 방식이었다. 의도치 않게 햄릿에게 피습당한 아버지 폴로니우스의 죽음을 두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충격에 미쳐버린 원작의 오필리아와 달리, 이 작품 속 오필리아는 혼돈의 비극에서 스스로를 구원해낸다. 메틸드에게서 받은 독약을 활용해 물에 빠져 죽은 것처럼 일시적인 죽음의 상태를 연출하고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스스로 선택한 삶을 설계해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 속 오필리아는 클로디어스의 지속적인 위협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기지를 발휘해 위기에서 빠져나오고, 검투시합의 계략에 빠져 햄릿이 위험해질까봐 그를 구해내려 나서는 결단력과 강인함도 보여준다. 고전극 배경임에도 오필리아는 그야말로 현대극의 슈퍼히어로에 버금가는 인물이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일종의 짜릿함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느끼며 여성이라는 제약과 한계를 벗어난, 내가 그리는 ‘이상적 인물상’에 대한 ‘로망’ 또한 충족할 수 있었다.
영화 <오필리아>의 결말은 내게 다양한 생각거리를 안겨줬다. 복수를 택한 햄릿과 피바람이 부는 덴마크 엘시노어 성을 뒤로 하고 수녀원을 향해 홀로 길을 떠난 오필리아는 마침내 목적지에 이르고, 거기서 태어난 딸과 함께 새로운 삶을 꾸린다. 사랑보다 복수를 선택하고 평화보다 전쟁을 단행한 이들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쓰여진 대로 그들 자신의 역사를 비극적으로 끝냈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들과 다른 가치를 소중하게 여긴 영화 <오필리아>의 속 오필리아는 그 자신만의 역사를 새로 썼다. “….난 길을 잃지 않았어요. 복수심에 불타 미치지도 않았죠. 그 대신에 희망을 품게 됐어요. 언젠가 내 이야기를 하겠다는 희망을요….”
클레어 매카시 감독은 영화 <오필리아>를 통해 역사가 서술한 여성의 역할과 임무, 이미지에 갇히지 말고 자유롭게 상상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12세기 덴마크를 배경으로 17세기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작품 <햄릿>을 21세기에 불러올 때, 지금 우리는 보다 멀리 널리 보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오필리아>를 통한 로망에 대한 단상
(사진) Claire McCarthy, <Ophelia>(2018) © IFC Films
영화 <오필리아>는 내가 작품을 택한 이유였던 ‘로망’의 개념을 한층 더 넓혀주었다. 우선 스크린 저 너머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을 책임지고 이끌었을 클레어 매카시 감독의 강력한 에너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 원작 <햄릿>을 뒤엎은 이 작품을 통해 ‘관점을 달리하면 세상이 새롭게 보인다’는 메시지는 내게 하나의 울림이 되었다.
또한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닮은 오필리아의 면모를 보고 환희를 느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역할을 찾고, 입장과 태도를 정해 과감하게 행동하는 오필리아의 선택에 공감했다. 그 모습에 나 자신을 겹쳐보면서 내 안의 ‘로망’을 충족할 수 있었다.
소싯적 내 ‘로망’은 이제, 비슷하지만 또 다른 색깔로 자리잡았다. 연극과 영화,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겪어보면서 얻은 경험을 글과 말을 통해 세상과 나누고 싶다고. 또한 전 세계 예술마을을 돌아가며 직접 살아보고 이 또한 나누면서 우리 모두에게 예술가적 기질이 이미 잠재되어 있음을 일깨우고 싶다고. 문화예술NGO에서 예술기획을 통해 세계 예술가들과 함께 사랑과 평화를 전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오색찬란한 ‘로망’으로.
로망이라는 건 어쩌면 거울과 같다. 이상적으로 가닿고 싶은 그 무엇의 반대편에는 충족되지 못해서 찌그러지고 쪼그라든 대상, 혹은 소심한 나 자신이 자리한다. 그래서 로망의 양면을 잘 살피는 건 소외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마음 한 켠을 토닥토닥 해주는 것과 같은.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로망을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때문에 로망은 자신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지독한 현실 속에서도 몽글몽글한 꿈을 놓치 않겠다고 몸부림치는,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행동이다. 마음에 꽁꽁 박아둔 나의 ‘로망’을 꺼내 보고 5분만 상상해보기, 그리고 남이 알든 모르든 빙긋 미소 짓기. 그게 사막같은 하루 24시간을 살아낼 수 있는 청량한 오아시스라고 한다면. 그건 그 자체로도 참으로 값지다. 그래서 말한다. 나를, 우리를 위한 로망을 갖자. 우리의 삶에는 로망이 필요하다.
프랑스어 로망(roman),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나 이상. 그래, 내 눈앞에 펼쳐내고 싶은 상상은 그 과정에 있기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생이 다하기 전까지. “그대도 언젠가는 당신만의 이야기를 하게 되겠죠”라는 영화 <오필리아>의 독백처럼, 나도 그리고 그대도 언젠가는 나만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나직하게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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