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예술의 모순이 빚은 몬스터, 뱅크시

다큐 영화 <뱅크시: 무법 예술의 출현> &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by 오색빛깔 라희뷰

벽 너머, 예술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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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ksy : and The Rise of Outlaw Art>(2020) © MANO Entertainment


거리미술은 오늘날 미술 시장에서 뜨거운 관심 속에 나날이 성장하는 분야다. MZ세대는 그림을 감상하는 데서 나아가 아트페어와 경매를 통하거나 SNS를 통해 작가와 연락해 작품 구매를 요청한다. 미술 작품을 통해 재테크를 한다는 의미의 아트테크(Art-Tech)라는 용어는 각종 매체를 통해 접하면서 대중도 제법 익숙해졌다.

예술로 하는 재테크 중 가장 효과적인 대상이자 방법으로 뱅크시의 작품을 손에 넣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뱅크시의 맹목적 추종자들은 작품 공개 전 런던 쇼디치 뱅크시 갤러리에서 수십 시간에 걸친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고, 온라인에서 기습적으로 공개될 뱅크시의 프린트를 ‘구입할 수 있는’ 추첨권을 받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 마침내 뱅크시의 작품을 얻어낸(!) 이들은 일련의 과정을 21세기 황금 광산 또는 로또 당첨이라고 할 만큼 인생에서의 획기적인 행운으로 여긴다.


새로운 골드러시가 시작된 것 같았죠.

나가서 250파운드에 뱅크시 프린트를 사세요. 다음 날에는 그걸 2,500파운드에 팔 수 있어요.

하룻밤 사이에 열 배로 불릴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겠어요?

-스티브 라자리데스, 도서 <뱅크시: 벽 뒤의 남자> 중에서


도심 속 버려진 벽을 활용한 그라피티로 대중에게 ‘열린 공간 속 무료 예술 작품’을 선사하고 홀연히 사라지던 뱅크시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미술계에서 ‘가장 비싼 몸’이 되었다. 이러한 모순은 어디서 출발하는 것일까.


뱅크시가 세상에 던진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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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ksy : and The Rise of Outlaw Art>(2020) © MANO Entertainment


뱅크시는 미술의 권위 의식을 비판하고 지나친 상품화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해왔다. 200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전시 ‘아슬아슬하게 합법’에 내놓은 뱅크시의 작품 <멍청이들>이 한 예이다. 뱅크시는 1987년 반 고흐의 <해바라기> 경매 현장을 찍은 사진을 패러디해, 해바라기 그림이 있던 위치에 ‘너희 멍청이들이 진짜로 이 쓰레기를 산다는 걸 믿을 수 없어(I can’t believe you morons actually buy this shit)라는 글을 적었다. 이 그림이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경쟁이 붙었고, 뱅크시는 이 프린트 30점으로 3만 2,500파운드를 벌어들였다.

누군가는 ‘쓰레기 같은 그림에 큰돈을 내는 상황을 묘사한 쓰레기’를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그 ‘쓰레기 같은 그림’을 사려고 큰돈을 지불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뱅크시는 현대미술 시장에 대한 논평을 의도했지만, 역설적으로 현대 미술 시장에 엄청난 돈을 벌어다 주었다.


또한 뱅크시가 뉴욕에 머물던 2013년 10월 한 달 동안, 그가 벌인 사건은 <무기 위의 어린이들>과 <덫에 걸린 푸우>라는 작품과 연관되어 있다. 뱅크시는 센트럴파크의 가판대에 오리지널 작품을 널어놓고는 꾀죄죄한 차림의 노인이 단돈 60달러에 그림을 팔게 한 ‘쇼’를 벌였다. 경매장에서 수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뱅크시의 작품을 60달러에 사간 뉴질랜드 여성은 TV 뉴스를 통해 소식을 뒤늦게 알고 다음 해 경매에서 12만 4,500파운드에 되파는 ‘일생의 행운’을 얻었다.

뱅크시는 이러한 ‘쇼’를 통해 경매인과 미술 전문가, 카탈로그와 관람객 등 허례 의식 없이 내놓은 그림은 물질적 가치로써 기능하는 예술 ‘상품’이 아니라, 돈과 무관한 시공간에 진정 즐길 수 있는 예술 ‘작품’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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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ksy : and The Rise of Outlaw Art>(2020) © MANO Entertainment


한편 2018년 10월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 내놓은 <풍선과 소녀>라는 작품으로 비롯된 사건은 뱅크시의 위상을 달라지게 했다. 이 작품이 86만 파운드에 낙찰되자마자, 프레임에 숨겨져 있던 파쇄기가 작동해 현장에서 그림을 조각내 버린 사건이다. 이 작품은 절반쯤 파쇄된 후 멈추면서 <사랑을 쓰레기통에>라는 제목을 달고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났다.

이는 예술을 오직 상품으로 여기는 미술 시장의 구조를 비판하려는 뱅크시의 작업이었다. 예술가의 상상력을 돈벌이로 활용하고 저항하는 메시지를 담은 예술을, 돈 많은 권력자의 집을 꾸미는 장식물로 전락시키는 데에 반발한 뱅크시의 행동이었다.


브레인워시, 예술이라는 세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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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t Through The Gift Shop>(2010) © MANO Entertainment


뱅크시가 벌인 사건 혹은 작업 중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하고 획기적이라고 본 것은 ‘MBW, 미스터 브레인워시(Mr. brainwash)’의 탄생이다. 하루아침에 거리 미술계의 천재이자 벼락스타로 거듭난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탄생 비화는 뱅크시가 감독한 다큐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Exit Through The Gift Shop>(2010)라는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

프랑스에서 온 미국 이민자 티에리 게타는 구제 옷 장사를 하며 가정을 꾸린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닥치는 대로 찍던 그는 거리미술을 하던 사촌을 통해 수많은 거리 예술가들을 만나 그들의 거리미술 작업을 도우며 엄청난 양의 촬영분을 만들어냈다. 티에리는 명성이 자자한 뱅크시를 만나는 게 소원이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그의 작업을 도우며 연을 맺고 위기 상황에서 그의 신분을 지켜주는 의리를 보여주며 신뢰를 얻는다.


뱅크시는 유명 경매회사들이 거리미술을 팔아 치우며 돈이 예술을 지배하는 세태를 비판하고자, 티에리가 그간 쌓아둔 영상자료를 공개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촬영분을 꿰어 작품으로 완성해내는 재능은 없었던 티에리의 편집본을 보고, 뱅크시는 자신이 재편집을 하려고 그의 관심을 돌리는 방편으로, 와인을 준비해 지인을 초대한 ‘작은’ 전시회를 기획해보라고 가볍게 말을 던진다.

티에리는 이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전시회를 준비하는데, 이전까지 미술 작업을 해본 적이 없던 그는 조각가와 설치미술가 등을 고용해 그들에게 아이디어만 주고 ‘공장처럼 찍어내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그가 전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무리하게 규모를 키우고 감당 못할 상황이 되자, 뱅크시는 자신의 친구들을 동원해 전시회를 무사히 열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고용된 예술가들부터 뱅크시의 요청을 받은 친구들까지 티에리의 전시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 못 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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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t Through The Gift Shop>(2010) © MANO Entertainment


‘예술은 곧 세뇌(brainwash)’라는 인식 아래 스스로를 ‘미스터 브레인워시’로 명명한 티에리는 작품보다는 마케팅에 열을 올린다. 홍보자료와 각종 인터뷰를 ‘뿌린’ 노력 덕에, 언론과 대중은 그를 거리 미술계의 천재로 인식한다. 더불어 티에리가 각종 자료를 조합해 주문제작 방식으로 만들어낸 ‘폐품에 가까운 작품’들이 ‘고가’에 ‘빠르게’ 판매되는 등 큰 성공을 거둔다.

다큐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은 하루아침에 천재 아티스트로 등극해 자아도취에 빠진 티에리와 자신만의 기준이나 관점 없이 열광하는 콜렉터와 대중들, 화제성만 쫓아 몰아가고 부풀리기에 앞선 언론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낸 한 편의 블랙코미디와 같다. 뱅크시는 애초에 이 영화의 제목을 <쓰레기 같은 작품을 바보에게 팔아넘기는 방법>이라고 지으려 했다는데, 그 이유가 선명해지는 지점이다.

이러한 괴상한 성공(!)에 대한 뱅크시의 언급은 그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이자, 또 하나의 퍼포먼스를 작업한 그의 목적으로 읽힌다.


이 모든 현상들, 그의 거리미술에 대한 집착과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된 것,

그의 전시회에서 작품을 사들이는 수많은 바보들, 그가 비싼 그림을 아주 빨리 파는 것,

이런 건 인류학적, 사회학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니

거기서 배울 점도 있을 거예요.. 미술이 원래 좀 장난이라는 것도.

-뱅크시, 다큐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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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t Through The Gift Shop>(2010) © MANO Entertainment


뱅크시가 티에리의 영상 자료를 통해 세상에 던지려 했던 질문은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탄생 과정을 비춰보면서 보다 명확해진다. 하나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반감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이었던 거리미술이 어느새 돈이 되는 예술 상품으로 전락하는 과정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더불어 예술계에서 작품성과는 별개로 마케팅으로 인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평도 포함됐다. 나아가 대중과 언론은 진정한 예술에 대한 갈구가 과연 있는지, 예술가의 재능에 진정 관심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이후 2010년 경매에 미스터 브레인워시를 뜻하는 MBW라는 서명이 적혀 나온 작품 <찰리 채플린 핑크>은 작품 예상가의 두 배인 12만 2,500달러에 팔렸다. 이는 콜렉터들이 브레인워시로 위장한 뱅크시가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했기에 형성된 가격이었다. 미스터 브레인워시로 불린 티에리의 이후 작품은 결코 이 가격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처럼 고유한 작품도 없었던 미스터 브레인워시를 언론과 거리 미술계가 지속적으로 띄워주는 통에 그의 승승장구가 유지됐던 현실은, ‘예술은 곧 세뇌’라는 그의 주장이 맞는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곱씹게 한다.



우리가 아는 예술이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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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ksy : and The Rise of Outlaw Art>(2020) © MANO Entertainment


다큐 영화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를 통해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작업 과정을 보면서 한국 미술계와 언론에 잡음을 일으켰던 가수 조영남 대작 사건이 연상됐다. 당시 조영남 씨는 무명작가를 고용해 자신의 기존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했고 약 200점 이상의 완성된 그림을 건네받아 배경색 일부만 덧칠하는 등의 작업만 하고 그림을 판매했다고 알려졌다.

대법원은 검찰이 제기한 혐의인 조수 등을 이용해 작품을 제작했음을 알리지 않은 점에 있어 사기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무죄 판결을 했다. 판결에서 작품의 저작자가 누구인지가 문제시된 것은 아니라는 여지를 남겼다. 가수 조영남 씨는 해당 작품들을 수천만 원에 판매해 막대한 이익을 남겼지만, 조수로써 작품을 완성한 무명작가에게는 1점당 100만 원정도의 금액만 지불했다.


조영남 대작 사건은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작업 과정과 중첩되면서 다양한 생각거리를 남긴다. 조영남 씨의 아이디어가 들어갔지만 사실상 조수가 대부분 완성한 작품이 과연 그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콜렉터들은 해당 작품의 작가가 조영남 씨가 아니었어도 그만한 금액을 주고 그림을 가져왔을까. 그림의 가격은 과연 누구의 어떤 기준에서 매겨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기준은 우리가 예술이라고 칭하는 범위 안에서 정당하게 적용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문득 예술이 무엇이냐는 본질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예술은 ‘인간의 사고와 정서를 확장해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하는 프리즘’이라는 게 내 관점의 정의다. 물론 이러한 정의가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마다 예술에 대한 자신만의 관점을 갖는다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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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 Changer>(2020) © MANO Entertainment


뱅크시가 미스터 브레인워시와 다른 지점은 거리미술을 단순히 ‘개인의 표현’이나 ‘회화적 형식의 완성’으로 한정 짓지 않고 ‘인류 공동체의 변화’ 기여하려 했다는 점이다. 뱅크시는 코로나19로 싸우는 의료진을 응원하고자 그들을 액션 히어로에 비견한 작품 <게임 체인저>를 그렸고, 개인 최고가 1680만 파운드에 팔려 영국 사우샘프턴 대학병원에 기부했다. 또한 모네의 연못에 버려진 슈퍼마켓 카트를 그려 자본주의의 폐해를 말한 작품 <쇼미 더 모네>도 대중에게 각성을 전한 예시이다. 이렇듯 캠페인에 가까운 작업들은 그가 예술 작품을 매개로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으로 읽힌다.


기존 체제에 대항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라피티로 시작해 다양한 퍼포먼스를 작업한 뱅크시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써 사랑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는 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뱅크시가 그러한 예술적 위력을 갖게 되었기에 그의 메시지가 더욱 힘을 받을 수도 있고, 역으로 그래서 약화될 수도 있다. 핵심은 뱅크시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와 입장이다.

예술을 자신만의 관점 없이 단지 투자에 입각한 ‘상품’으로만 보는 시각은 비판한다. 거시적으로 봤을 때 그러한 태도는 ‘건강한’ 혹은 ‘발전적인’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인류 역사상 역사상 예술이 기능해온 역할이 그리 가볍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술의 본질은 결국 자신을 투영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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