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오 보타, 스위스 몬테 타마로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19
사유의 시간,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스위스 벨린초나에서 벗어나 몬테 타마로Monte Tamaro를 향하는 길, 차 안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이제는 시립센터가 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서 건축 세미나 중이던 건축가 마리오 보타Mario Botta를 실물로 봤기 때문이었다. 몬테 타마로에서 우리가 만날 건축물은 그가 지은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교회Chiesa Santa Maria degli Angeli다. 우연일지라도 절묘하다, 우리의 건축 여행을 하늘이 돕는 건가!
황홀한 기분으로 도착한 몬테 타마로, 한라산보다도 더 높다고 하더니 역시 산세가 위풍당당하다. 산을 가로지른 케이블카가 정상을 향해 찬찬히 오른다. 케이블카 정류장에 내리니 언덕에서 S자 형태로 내려오는 알파인-코스터 봅슬레이가 있다. 한쪽에선 짚라인을 타고 저리로 간다. 신성한 교회 옆에 놀이공원이라니. 잘못된 만남인 것도 같다.
저 멀리 산비탈의 가장자리에 가로로 쭉쭉 뻗어나가 창공으로 날아오를 것만 같은 기세의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교회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흰 구름을 머금은 파란 하늘, 그 아래 펼쳐진 초록빛 들판, 그 위에 붉은빛 돌을 착착 쌓아 거대한 여객선 한 대를 정박해두었다.
가까이 다가가 짙은 붉은 빛의 돌에 손을 얹었다. 거칠게 툭툭 쪼갠 돌인 듯한데 손에 닿는 감촉은 부드럽다. 저마다 다른 크기와 두께로 쌓인 돌은 정갈하게 맞물려 비탈 끝을 향해 멀고 아득한 길을 만들어냈다. 그 길 끝엔 앙상하지만 선명한 십자가를 둥글게 감싸 쥔 돌벽이 주저 말고 다가오라며 손짓했다. 세찬 바람이 날 막아서는 듯했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이 내 삶의 마지막에 이른 천국을 향한 길이라면?! 돌아보니 내 손에 쥔 것이 없었다. 내 친구 누군가는 한길만 나아가 빛나는 이름을 손에 쥐었고, 또 다른 친구는 꽤 근사한 집과 차, 사무실을 손에 쥐었다. 난 뭘 했을까. 허투루 살지는 않았는데. 그럼에도 막상 내게 남은 건 없네.
100보쯤 걸었을까, 몬테 타마로의 산등성이에 얹힌 흰 구름이 나를 둘러쌌다. 소의 목에 달아주는 방울 소리가 점차 크게 들려왔다. 머리가 맑아졌다. 그 길의 끝, 십자가가 세워진 난간에 다다랐다. 아, 마침내 이르렀구나. 누군가의 품에 안긴 듯 포근했다. 애썼다고, 살아내느라 애썼다고. 내 너를 눈여겨보고 있었노라고. 엄마에게 안긴 철부지마냥 난 어리광을 부리며 눈물을 퐁퐁 쏟았다.
십자가가 세워진 난간에서 내다보이는 세상은 참으로 드넓었다. 내가 살아온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왜 그걸 모르고 그토록 복닥거리기만 하고 살았나.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갈 거니, 스스로에게 물었다. 질문을 곱씹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십자가를 둘러싼 둥근 돌벽은 가까이서 보니 마치 날개 같았다. 천사의 날개를 닮아 이곳의 이름이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Angeli’였나 보다. 공고한 돌벽을 쌓아 보드라운 천사의 날개를 형상화하다니. 건축가 마리오 보타는 얼마나 신성한 마음을 담아 이곳을 설계한 것일까.
양 날개로 펼친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 본다. 길 끝에 놓인 십자가를 향해 걸었던 곳이 거대한 여객선의 갑판이었다면, 그 아래층은 선실과 같았다. 돌벽에 뚫린 둥근 창으로 시간의 망망대해가 내다보였다. 둥근 창의 배열을 따라 걸었다. 원형 액자에 담긴 몬테 타마로의 풍경에 겹쳐서 내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훅훅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신의 품에서 삶을 마무리할 때 그는 내 지난 시간을 이렇게 보여주겠구나.
문득 놀라웠다. 이 모든 사유의 순간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단지 그 공간 안에서 걷고 보고 숨 쉬었을 뿐인데, 지금까지 이토록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닿을 때가 있었나. 이곳에 찾아온 이들의 정서적 경험까지도 건축적으로 의도해 구현한 것이라면, 건축가 마리오 보타는 진정한 감정의 설계자구나. 그의 설계에 동조하는 의미로, 난 그 공간에 내 맘대로 ‘사유의 복도’라 이름 붙였다.
신이 준 두 가지 선물
사유의 복도 끝에 아치형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작은 예배당이 자리해 있다.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놓은 듯 복도 천정부터 지붕, 예배당의 벽면에 이르기까지 천정-벽화가 후루룩 이어진다. 하얀 바탕에 검은 묵으로 일필휘지한 듯한 그림은 엔초 쿠키Enzo Cucchi가 그렸다. 선에 담긴 충만한 기운만큼 공간이 보이지 않는 힘으로 꽉 채워졌다.
시간의 무게만큼 묵직한 검정색 회전문을 밀고 예배당으로 들어간다. 어둑한 방에 양쪽 창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내부에는 나뭇결을 그대로 살리고 못질 없이 짜 맞춤으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놓였다. 예배당 중앙 벽면에는 소중한 것을 신께 바치는 마음을 표현한 듯 조심스레 오므린 두 손을 짙은 파랑색으로 그려 넣었다. 자세히 보니 천창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을 양손에 고이고이 받아 안는 듯, 신의 선물을 감사히 받는 마음도 담겨 있었다. 와, 이런 걸 건축가와 화가의 만남으로 완성된 궁극의 예술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외국인 꼬마 둘이 엄마 손을 잡고 예배당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있었다. 사실 꼬마는 신성한 분위기로 가득 찬 이곳을 나가, 저 너머 몬테 타마로의 놀이공원에 가자고 떼를 쓰던 중이었다. 뒤이어 아빠와 형으로 보이는 이들이 들어와 예배당 중앙 의자에 앉았다. 세 사람이 그림을 들여다보며 잠시 명상에 빠진 사이, 두 꼬마가 안쪽을 뛰어다니며 활개를 치자 엄마는 꼬마들의 등쌀을 못 이기고 예배당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아마도 꼬마들은 몬테 타마로 입구에서 케이블카를 탈 때부터 붉은 돌벽일 뿐인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교회보다 빨간 의자와 헬멧이 돋보이는 알파인-코스터 봅슬레이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았을까. 줄 하나에 매달려 속도감을 즐기는 짚라인에 이미 몸을 싣고 있지 않았을까. 그걸 생각하니 풋 웃음이 났다. 지금은 사색보다 감각적인 즐거움이 더 와 닿을 나이지. 나도 저때는. 아니 지금의 나도.
희한하게 상반되는 두 요소가 한데 모인 곳이 여기, 몬테 타마로가 아닐까. 사유를 통한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교회와 물질적 즐거움으로 가득한 놀이공원의 공존이라. 그러나 생각해보자. 사유와 물질, 그 모두가 뒤섞인 것이 우리 인생이다. 어느 한쪽만으로 충족될 수 없는 게 우리의 삶이다. 생각의 흐름이 여기에 이르니, 아까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 다시금 되새겨졌다. 다시 세상으로 나오면 어떻게 살 거야. 응, 나는 충만하게 사유하고 또한 물질적으로도 충분히 즐기며 살다 갈래. 완벽하지 않은 인간으로 세상에 왔으니, 모든 걸 다 끌어안고 홀딱 빠져봤다가 결국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만 알고 가면 될 것 같아. 신이 내게 준 선물은 그것인 것 같아.
내 영혼에 생명을 다시금 불어넣어 준 공간, 몬테 타마로의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교회는 그렇게 내게 가장 값진 선물로 남았다.
(사진은 아래 링크에 첨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