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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라희 May 08. 2024

이타미 준의 목소리를 전해듣는 공간

<유동룡미술관>

<유동룡미술관>

- 건축가 유이화, 제주시 한림읍, 2022년

2023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작     



유동룡미술관은 어디선가 건축가 이타미 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공간 안팎으로 선배 건축가이자 아버지인 이타미 준을 그리워하고 존경하는 딸 유이화의 마음이 그대로 담겼다. 이타미 준의 컬러라고 할 수 있는 먹색이 건축 전반에 물들어있다. 먹색의 공간에서는 먹과 책의 향이 느껴진다.


저 너머 마중오름이 내다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유동룡미술관은 저지문화예술인마을 가까이에 있다. 건축가 유이화는 제주 곶자왈의 고요함과 생명력을 존중하며 건물로써 위압적으로 내보이지 않고 낮추고 비우는 태도로 건축을 했다. 공사 중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져 용암이 흐른 줄기가 보이는 바위인 ‘빌레’를 발견하고 즉각 설계도를 수정해 제주 땅 고유의 아름다움을 살려냈다.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아버지 이타미 준의 말씀을 되새겼다.


건축가 이타미 준은 경계인이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부모는 그에게 무송 유씨 성을 물려주고 ‘유동룡’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면서도 그는 평생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려 애썼다. 자신의 설계사무소를 내면서 일본에 ‘곳집 유(庾)’자가 없어 허가를 받지 못하자, 한계를 벗어나 세계인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예명을 지었다. 자신이 고국 땅을 밟으며 이용했던 이타미 공항과 절친한 사이였던 작곡가 길옥윤의 예명 한 글자를 더해 스스로 부여한 이름, 이타미 준이었다. 


유동룡미술관은 건축 재료가 가진 고유한 물성의 멋을 살리고 대비를 주었다. 외벽은 나무의 결이 느껴지도록 옹이 무늬를 찍어 넣어 콘크리트의 물성에 자연의 숨결을 덧대었다. 제주 돌담을 재해석하고 축대로 활용해 전통성을 이어가되, 스테인레스 담장을 낮게 둘러 현대적인 느낌을 부여했다. 제주 오름과 민가의 완만하고 둥그스름한 선을 지붕에 얹고 제주 땅의 형태를 닮은 타원형의 공간을 중앙에 배치했다. 


건축의 시퀀스가 ‘건축적 배치와 구성에 따른 경험적 서사’라 하면, 유동룡미술관은 이타미 준의 집에 초대받고 그의 공간을 경험하는 과정을 따른다. 담장에 이타미 준의 싸인이 새겨진 명패가 보이고 그 길을 따라 들어가 저택에서 볼법한 나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내부에 먹과 고서적의 향이 퍼지는 가운데, 타원형 공간을 타고 도는 천창과 병풍처럼 펼쳐진 통창에서 배어드는 빛이 먹색의 공간을 채운다. 이 공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이타미 준은 평생 서화를 그리고 불상과 도자기, 고서적 등의 골동품을 모으며 건축적 영감을 받았다.


유동룡미술관은 연면적 약 675㎡, 지상 2층 규모로 3개 전시실과 라이브러리, 교육실, 아트숍과 티 라운지로 구성됐다. 상설 전시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은 40여 년에 걸친 그의 건축 작업을 회고한다. 제1전시실에는 이타미 준의 방식으로 풀어낸 건축 소재를 통해 작품을 돌아보고, 제2전시실에서는 제주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고민한 그의 건축을 바라본다. 제3전시실에서는 이타미 준과 지인들의 인터뷰 영상이 상영된다. 1층 라이브러리와 티 라운지에서 사유의 시간을 갖는 건 화룡점정이다.


건축 다큐멘터리 영화 <이타미준의 바다>(2019)에는 도쿄 ‘먹의 공간(1998)’이라는 건축을 두고 이타미 준과 딸 유이화가 나눴던 대화가 전해진다. 빌딩 리모델링을 앞두고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선 벚나무를 베어내는 대신, 이타미 준은 대나무를 활용해 건축물 입면을 꾸몄다. 딸 유이화는 대나무에 점차 시간의 겹이 쌓이며 색이 변하고 결이 갈라지는 과정을 기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의 건축 철학을 배웠다. 건축물이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어 시간이 지날수록 아우라를 발산하는 건축을 하고자 한 이타미 준의 실천은 오늘날 시간의 흔적을 너무도 쉽게 지우고 부숴버리는 한국 건축 현실을 일깨운다.     




 ITAMI JUN MUSEUM

제주도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906-10

운영시간 : 10: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 1월1일, 설날/추석 당일 휴관

성인 30,000원, 초중고 학생 18,000원,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30,000원

문의 : 064-745-2678

홈페이지: https://itamijunmuseum.com/     



(이미지는 아래 링크에 올려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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