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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라희 May 14. 2024

하늘의 빛깔을 품은 예배당

<방주교회>

- 건축가 이타미 준, 제주 서귀포, 2009년

2010 한국건축가협회 본상 수상작     



물길을 가로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배. 온갖 성난 바람이 불어오지만 그 배는 묵묵히 의연하게 물을 헤치고 나아간다. 긴장감을 감추려 일부러 턱을 치켜들고 차오르는 숨을 애써 고르며 닥친 고난을 감내한다. 거친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배 한 척, 사람들은 방주교회라 부른다.


방주교회는 건축가 이타미 준(1935~2011)의 마지막 작품으로써 완성됐다. 같은 길을 걷는 딸 에게 ‘이제 제법 건축을 알 것 같다, 건축이 점점 재밌다, 내 건축의 정체성을 찾았다’고 말한 즈음이었다. 스스로 가장 큰 기대감을 갖게 되었을 때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방주교회에 관해 건축가 유이화를 통해 전해진 바가 흥미롭다. 설계 때 프로젝트명은 ‘하늘의 교회’였다. 제주 하늘의 표정을 지붕에 담아내기 위해 건축가 이타미 준은 밤낮으로 고민했다. 설계를 마치고 구조가 올라가고 있을 때조차 계속해서 지붕 설계를 고쳤다. 당시 현장 감독직을 맡고 있던 건축가 유이화도 구조가 세워지는 단계에 설계를 고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받아들였다. 아버지인 이타미 준이 보내온 설계 수정안을 보고 설명을 들으며 건축가인 자신도 그게 더 좋은 방향이라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게 현재 방주교회의 지붕이다. 변화무쌍한 제주 하늘의 표정을 담기 위해 아연과 티타늄, 구리가 섞인 ‘징크(Zinc)’라 하는 세 가지 색깔의 합금판을 골라 뒤섞어 새로운 패턴을 만들었다. 유광과 무광의 회색, 어두운 회색의 합금판을 불규칙적으로 섞어, 해가 움직인 위치에 따라 다른 각도로 와닿은 빛이 지붕을 비추어 묘한 반짝임을 만들어냈다. 


지붕에 마치 굴뚝처럼 솟아오른 자리도 눈에 띤다. 제주 한라산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걸까. 유이화의 말에 따르면 이타미 준은 ‘물고기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듯한 형상’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천창이 된 물고기의 입 속으로 햇살이 들고 방주교회의 내부를 환하게 비춘다. 안에서 들여다보면 천창으로 빨려들어가 하늘을 뚫고 나갈 것만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방주교회 내부로 들어가본다. 벽면 기둥은 힘차게 뻗어올라 지붕을 떠받치고 있다. 배의 밑둥을 엎어놓은 듯 그 뼈대가 훤히 드러난 천정 기둥은 배열과 배치가 정교하게 맞물려서 무한한 반복으로 깊이감을 더해준다. 벽면 기둥 사이 유리창으로 빛이 들어오는데 위로는 우유빛 유리가, 아래는 투명 유리가 배치되어 은은하고 따뜻한 빛으로 품에 안긴다. 


발치에 놓인 투명 유리창 밖으로 물의 공간이 보이는데, 제주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이 마음을 흔든다. 이 물결은 빛으로 반사되어 천정에 다시금 부드러운 존재감을 드러낸다. 게다가 투명 유리창은 바깥으로 열리게 되어 있어 전부를 열면 마치 노를 젓는 광경과 같다고 하니, 입이 벌어지고 고개가 가로저어진다. 건축가 이타미 준은 진정 건축물에 숨결을 불어넣는 자다.


중앙의 정갈한 십자가를 향해 창가에 나란히 놓인 나무 의자가 보다 겸손한 자세로 몸을 낮춘다. 그러한 공간에서 한낱 인간은 자신을 낮추고 모든 걸 내려놓은 채 고개 숙여 기도한다. 움켜쥐었던 손을 펴고 맞붙이면서 마음은 한없이 고요해지고 평안해진다.


시간이 더해질수록 방주교회가 위엄을 갖는 이유를 찾는다. 삼각지붕과 기둥의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는 외벽에 붉은 빛을 띠는 삼나무 적삼목이 쓰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랜 나무의 빛깔이 우러나면서 ‘제 맛이 나는’ 건축이 되어 간다. 그야말로 시간을 머금은 건축이다. 


제주 산방산을 향해 바닷물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형상의 방주교회는 그 몸체와 얼굴의 방향 또한 한곳을 향해 있다. 끊임없이 갈구하며 목표를 향해 가는 이의 의지는 강력하고 그건 이타미 준과 닮았다. 한평생 건축가이자 예술가로서의 완성을 향해 나아간 그의 삶이 그러하다. 건축은 인간을 닮고 삶을 담는다는 말이 방주교회를 통해 또 한 번 새겨지는 순간이다.     




Bangju Presbyterian Church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762번길 113

- 내부 개방시간 평일, 공휴일(매주 금요일 오후 10시까지)

* 하절기(6월~9월): 오전 6시~오후 6시/동절기(10월~5월): 오전 6시~오후 5시

* 토요일: 오전 6시~오후 1시

- 예배시간 일요일 1부 9:30, 2부 11시, 3부 오후2시/수요기도회 10:30

(예배 시간에는 내부 개방이 허용되지 않음)

문의 : 064-794-0611

홈페이지: http://www.bangjuchurch.org/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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