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에 흠뻑 젖어들었다가 빠져나오는 기분. 자신과 접점이 없는 인물을 만나고 압축적으로 들여다보기에 ‘다큐멘터리 전기 영화’는 제격이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과 환경, 그 인물이 지나온 여정, 성공과 실패, 희로애락, 함께한 사람들을 상영 시간 안에 빠르고 압축적으로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지어낸 이야기 속 인물과는 또 다른 깊이와 매력이 있기에 개인적으로 난 전기 영화를 좋아한다.
황금빛 해골 형상에 꽃송이와 나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강렬한 포스터로 내 시선을 사로잡은 다큐멘터리 영화 <맥퀸>. 부제로 ‘알렉산더 맥퀸의 모든 것’이라고 쓰여 있었음에도 난 그 인물에 대해 그다지 알지 못했다. 자료를 읽고서야 예전에 봤던 그 해골 스카프가 이 사람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해골 무늬라 기괴한데도 왠지 아름다운, 묘한 느낌이 남았더랬다.
<맥퀸>을 통해 단 110분 만에 그의 인생이 오롯이 내게 전해져 왔다. 역사와 문화, 사회적 시각이 한데 어우러진 한 편의 공연과 같은 그의 패션쇼들은 그야말로 각각의 온전한 예술 작품이었다. 예전에 그와 그의 작품을 왜 미처 알지 못했나 한탄스러울 정도로. 여운이 남아 주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꽤 추천했었다. 꽤 시간이 흘러 도서 <알렉산더 맥퀸-광기와 매혹>를 읽으며 이 영화를 다시금 펼쳐 들었는데 그 강렬함은 여전했다.
알렉산더 맥퀸은 파격적이고 매혹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영국 출신 패션 디자이너다. 패션계의 이단아로 불렸지만 그의 천재성을 인정한 대중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극적인 패션쇼로 명성이 자자했고 해골 프린트와 범스터 팬츠 등으로 화제성도 높았다. 그야말로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한순간에 떠나버린, 재능과 예술성이 실로 아까운 인물이다.
맥퀸이라는 인물이 특히 흥미로웠던 건 비교적 길지 않은 생의 시간 동안 엄청난 간극을 넘어서서 이루어낸 성취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계급이 분명한 영국에서 소득과 지위가 그리 높지 않은 노동자 계층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정규 교육도 제대로 마치지 않았던 그가 패션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으로 고위층 사회 계급이 군림하는 패션계에 홀로 우뚝 선 과정이 그러하다.
영화 <맥퀸>은 다큐멘터리 전기 영화임에도 짜임새가 좋다. 구성과 미장센, 음악적 선택이 훌륭해 여타 다큐멘터리 영화에 있어 선례가 될 법하다. 우선 구성상 이 영화는 맥퀸의 삶을 5개 챕터로 나누고 맥퀸의 컬렉션 제목을 붙여 그의 삶을 면밀하게 표현했다. 그와 함께 지내고 일했던 동료와 지인, 가족들의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맥퀸 이전에 주로 ‘리’로 불렸던 그를 정서적으로 보다 가깝게 느껴지게 해 주었다. 더불어 맥퀸의 생전 인터뷰 영상과 미공개됐던 개인 촬영분 등도 풍부하게 포함되어 마치 살아있는 인물처럼 생동감을 더했다. 여기에 알렉산더 맥퀸의 도전 정신과 예술성을 제시해주는 패션쇼 영상이 효과적으로 배치됐다.
1장 ‘희생자들을 쫓는 살인마 잭’에서는 맥퀸이 런던 새빌로우 양복점에서 수습생으로 일을 시작해, 고등 중퇴 학력이지만 열정적인 포트폴리오로 센트럴 세인트 마틴 석사 과정을 입학하고 졸업 작품전으로 패션계의 주목을 받게 된 맥퀸의 초창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움이 빠르고 성장에 대한 욕구가 충만했던 그의 면모를 알 수 있었다. 그 과정을 보면서 내게도 그런 열정이 충만한 시기가 있었는데 싶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맥퀸이 ‘자신의 가장 어두운 면으로 들어가 공포를 끌어올려 작품에 담는다’고 말했던 그의 저변에 깔린 트라우마에 대해 알게 된 건 2장 ‘하일랜드 레이프’에서다. 어린 시절 누나가 매형에게 구타를 당하고 자신 또한 매형에게 성적 폭력을 당했던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자신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고 끌어내어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용기가 감탄스러웠다.
맥퀸이 지방시 수석 디자이너로서 패션계의 주류로 급부상한 이야기는 3장 ‘세상은 정글’에 담겨있다. 런던 뒷골목에서 옷을 만들던 맥퀸과 ‘일당들’이 격식을 차린 프랑스 지방시에 입성해 자신의 길을 헤쳐간 이야기가 담겼다. 그의 패션쇼에 출연한 모델의 인터뷰 답변 중에 ‘아무리 뭐라 해도 난 계속 나다울 거야’라고 자신의 모습에 충실하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영국을 파리에 끌어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 또한 사회에 적응하며 모난 부분이 깎여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때로는 나다움을 잊거나 잃어버리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 말이었다.
언론과 대중에게 전 가젤 같았어요. 가젤은 언제나 잡아먹히잖아요.
인생이 그래요. 우린 쉽게 버려질 수 있죠. 언론 속 디자이너의 생명은 덧없어요.
나타났다가 사라져요. 세상은 정글이죠.
-알렉산더 맥퀸, 인터뷰 중
맥퀸의 답변을 들으며 저토록 숨 막히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스스로를 갈아 넣으면서 패션이라는 작품을 창조했겠구나 싶었다. 그가 겪은 우울감의 근원에 대해 이해했다. 한데 그건 자본주의 현대인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의 같은 선상에 있었다.
인생에 귀인을 꼽는다면 맥퀸에게는 그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고 세상을 주목할 수 있게 다리를 놓아준 패션 에디터 이사벨라 블로우가 있다. 4장 ‘보스’에서는 맥퀸이 얻은 것과 떠나보낸 것들 에 대한 이야기다. 지방시의 엄청난 압박 속에 작업을 이어가면서 맥퀸은 거액의 돈을 벌어들이지만 과로와 스트레스가 극심해진다. 이에 그의 뮤즈 역할을 해주던 이사벨라에게 등 돌리고 지인들조차 불신하며 외로움을 더해간 맥퀸이 그려진다. 정신병원 콘셉트의 보스 패션쇼는 맥퀸의 천재적 기획력을 엿보게도 하지만 당시 그의 정서적 피폐함을 나타내는 쇼였던 것 같다.
‘플라톤의 아틀란티스’라는 제목의 5장은 맥퀸에게 날개를 달아준 이사벨라 블로우가 숨을 거두고 그를 가장 많이 믿어준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삶의 의지를 잃어간 맥퀸의 모습이 보인다. 이사벨라를 위한 추모 패션쇼를 비롯해 인간과 로봇의 결합, 디지털 전환을 주창하며 맥퀸의 마지막이 된 패션쇼를 마친 모습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맥퀸과 함께한 이들이 마치 추도사를 보내는 듯 그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장면에서 그들이 얼마나 맥퀸을 사랑했는지 전해져 와서 울컥했다.
알렉산더 맥퀸은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먼 길을 빠르게 달려 흔히 말하는 ‘사회적 성공’이라는 정점에 이르렀다. 맥퀸은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로 4 연속 선정되었고 올해의 국제 디자이너상과 대영제국 3등 훈장도 받는 성과를 생애에 걸쳐 이뤘다. 그렇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패션 디자이너의 상패도, 명예도, 한때 그토록 궁하던 재산도 모두 갖췄다. 그러나 어머니의 장례식 전날, 맥퀸은 향년 40세로 생을 마감한다.
맥퀸이 발표한 의상 컬렉션을 영상을 통해 보면서 더 이상 그의 의상을 볼 수 없게 되어 안타까웠다. 아직 못 다 꽃 피운 재능이 그대로 사라져 버린 데에 쓸쓸함을 느꼈다. 직업적으로는 성공했으나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행복을 느끼고 누려보지 못했던 맥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쓰럽고 가슴이 시렸다.
맥퀸의 불안과 우울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앞서 본 것처럼 자본의 논리가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는 패션계에서 세상의 질타와 싸우면서 그 자리를 지키려 발버둥 치는 가운데 서서히 지쳐간 것으로 보인다. 그를 도와주던 이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어 떠나려 하는 것인데도 그저 적대시하며 스스로를 고립시켰던 면도 없지 않다.
한편으로 맥퀸이 자신을 좀먹는 부정적 감정을 그가 패션이라는 예술의 재료로 썼기 때문은 아닐까 유추해본다. 맥퀸의 친구 제이크 채프먼은 말했다. “맥퀸은 패션의 천박함과 죽음의 숭고한 아름다움을 하나로 묶었어요. 맥퀸의 작품은 자기 파괴적이어서 울림을 줄 수 있었죠. 우리는 누군가 무너지는 걸 보고 있었던 셈이에요.” 그의 밑바닥에 깔린 고통을 기어코 길어 올려서 패션으로 표현된 예술과 연결 짓고 대중인 우리는 그 걸을 쉽게 소비하는 순환 과정에서 맥퀸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채울 새도 없이 소진된 것은 아닐까 싶다.
맥퀸의 빛나던 삶의 순간을 되돌아보면서 인생의 성공은 무엇을 의미할까 생각해본다. 삶의 성공은 ‘나만의 행복을 찾았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을까. 스스로를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그 무엇을 찾지 못하면 인생의 수많은 부귀영화도 부질없는 것 같다. 맥퀸이 인생의 공허함과 허무함,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 건 그와 같은 정신적 기둥 혹은 힘겨움도 지탱하게 하고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계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지. 그래서 그는 그토록 빛나는 재능을 갖고도 살아갈 힘을 잃은 것이다.
그리하여 맥퀸을 통해 얻은 메시지는 이것이다. 삶의 기쁨을 찾았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대의 삶은 성공이다. 사회적 잣대와 상관없이 영혼의 채워짐을 얻었기에. 우리는 생애에 걸쳐 자신만의 삶의 기쁨을 찾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