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안도 타다오가 빚은 문화도시의 새 극장

LG Arts Center SEOUL

by 오색빛깔 라희뷰

문화도시라면, 아름다운 극장을

Signature Hall, LG Arts Center SEOUL © LG Arts Center


극장에 들어설 때면 설렘과 기대감을 안고 발걸음을 옮긴다. 꽤 오래전 예매해 둔 티켓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좌석에 앉고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다 보면 왠지 모를 뿌듯함도 스며든다. 사무엘 셀던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은 기분 전환을 하고 자극을 얻고 무언가 더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걸 가장 강렬하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곳이 극장이라고 했다.

극장은 그 의미가 단순히 문화예술을 관람하는 공간으로만 제한되지 않는다. 한 도시의 문화 사회적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자, 국력과 경제력이 반영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시아 신흥경제국이나 중동 국가들도 국가적 권위를 높이고 문화 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경쟁적으로 아름다운 극장을 짓는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극장이라는 단어가 공연예술을 펼치는 공연장(Theater)과 영화를 상영하는 상영관(Cinema)을 칭할 때 혼용되기도 하는데, 이 글에서는 공연장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쓰려한다.


극장이라는 공간은 일상에서 벗어나 또 다른 시공간으로 전환시켜 주는 마술상자와 같은 곳이라,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공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중고생 때부터 다녔던 대학로 소극장부터 장충동 국립극장, 서초동 예술의전당, 역삼동에 있던 LG아트센터, 뮤지컬 전용극장인 샤롯데시어터, 이태원의 블루스퀘어, 신당동의 충무아트홀, 명동 한복판에 재건된 명동예술극장, 연극의 자존심을 지키는 백성희장민호극장, 지금은 사라진 남산예술센터에 이르기까지. 예술학 전공자로서 웬만한 극장은 거의 다 가봤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오랜 시간에 걸쳐 각 극장들이 변화하는 과정 또한 관객 중 한 사람으로서 조용히 지켜봐 왔다. 한국 문화예술계가 점차 발전하면서 각각의 극장도 각종 설비와 운영의 수준을 높이고 전문 스태프들의 손길로 내실을 다져왔음을 잘 알고 있다. 국가적으로도 국민 상당수가 모여드는 극장의 중요성과 위력을 고려해 육성정책을 편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 관객과 공연예술계 관계자뿐만 아니라 해외 공연팀이 단연 1순위로 꼽는 공연장이 강남 빌딩 숲 속에 우뚝 자리했던 LG아트센터였다. LG아트센터는 미국 건축회사 아르텍 사가 설계 감리한 최첨단 시설에 시즌제를 도입한 운영 방식으로 주목받았고, 미국 무대기술협회가 수여하는 USITT 건축상도 수상했다. 해외 현대 예술 거장들의 공연을 적극 유치하고 초대권 없는 극장을 표방하는 등 혁신도 일으켰다. 여성 관객을 배려해 여자화장실도 파격적으로 늘렸고 전례 없이 친근한 안내방송까지 화제가 될 정도였다.

이러한 대표성과 상징성을 가진 LG아트센터가 역삼동 터전을 접고 강서구 마곡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의외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 모든 인프라를 포기할 만큼의 장점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이전 계획을 발표했을 때 정보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중 놀라운 소식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새로운 LG아트센터의 설계를 맡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난 안도 타다오

Ando Tadao © Wikipedia


지난 2017년 tvN <알쓸신잡>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소개하며 그의 건축물을 두고 ‘클린치를 하는 듯한 벽, 잽을 날리는 듯한 벽돌’이라고 표현했다. 자료화면으로 보인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신비롭고 새롭고 남달랐다.

그때 인상이 강렬했는지 안도 다다오에 대한 관심은 지속됐다. 3년 전 제작됐지만 한국에서는 2019년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안도 타다오: Tadao Ando - Samurai Architect>라는 작품을 통해 전 세계에 지어진 그의 건축물을 영상을 통해서나마 관람할 수 있었다. 또한 인터뷰에 응한 그의 대답과 목소리를 통해 굴곡진 삶을 살아온 그에 대해 보다 깊이 알게 되었다.

해외까지는 못 가보더라도 국내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은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 뒤늦은 여름휴가를 제주도로 가기로 정하고 나름 건축투어를 테마로 여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때마침 유현준 교수가 도서 <공간이 만든 공간>을 펴내고 최인아 책방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다. 득달같이 달려가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에 제주 건축투어에 대한 조언도 구했다.

Outside, Bontemuseum © Bontemuseum


제주에 찾아가 내 눈으로 직접 본 건축물은 그야말로 매끈하게 완성된 예술작품이었다. 안도 다다오의 서귀포 본태박물관은 웅장하게 선 콘크리트 벽면 사이로 보이는 한국식 담장이 손님을 맞이하는 느낌을 줬는데, 드넓은 연못과 함께 담장을 따라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수로가 인상적이었다. 내부는 말끔한 회색빛 벽면이 캔버스가 되어 주어 색색깔의 한국 공예 작품이 더 돋보였다. 섭지코지의 글라스 하우스는 양팔을 벌려 바다를 품는 듯이 양쪽으로 펼쳐진 기세가 당당했고, 건물을 둘러싼 투명한 유리벽이 햇빛을 받아 광채와 화려함을 더했다. 유민미술관은 입구 벽부터 제주의 풍경을 액자 프레임처럼 담아내고 있었고, 가로로 길게 난 유리창 또한 액자의 역할을 해 그 자체로 미술 작품이었다.

이타미 준의 방주교회는 서까래 같은 천장과 뼈대 같은 기둥 사이로 빛이 뿜어져 들어오게끔 해 마음을 정화시켰다. 또한 외경은 유리로 건물 천정까지 둘러싸 뱃머리 형상으로 만들었는데 그 앞에 잔잔하게 물이 흘러가도록 해 그야말로 노아의 방주가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느낌을 주었다. 수풍석 뮤지엄은 천장에서 내리꽂은 빛을 받은 제주 돌이 놓인 석의 공간, 바람을 소리로 표현한 풍의 공간, 광활한 바다를 닮은 수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거대한 자연 속 인간의 존재를 다시 생각나도록 했다.

제주 건축여행 이후 안도 다다오의 정수를 모아놨다는 원주의 뮤지엄 산도 찾아갔다. 거울을 연상하게 하는 물길이 쭉 뻗어있고 층층계단으로 물이 흘러내리며 시청각의 환상을 빚어냈다. 건축물 내부에는 다양한 각도와 형태로 벽면이 나뉘었는데, 그 사이로 빛줄기가 치고 들어오는 듯해 안팎의 경계가 없이 하나의 풍경처럼 존재하는 건축물이었다.

안도의 건축, 독보적인 특성

Outside, museumsan © museumsan


제주와 원주에서 본 바와 같이,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그만의 특징과 정체성이 분명하다. 그는 물과 바람, 빛과 소리를 건축적 요소로 충분히 활용해 자연이 건축물 안으로 들어오도록 구성한다.

특히 물은 안도 다다오의 건축에서 중요한 자연의 요소인데, 저 너머의 대상에 가닿기 위한 경계이자, 그 공간에 이르기 전 마음을 정화하는 단계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그는 빛의 연출자라고 불릴 만큼 자유자재로 빛을 활용하는데,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빛이 비치게 하여 건축 재료를 넘어선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표현한다.

외벽 끝에 천창을 설치하는 방식은 빛과 공간, 형태를 창조해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창을 유리로 마감하되, 경사의 기울기 외에 프레임도 없이 유리 외벽이 하늘과 바로 연결된다. 기둥과 벽, 건축의 요소 하나하나가 상호 관계를 이루며 풍경이 곧 건축물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더불어 콘크리트를 건물 외피로 사용하는 '노출 콘크리트'는 그의 특징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안도 다다오는 합판의 줄눈, 콘의 구멍, 층간의 띠, 반들거리는 노출 콘크리트 표면을 완성하기 위해 재료의 혼합비율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거푸집부터 콘크리트 타설까지 자신만의 새로운 방책을 세웠다고 한다.


Outside, Glass House © PHOENIX JEJU


또한 안도 다다오는 건축물 안에 자연 그 자체를 끌어들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중정’이라고 불리는 건축물 안쪽에 들어선 뜰을 구성해 비와 바람 등을 직접 대하며 인간이 자연과 늘 밀접하게 맞닿을 수 있도록 한다. 나아가 건축을 위한 토대를 잡을 때에도 대지의 높낮이와 풍경을 해치지 않고 그곳의 환경이기 때문에 가능한 건축물을 완성한다.

유현준 교수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두고 ‘시간을 담은 건축’이라고 말했다. 세로로 긴 천창 하나만으로도 해가 비치는 시간대에 따라 빛의 감촉과 바람의 결, 소리가 다르게 들려와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을 건축물 안에서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협소함을 뛰어넘어

복잡한 공간 구성으로 생기는 건축과 생활과의 깊은 관계,

자연과의 관계, 소재와의 접촉을 통해 삶에 대한 본질을 따지고,

살아 있다는 것을 인간의 몸으로 실감할 수 있게 하는

그런 건축을 만들고 싶다.

-안도 다다오, 도서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중에서

그의 삶은 건축에 묻어난다

Benesse House, Naoshima © Benesse House


안도 다다오는 혈혈단신 자신만의 길을 찾아온 사람이다. 그는 고교 졸업자로 건축 전문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지만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다.

그는 17세에 프로 권투선수 생활을 하다가 한계를 느끼고, 10개월 간의 세계 여행을 떠났다. 어린 시절, 자신의 일에 몰입하는 목수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본 기억에 건축이라는 일로 지역 사회와 나라, 지구를 위해 기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학력 사회에서 어느 곳도 그를 받아주는 데는 없었고, 1달 여만에 돈을 모아 헌책방에서

겨우 구입한 르 코르뷔제의 도면 책을 필사하면서 건축을 독학했다고 한다. 하루 8시간씩 독서를

하며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29세에 설계 사무소를 차렸다.

인간은 건축의 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건축의 근본은 무엇인가를 늘 고민했다. 그렇게 모든 가식과 외관을 걷어내고 건축의 본질을 실천하기 위한 가장 미니멀리즘 한 방식으로 노출 콘크리트를 택한 것이다.

안도 다다오는 인간의 역사를 연결하고 지구를 살리는 건축을 하려 한다. 산업 폐기물이 버려지던 황폐한 외딴섬을 현대미술 뮤지엄의 섬으로 변화시킨 나오시마 프로젝트, 15세기 건축물을 활용해 미술관으로 탄생시킨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푼타 델라 도가나, 옛 건물의 가치를 살려 젊은 예술가들을 교육하고 후원하는 정신을 담은 학교 건물로 개축한 트레비소의 파브리카 등이 그의 신념이 담긴 프로젝트이다. 또한 미국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를 모델로 삼고 자신이 번 돈으로 일본 도노와 고베에 ‘어린이 책의 숲’ 도서관을 지어 어린이들의 미래를 위한 건축에도 힘썼다.

안도 다다오는 지금 건강상의 어려움에 닥쳐 있다. 2번에 걸친 대대적인 암수술로 장기도 5개나 떼어냈다. 그러나 삶을 통해 꿈과 신념 앞에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게 적극적인 자세와 활기찬 기운, 건강함이 있다고 해요.

사회에 공헌하려는 마음이 느껴진다는 이유로 경쟁에서 이기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전 어린이 도서관을 떠올렸는데요.

앞으로 아이들이 지구를 지탱할 테니 건강하게 생각할 힘을 기르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안도 다다오, 다큐멘터리 <EBS 위대한 수업-그레이트 마인즈> 인터뷰 중

문화도시 서울의 2막

LG Arts Center SEOUL © LG Arts Center


문화예술의 향기를 담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은 그 나라와 도시의 얼굴을 확 바꾼다. 그간 강북과 강남 일원에 집중됐던 한국 현대문화가 이제 강서로 확장될 것이다. 마곡 시대를 열 LG아트센터 서울은 안도 다다오가 지은 중국 상하이 폴리 그랜드 씨어터(Poly Grand Theatere)에 이어 다음으로 큰 규모다. 이는 중국이 문화적 국격을 높이고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안도 다다오에게 재량권을 주고 얻어낸 건축물이다. LG아트센터 서울에도 문화도시 서울의 자존심이 걸렸다.

Tube, LG Arts Center SEOUL © LG Arts Center


일부 공개된 LG아트센터 서울의 청사진을 보면, 안도 다다오 건축의 결정체가 담긴 것 같아 흐뭇하다. 타원형의 통로 ‘튜브’는 극장의 지상을 가로로 관통하며 북쪽으로 서울식물원, 남쪽으로 LG 사이언스파크와 연결된다고 한다. 지하철 마곡나루 역부터 공연장 객석 3층까지 연결하는 100m 길이의 계단 ‘스텝 아트리움’은 지하에서 지상까지 세로로 연결되는 구조다. 로비에서 마주할 거대한 곡선 벽면 ‘게이트 아크’는 긴장감과 균형을 겸했다. 또한 단관이었던 역삼동 극장과 달리, 마곡 극장은 무대 면적이 2.5배 이상 넓어진 1335석 규모의 다목적 공연장 ‘LG시그니처 홀’과 365석 규모의 블랙박스 극장로 완성된다.

깊은 철학을 가진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손길로 한층 새롭게 태어날 문화도시 서울의 발전된 면모를 볼 날이 머지않았다. LG아트센터가 지난 시간 이루고 일궈 놓은 문화적 자산과 운영방식이 바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도시의 랜드마크는 단순히 크고 웅장한 건축물로만 완성되는 게 아니라, 대중이 문화를 통해 넘치는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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