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

나도 몰랐던 나의 습관과 만날 때

by 볕뉘

나는 따뜻함과 뜨거움 사이 어딘가 온도의 물을 좋아한다. 가만히 따스한 물을 샤워기로 맞는 것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도 좋다. 그날도 그 온도의 물로 샤워를 하며 무언가 생각하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샤워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사실 한참 전의 일이라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때 내가 무언가 곰곰이 생각 중이었다는 건 안다.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여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날 샤워를 하다가 문득 내가 이를 꽉 힘주어 다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를 꽉 다물려고 한 것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이를 꽉 다물고 있었다. 당시에는 내가 왜 이를 꽉 다물고 있었는지 몰랐는데, 그 후로 나를 들여다보고서 그게 나의 습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무언가 누르는 마음으로 참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이를 꽉 다무는 습관이 있다. 이전에는 내가 그럴 때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내 몸이 움직이는 건데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도 참 신기했다. 들여다보니 이를 꽉 다물고 있었다는 것을, 내 몸이 힘을 주며 버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꾹 누르며 참고 버티고 있다는 게, 머릿속의 생각과 마음을 벗어나 몸으로 나타났던 모양이다. 그리고 내 마음이 혼자 버티지 않게, 몸도 같이 버텨주고 있었다는 게 새삼스럽게 다가와 신비롭고 고마웠다. 무의식적으로 내 몸은 나를 보호하고 싶었던 걸까, 조금 더 잘 참고 견딜 수 있게.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지금도, 여전히, 때때로. 나도 모르게 이를 꽉 다문다. 그러나 이제는 곧바로 생각한다. '아, 내가 누르고 버티려고 하는구나.' 그리고 꽉 다문 이에 힘을 푼다. 얼어 있는 마음에도 괜찮다고 되뇌어본다. 힘을 조금은 빼고 숨을 들이마시며 호흡을 한다. 조금 더 담담하게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그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잡는다. 그렇게 나와 더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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