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돌아서서 소독제 칙칙

내가 머문 자리에 남은 흔적의 모습

by 볕뉘

출근길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게 싫어서 몸이 안 좋아도 안 좋다는 소리를 안 하는 나인데 그날은 왠지 '몸살 걸릴 거 같아'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아침을 먹고 한 알, 점심을 먹고 한 알. 총 두 알을 진통제를 먹었다. 원래대로라면 약을 먹은 뒤에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어야 하거늘 차도가 없었다. 그리고는 곧 온몸이 아프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미련하게 차도가 없는데도 일을 하니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결국 버티다가 안 되겠어서 전에 캐비닛에 넣어뒀던 후드집업을 꺼내 들고는 퇴근길에 몸을 싣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잠들고 만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때에도 내 몸은 나에게 필요한 것을 해내고는 한다. 가끔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하는 몸에게 미안하다. 평소와 같으면 약국에서 약을 사고 갈까 생각했을 텐데, 왠지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아 병원을 간다. 아뿔싸, 첫 코로나와의 만남이다.


며칠을 내내 앓았다. 어렸을 때부터 열에 약해서 37도 중반만 되어도 넘어가고는 했는데, 체온이 38도에서 39도 사이의 오가면서 도통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그래도 열이 올라도 쓰러지지는 않는 게 나도 어른이 되었구나 싶었다. 가끔씩 스스로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들이 너털웃음이 지어지게 어이없는 소소한 순간과 이유일 때도 있지만, 그걸 느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좋다.


다행히 목이 아프거나 기침을 하지는 않았지만 온몸이 맞은 것처럼 아프고 기운이 없었다. 다른 가족이 아플까 염려가 되어 우리 집의 유일한 방에서 문을 닫고 마스크를 낀 채 따로 생활하였다. 식사도 가족들이 챙겨주면 사식을 받듯이 쟁반 채로 받아서 방에서 먹고, 화장실에 갈 때만 방 밖으로 나갔다.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최대한 아무것도 만지지 않도록 하면서, 내가 머문 곳에 소독제를 뿌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이때처럼 내가 머문 자리에 대해 시선을 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픈 와중에는 생각할 겨를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였지만, 일주일의 끝에 다다랐을 때는 내 손길이 닿는 곳들이 참 많구나 새삼스러웠다.


나는 서점들 중에서 작은 책방들을 좋아한다. 잘 관리되는 대형 서점이나 프랜차이즈 서점의 깔끔함과 쾌적함도 좋지만, 동네 서점의 따뜻함과 색깔 있는 흔적들이 좋기 때문이다. 특히 독립 서점을 좋아하는데 문제집류나 만화 등 생활 서적과 함께 있는 동네 서점도 있지만, 책방지기의 색이 분명하게 묻어있기 때문이다. 마치 책방지기라는 한 사람을 만나러 책방의 문을 여는 것 같다. 단순한 생활감과 시간만이 아니라, 책방지기의 색깔이 있는 흔적이 묻어 있는 게 좋다.


내가 머문 곳에 나는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뒤돌아 본 나의 흔적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나는 그 흔적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기를 바랄까. 문득 내 머문 자리가 독립 서점과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이 세상에 유일한 ‘나’라는 사람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색깔이 있는 흔적이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어떤 색깔과 모양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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