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젖어도 괜찮은 신발

아뿔싸. 하얀 신발이다.

by 볕뉘

뉴스에서 이번 여름에는 비가 제법 많이 온다고 장마가 오래간다고 한다. 그걸 듣고는 속으로 생각한다.

'뭐 얼마나 오겠어, 여느 때처럼 오겠지..'

그렇지만 혹시 몰라서 젖어도 괜찮은 신발을 골라 신었다. 언제 신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신발. 세일 때 싸게 사놓고 손이 가지 않아 상자 안에 계속 있었더라지. 그런데 웬걸 집을 나서서 지하철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신발은 쫄딱 젖었다. 아침부터 축축한 신발의 물기가 발을 통해 느껴지는 게 엉망이다. 양말마저 젖어서 내가 양말을 신었는지 양말이 나를 신었는지 알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결심한 듯 인터넷 검색창에 장화를 검색한다. 오늘은 장화를 사야겠다.


물건을 살 때 가격이 싼 것들만 사던 때가 있었다. 여유 있지 않은 형편에 내가 벌어서 쓰면서 절약하는 건 몸에 밴 습관이었으니까. 그 습관으로 지금도 1+1, 2+1 등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싼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싼 가격만큼의 값어치만을 할 때가 많았고, 길게 보았을 때 혜택 등으로 더 나은 소비가 가능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무조건 싼 가격이 아닌 어떤 기준에 의해 물건을 고른다. 소중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라면 품질이 확실히 보장되는 것으로, 소모적인 물건은 적당한 가격과 적당한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내가 사용하는 것은 오랫동안 살펴보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그렇게 고르고 골라서 상품평의 수와 내용도 괜찮고, 가격대도 괜찮은 장화를 골라서 주문하였다. 오래전부터 사고 싶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이렇게 단김에 사게 될 줄이야. 순간 너무 충동적인 구매였나 반성해 보지만,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 잘 신어야지 하고 앉은자리에서 기분 좋게 발을 굴러본다. 구르는 내 신발을 무심코 바라보았는데,

'아뿔싸. 하얀 신발이다.'


젖어도 괜찮은 신발을 꺼내 신었는데, 하얀 신발이었다니 아이러니하다. 비 오는 날이면 까맣게 때 타고 물들을 하얀 신발을 어찌 신었을까. 그냥 상자 안에 넣어둔 채 안 신는 신발이라 치부하고는 색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상자에서 꺼내고, 신고, 걷는 그 사이사이. 내 눈에 들어왔을 하얀색을 가린 채. 젖어도 괜찮은 신발이란 게 있었을까? 그나마 젖어도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가끔씩 무의식적으로 내가 놓친 것에 놀라고, 내가 놀라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놀라는 내가 ‘다 그런 거지’라며 돌아볼 줄 모르는 내가 아니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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