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화)가 나는 걸 어떡해

가만히 떠올려 봤다

나는 언제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열을 받았는지

다음과 같다

라면을 같이 끓여 먹기로 했다. 근데 이미 물을 올리고 면을 넣었단다. 네이버 지도에선 도착까지 25분이 남았다고 한다. '고작' 불어 터진 라면이 날 이렇게까지 화나게 만든다.

마지막이라고 했다. 분명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또 같은 실수를 하는 '너'. 참 열받게 하는구나.

바지가 맞지 않는다. 특히 배 부분이 잠길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야식을 끊지 못하는 '나'에게 분노가 치민다.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도대체 회사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까. 이 사회에서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 있긴 한 것일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짜증이 난다.

아저씨 제발 담배를.....'나이 많은 남자'가 내뿜는 지독한 담배 냄새에 불쾌함이 머리끝까지 차오른다.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퇴근 지하철. '나이 많은 여자'가 아무렇지 않게 새치기하는데 말문이 턱 막힌다.

차지 말아 주세요. 본인 남자친구와 웃고 장난칠 거면 '젊은 여자' 분 본인 집에서 하시지, 영화관에서는 조용히 영화를 보고 싶답니다.

카오디오를 최대치로 하고서 굉음을 내는 저 배기관을 어떻게 좀 하고 싶다. '젊은 남자'여. 시간을 좀 보세요. 몇 시인지.

타요도 좋고, 티니핑을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신발을 신은 채 의자 위에서 방방 뛰는 건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더욱이 옆에서 폰만 보면서 아무런 말이 없는 '부모'는 어떻게 이해를 해줄 수 있을까.

파도 파도 짜증 났고 화났던 일들이 계속 기억 속에서 솟아난다. '일상 속 아주 사소한 일에서',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도', '항상 문제투성이인 사회', '남! 녀! 노! 소!' 가릴 것 하나 없이.

하지만 온종일 화나고 짜증 났던 일을 떠올려 보고 기억을 되짚어보니 몇 가지 깨닫는 바가 생기는 듯하다.


하나, 화는 이유가 있기도 없기도 했구나. 심지어 그때 왜 그렇게 화를 냈지가 불분명할 때도 있더라.


설령 내 잘못인 걸 알고 있음에도 억울하고 화가 나는 때가 있었다. 그리고 분명 상대가 나에게 공연히 본인의 화를 나에게 옮긴 경우도 있었다. 어느 쪽이던 내 의지대로 흘러가지 못했다. (오히려 내 의도와 반대로 갔으면 몰라도)

적절히 해소하는 대응이 있을 뿐 원천적으로 화라는 감정이 생성되지 못하게 하는 예방법 같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만이 남는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둘, 결국 사람이 독이고 사람이 약이더라.

많은 사람과 살 비비고 살다 보니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끼리 접촉하는 경우의 수가 필연적으로 생긴다. 그럴 때 성급하게 나의 화를 상대에게 옮겨서는 안 되었다. 특히 입 밖으로 나의 설익은 감정을 꺼내어서는 곤란하다. 돌이켜봤을 때 그때 그 말을 해서 상대방에게 한 방을 줬다는 후련함 보다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지 이 녀석아" 하는 후회만이 남았다.

나의 이런 불완전함을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불완전한) 사람뿐이다. 억울했던 것, 무례함을 당한 것, 내가 실수한 것까지 이해받을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내겐 사람뿐이더라. 그러니 평소 나의 감정을 함부로 휘두르며 주변 사람을 생채기 내선 안된다. 그래봤자 내게 남는 건 후회와 주인 떠난 빈자리뿐일 테니.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좋아한다. 우리 안에는 기쁨, 까칠, 소심, 화남, 슬픔 등 다양한 친구들이 공존한다. 예쁘고 빛나게 표현된 '기쁨'만이 우리 감정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메시지가 있었고, 이에 많은 어른들이 눈물지었을 것이다. 까칠하게 굴다가 대차게 혼쭐도 나보고, 소심한 대처에 부끄러워도 해보고, 불같이 화냈다가 후회도 하면서, 그렇게 울고 웃고.

수많은 감정의 발산 이후에 오늘날 '나'로 수렴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감정이 또 오가고 많은 실수를 또 저지를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에겐 건강한 신체와 날 위로해 주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있으니 감사함을 느끼며 또 살아갈 용기를 가져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