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에 관하여
'Starting from scratch'
by 어느날 그곳 당산동 Jul 8. 2024
Starting from scratch, “처음부터 시작하다” 내지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Scratch’는 동사 또는 명사로 ‘긁다’, ‘긁힌 자국’ 등의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위 문장에선 ‘출발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이 단숨에 박차고 나가는 그 선, 마라톤 선수들이 긴 호흡으로 넘어가는 그 선線. Scratch(출발선)이다.
“나도 이젠 술 끊어야지”라는 말을 할 때면 “어야지”가 채 발음되기도 전에, 소주 뚜껑 따는 소리가 (어김없이) 들리곤 했다. 비단 나만의 에피소드는 아닐 것이다. 그랬던 나의 벗, 술을 사귄 지 10년 만에 떠나보냈다. 심각한 병은 전혀 아니었지만 원인은 분명 ‘음주’인 꽤나 번거로운 질환을 맞이한 것이다.
기분이 좋을 때면 어김없이 과음하는 습관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이가 들면 하나씩 고장이 난다’는 어른들 말씀에 30대를 앞둔 청년이 공감할 일은 아니다. 처음으로 ‘고장’을 마주한 치기 어렸던 젊은이는 충격을 받게 된다. “금주하시라”는 의사의 충고가 으레 있었다. 예상치 못한 병치레로 적잖이 당황했던 나는, 의사의 충고를 온전히 실천했다. 그 길로 더 이상 술과 재회하지 않게 됐다.
몸이 다 회복된 후, 술잔을 자주 나눴던 오랜 친구들과 다시 만났다. “뭐, 어차피 끊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끊으려고.” 하루아침에 180도 태도를 바꿔버린 내게 ‘너는 너무 극단적이다’라는 등 온갖 소리를 해대는 내 친구들이다. 온갖 인격모독도 자꾸 듣다 보니 이젠 안부 인사처럼 느껴진다.
최근 주변에서 자주 묻곤 한다. 그렇게 술을 좋아했던 사람이 어떻게 한 번에 끊어버릴 수 있었는지, 대단하고 부럽다고.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금주에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던 건 아니다. 시작은 소주잔에 생수를 먼저 따라버리는 ‘가벼운 거절’에서부터였다.
2018년, 고대하던 취업에 성공했다. 짧고 굵은 취업 준비였다는 주변의 평가가 뒤따랐었다. 하지만 본인 체감은 그러하지 못했기에 스스로는 한사코 부인 중이다. 현재 나의 직장은 대학 전공과는 전혀 무관하다. 애초 전공으로는 밥벌이가 쉽지 않았기에 어느 방향이든 뱃머리를 돌리긴 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아가는 방향이 이러할 것이라곤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그 첫 시작은 내가 많이 따랐던 대학 선배 형 A의 추천으로부터였다.
A 선배 형과 나의 학번은 1년 차이인데, 타 대학에 다니다 편입으로 들어온 경우라 나이가 나보다 네댓 살은 많다. 군 휴가를 나와 당시 취업 준비 중이던 형과 밥을 먹는데, “동구야, 너도 이 시험 준비해 볼래?”라고 형이 물었다. 그땐 진로라는 걸 진지하게 고려해 보진 않을 때였다. 부대 복귀 전, A 선배는 내게 자료 파일을 보내줬다. 꽤 많은 양이었지만 성의가 감사해 책자로 만들어 군부대로 챙겨갔다. 덕분에 주말 개인정비 시간이면 때때로 훑어볼 수 있었다.
전역 후 두 번의 학기를 다니고, 그리고 두 번의 학기를 남긴 채 휴학을 했다. 우리 학과 남학생 ‘취업 준비 정석 경로’였다. 대부분의 선배들은 공무원 아님 경찰 준비를 했지만, 난 그것까지 따라가고 싶진 않았다. 소개해 줬던 진로로 취직까지 끝낸 A 선배에게 종종 연락했다. 교육을 받기 위해선 (대학생 치고) 꽤 큰돈이 드는 일이었기에, 무언가 확신 같은 걸 얻고 싶었던 것 같다. 숱한 고민을 매듭짓기로 마음먹은 날 저녁, 난 엄마에게 교육기관 등록비 수백만 원을 마련해 달라고 ‘말했다’.
전혀 해보지 않았던 공부를 새로 시작해야 했기에, 진입까지 많은 고민과 두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죽기야 하겠어’ 하는 그 결단이 오늘을 만들었음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본인 밥벌이 해소가 됐건, 금주 금연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례가 됐건, 흔한 일이다. 그러나 글을 쓰는 지금의 난 적어도 스스로 만족감을 느낀다.(사실 담배는 애초에 피우지도 않았고, 1등 복권이 아니었을 뿐 다이어트도 성공한 편이다.) 중요한 건 주어진 순간마다 그어진 선線을 넘기 위해 한 발짝이라도 뗐다는 데 있을 것이다. 지면에 옮기지 않았을 뿐, 백년대계를 외치며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숨기기 급급하게 덮어버린 경우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럴 땐 땅바닥을 문질러 출발선을 몰래 지워버리자. 그리고 손에 쥔 분필로 또 다른 ‘출발선’을 긋고 자세를 잡으면 그만이다.
두 발로 서 있으면 안정적이지만, 한 발을 떼면 무게중심을 잃으며 불안정이 찾아온다. 결과를 알고 출발할 수는 없다. 불안정하게 좌충우돌 걸어갈지라도, 그 길의 끝 어딘가에서 난 오늘처럼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한 발을 떼고 적극적으로 그 선線을 넘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