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입사를 하고 연수를 마치면 정식 발령을 받게 된다. 동기들은 명령난 곳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나를 포함한 동기 다섯 명은 같은 관리소로 가게 됐다. 관리소에 가면 다시 '역'으로 발령을 받는다.
흥분과 긴장된 마음을 가지고 신삥 다섯 명은 관리소에 들어갔다.
관리소에서 가장 높은 '소장'님과 간단히 티타임을 나눴다.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선배들 말 잘 듣고 적응 잘하라는 말씀을 하셨던 거 같다. 소장실을 나와서 관리소 구석에 앉아 있었다. 관리소 선배 직원들은 각자의 역할에 맞게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를 신경 쓸 시간이 없어 보였다.
동기 다섯 명은 구석에서 재잘재잘 조용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관리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헤어스타일은 스포츠머리를 했고, 눈은 퀭하고, 까칠까칠한 얼굴에 수염도 자르지 않아 보였다. 복장은
근무복이 아닌 등산복에 조끼를 입고 있었다. 조끼에는 명찰이 달려있었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XX관리소 대의원 XXX'
들어오자마자 우리와 눈을 마주친 후 의자를 가지고 우리 앞에 앉았다.
"환영합니다!(목소리가 남자다웠다. 아.. 남자였지ㅋ)"
"네.... 안녕하세요...."
"저는 대의원 XXX입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겁니다."
"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주시면 노동조합이 나서주겠습니다."
"네..."
모든 조합 간부들이 그 분과 같은 줄 알았다. 조합 간부는 소장과도 역장과도 당당한 자세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감정은 '깡패인가?' '저런 걸 하는 직원은 어떤 사람일까?'라고 생각했다. 이후 현장에서 조합간부들을 만나는 계기가 많아졌다. 나도 6호선에 가서 첫 '대의원'을 하게 된다.
매년 그랬다. 12월 노사협상을 두고 여러 번 모여서 투쟁을 외쳤다. 선배들이 그랬기에 나는 따랐다.
학생운동에도 가담해 보지 않은 내가 이곳에 입사해서 추운 날 투쟁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투쟁 역사는 깊다. 아니 파업의 역사라고 해야 맞겠다. 그래서 승객들에게 미움을 많이 받았다.
"아니 다들 어려워 죽겠는데 왜 파업을 해요?"
"이것들 다 잘라 버려야 해!"
"이것들 빨갱이 아니야?"
"적당히 하세요."
외부에서 보는 시각은 대체로 위와 같다. 지하로 들어오기 전 나도 그랬다. 관심도 없었지만 간혹 뉴스로 접할 수 있었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마이크를 잡고 있는 모습들. 여럿이 모여 같은 구호를 외치는 모습들.
무관심 속에 애처로워 보였다.
선배들은 파업을 '축제'라고 말했다. 파업이 들어가기 전 전야제를 한다. 한 곳에 모여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전우? 들을 만나서 회포를 푼다. 물론 참여하지 않는 직원도 있다고 했다. 다수가 참여하는 파업에 사무실을 지키는 직원들을 미움을 받는다고 한다.
개인의 힘은 약하다. 얼마나 약하면 노동 3권(단결권, 단체행동권, 단체교섭권)을 주었을까. 선배들의 희생과 투쟁이 있어기에 내가 누리는 업무 환경과 복지가 개선됐다고 생각한다.
파업을 해도 예전같이 지하철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필수유지 사업장'으로 지정되면서 열차 운행 횟수는 줄어도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운행은 된다. 지금은 마스네틱 표가 아닌 카드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파업기간에도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노조 결속력도 약해졌다. 그동안의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신뢰감을 잃어갔다. 무노조원은 늘어갔다. 노조도 무려 세 개나 된다. 각 노조가 선명성을 띠고 나왔지만 탐탁지 않다. 오랫동안 노조간부를 해왔던 사람들도 기득권이 돼 버렸다. 그래서 제때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했다.
난 이곳에 소속된 조합원은 아니다. 하지만 후배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쉽지 않은 길에 그들의 시간과 용기를 내서 조합을 만들었다. 아직도 굳은 머리와 마음으로 조합을 하는 선배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MZ노조가 힘을 얻어야 한다. 꾸준히 얻고 있다. 선배들의 과오를 답습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