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힘!

역장님은 부자.

by 코와붕가

은행 수납.


오전 9시 출근을 하면, 우선 금고 금액과 출납부를 맞춰봅니다.

그런 다음 전날 수입금을 챙겨서 가방에 넣습니다.

역장이나 부역장이 수입금 가방을 가지고 은행에 갑니다.

이때 공익요원을 같이 데려갑니다.(안전을 위해서죠.)

공익요원이 없으면 직원이 같이 갑니다.


"500원은 안 받습니다."


지난번에 올린 '주식반'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대게 역장보다 부역장이 은행을 다녀옵니다. 그날에 공익요원이 없어서 제가 동행했습니다.

부역장은 수입금 가방을 손에 들고 갑니다. 저는 500원이 2,000개 들어있는 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갔습니다. 2000년도에는 동전이 많이 생겨서 수입금을 동전으로 가져갔습니다.


은행에 가기까지 거리는 얼추 300m 정도 됐네요.

도착하면 번호표를 뽑거나 아니면 바로 창구에 갑니다.

은행별로 지점별로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부역장은 수입금 가방에서 지폐를 꺼내서 주었고, 저는 무거운 동전자루를 건넸습니다.

은행 직원의 표정은 다른 고객들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바빠 죽겠는데 동전까지 세라는 거야?'표정이었습니다.

이해합니다. 은행원들도 실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걸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직원들이 카드도 만들어주고, 음료수도 드렸습니다.


은행원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돈과 동전을 세고 있었습니다.

저희도 승객들을 다루는 서비스업이다 보니 표정을 보면 어느 정도 압니다.

저와 부역장이 앉아서 사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양복을 말끔하게 입은 과장? 차장? 분이 오셔서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저기, 지하철에서 오셨죠?"

"네."

"죄송하지만 되도록이면 동전은 안 가져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우리도 동전을 가지고 오기가 힘듭니다. 300m를 걸어서 옮니다."

"우리도 동전 보관하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가득 차서 더 이상 받기가 힘듭니다."

"(부역장과 나는 씩씩대며) 아니, 동전은 돈 아닙니까!"


그는 누군가 찾는다며 찬바람을 일의 키며 자리로 돌아갔다.

황당하고 굴욕적인 감정을 느꼈다.


그(역장)가 나서다.


당시 우리 역 역장은 다른 역장과는 다르게 전혀 권위적이지 않았다. 항상 호칭도 님을 붙여주셨다.

밥을 얻어먹지도 않았지만 사지도 않았다. 깔끔했다(^^). 조용히 출근하셨다가 조용히 퇴근하는 분이셨다.

책상에는 업무와 관련 없는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나 볼만한 지도들이 많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건물도 있다고 했다.

가끔 서울에 있는 동네 이야기가 나오면 모르는 곳이 없었다.


우리가 은행에 다녀와서 역장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역장은 고개만 끄덕일 뿐 표정에 변화가 일지 않았다.

설명을 다 듣고 난 후 역장은 한 마디를 던졌다.


"내일 저와 같이 갑시다."


역장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해 봤다.

짧은 생각으로'음료수 한 상자 들고 가서 부탁하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자본주의의 힘!


역장과 나는 수입금을 챙겨서 갔다. 그날은 오백 원 자루가 무려 두 자루였다.(컥)

은행에 도착해서 역장은 창구에 가더니 수입급 가방을 내밀지 않고 '통장'을 내밀었다.


"이 돈 500원으로 바꿔 주세요."

"네?.........."


은행 여직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통장을 건네받고 금액을 확인한 후 다른 곳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잠시 후, 처음 보는 지점장이 빠른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휴.. 역장님, 무슨 일이세요?"

"(강렬한 눈빛을 발산하며) 지점장님, 500원으로 바꿔주세요.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합니다."

"무슨 이유로 그러십니까. 커피라도 한 잔 하시면서 얘기하시죠."


나는 역장을 따라서 처음으로 귀빈 접대실로 갔다.

역장은 지점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지점장은 대신 사과를 하고 없었던 일로 돌아갔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돌아가는데 거기서 역장 계좌에 얼마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지점장이 뛰어와서 역장 통장을 건네주었다.

거기서 난 처음으로 '10억'이라는 숫자를 보았다.

지금이야 아파트 평균 가격이 10억이 넘지만 당시에는 '억'이라는 숫자는 매우 커 보였다.

그리고 보니 역장이 가장 예민할 때가 있었다.

건물 세입자한테 월세가 제때 안 들어오면 목소리가 커졌었다.


역장에게는 아들이 한 명 있었다. 내가 저분의 아들이었으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도 해봤다.

누구는 며느리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당시에는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고 조기 은퇴를 꿈꾸던 시기였다. 현실에 있는 부자아빠를 보았다.

그리고 돈을 도구로 사용해서 당당함을 보였다. 지금도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여기 있는 돈 모두 500원으로 바꿔주세요."

만약에 진짜로 10억을 500원으로 바꿔 주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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