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닦아야 한다.
인간군상
하루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수십만 명이다.
그리고 지하철은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표적인 교통수단이다.
이렇게 역에서 근무하다 보면 여러 사람들과 마주친다.
우리나라 정치가 어쩌니 저쩌니 고래고래 소리치는 할아버지.
스티로폼 십자가를 메고 가며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다시금 알려주는 종교인.
세금만 받아먹고 똑바로 일 안 한다고 다그치는 취객 아저씨.
아이를 잃어버려 찾아달라고 갈급히 애원하는 아주머니.
역사 곳곳을 살피며 민원을 넣고 다니는 JS(진상)
위에서 나열한 승객들 말고도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4, 6호선 S역
입사 5년 차가 지나고 슬슬 지하생활에 적응돼 가고 있던 시절이었다. 야간근무를 마쳐갈 무렵, 시간은 오전 8시 40분을 향하고 있었다. 9시가 퇴근이기에 이쯤 되면 퇴근하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주간 근무반 입사 동기가 출근을 했다. 곧 교대를 오면 업무 인수인계를 핑계 삼아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었을 것이다.
조용한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린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S역 xxx입니다.”
“저.. 제가... 응가가.. 하고.. 싶은... 데”
(이게 무슨 소린가!!)
“네?? 다시 천천천 말씀해 주세요.”
(점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저.. 좀... 도... 와... 주시... 면..”
말투만 듣고도 장애를 가진 승객이란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가끔 지체장애를 가진 분들이 용무가 급해서 직원이 동행해서 화장실에 같이 가서 바지를 내려주고 올려주는 일을 가~끔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였다.
“어디세요?”
“4.. 호... 선... 환... 승... 통... 로요...”
“예. 도와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난 매표 중이어서 때마침 옆에 있던 주간반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빠릿빠릿한 그 선배는 그곳으로 달려갔다.
10분이 지났을까,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XX 씨 빨리 박스하고 휴지 가지고 오세요”
난 동기와 교대하고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박스와 휴지를 얻어 헐레벌떡 환승통로로 향했다.
환승통로 후미진 구석에 이미 장애를 가진 승객은 누워 있었다. 옆으로 지나가는 승객들은 이 광경이 불쾌한지 황당한지 보자마자 고개를 돌린다. 이 승객은 화장실을 가진 못할 정도로 급했던 것이다. 휴지를 선배에게 건넸고 박스를 잘라 임시 테두리를 쳤다. 잠깐, 여기서 같이 있던 선배를 소개하겠다. 선배는 지하철 공사에 입사하기 전에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들었다. 배도 타보고 사업도 해본 사람이었다. 그러했기에 순간 판단력이 빨랐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걸 알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이 조금이라도 불쾌한 표현을 드러내면 장애를 가진 승객에게 상처를 줄 수 있었다. 선배는 아기를 다루는 것처럼 능수능란하게 일?을 처리했다. 난 뒤돌아서 승객들이 이곳을 보지 않도록 다른 곳으로 유도했다.
일 처리를 깔끔? 하게 마치고 우리의 서비스를 받은 승객은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갔다. 나는 이제 편안하게 열차를 이용하라고 당부를 하며 보내 드렸다. 선배와 나는 남은 뒤처리를 했다. 당시 한 겨울이었는데도 선배와 나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었다. 우리가 일을 처리하고 있을 때 사무실에 민원전화가 쏟아지고 있었다고 한다. 대합실과 승강장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너무도 불쾌하다며 빨리 조치해 달라는 전화였다. 사실 우리는 일을 처리하는 동안 냄새는 신경도 안 쓰였다. 이 상황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선배와 깔끔하게 닦는 미션을 해결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 과정을 지켜보았던 우리 반 부역장은 본사에 상황보고를 올렸다. 몇 달이 흘렀을까. 그 일을 처리했던 선배는 사장 표창을 받았고 그해 우수직원으로 선정돼서 해외여행까지 다녀왔다.
그렇다면 나 어떻게 됐을까??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하하하
그래도 좋은 경험을 한 경험 덕분에 이렇게 글로 남긴다. 상은 못 받았어도 몸이 불편한 승객을 도왔다는 뿌듯함은 상장과 다름없었다.(솔직히 조금 아쉽다 -.-;)
다시 한번, 내가 입고 있는 근무복이 얼마나 커다란 책임감을 주는지 깨달았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때는 정말 직원 같았다.
코와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