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매너리즘을 극복하는 법 2

모래시계를 기억하시나요?

by 코와붕가

마흔에 다시 온 매너리즘.


근무년수에 맞게 직급과 직책도 바뀌었다. '5급' 그리고 '과장'을 달고 회사문서만 봐도 어느 정도 감을 잡는 시기가 됐다. 윗사람과 적당한 신뢰관계를 갖고 근평기간에는 열심하는 척 보이려 노력한다. 모든 업무의 중심에서 나를 내세운다. 마치 내가 한 것처럼... 난 처음부터 이러지 않았다. 선배들 뒷모습을 보면서 배웠다.


노조와 사측에 적당한 줄타기를 한다. 책임질 일은 최대한 가까이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디서도 개인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만 보게 됐다. 새로운 사람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회사 내에서 어디로도 쏠리지 않는 평범하지만 괜찮은 직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30대, 3년여를 동행했던 복싱은 접었다. 급격한 체중감량(주변에서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였음.)과 부상이었다. 1,2년 차가 되면서 자주 스파링을 하게 됐다. 스파링 상대는 내 체급과 맞지 않았다. 대부분 상위 체급이었다. 잘 피하다가도 한 방 맞으면 충격이 컸다. 처음으로 갈비에 금이 가면서 글러브를 벗게 됐다.


공익요원이 보여준 화면.


사무실 한편에서 공익요원이 노트북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내가 물었다.


"뭐 하냐?"

"검도 영상 보고 있습니다. 제가 검도 동아리에 있거든요."

"그래? 재밌냐? 점수는 어떻게 얻냐? 누가 이긴 거냐?"등등 여러 가지를 물었다.


화면에는 도복과 호구를 착용한 사내들이 죽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내 눈에는 누가 먼저 치고 이긴 건지 알 수 없었다. 딱히 재밌어 보이지도 않았다. 검도가 저렇게 하는구나 생각하며 잊고 있었다.


다시 연말 그리고 검도관.


회사에서는 체력단련비가 지원됐다. 복싱을 그만둔 후 몇 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연말(난 이때 동기부여가 되나 보다.)이 되면서 뭔가를 배우고 싶어졌다. 검도는 전혀 생각이 없었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길거리를 걸었다. 이때 건물 위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머리!"

"손목!"

"허리!"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XX검도관'이 보였다.

난 식구들을 보내고 바로 검도관으로 올라갔다. 저녁이라 중고등 학생들이 수련을 하고 있었다.

여자 사범이 맞아 주었다. 사범은 내가 배우려는 생각보다 학부모로 왔나 보다고 생각했다.

복싱때와 마찬가지로 상담은 짧게 하고, 바로 1년을 결제했다.(내가 바로 지르는 면이 있다.)


도복을 입다.


도복은 속옷도 벗고 입어야 했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난 저녁출근을 하는 날에는 초등학교 아이들과 같이 수련을 했다. '유치원에 간 사나이'를 촬영하는 기분이었다. 복싱의 경험이 기본기를 익히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사실 운동의 시작은 기본기다. 기본기를 잘 익혀야 자세도 좋고 부상도 적다. 그런데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본기가 참 재미없다. 매일 똑같은 자세를 수개월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 3개월을 버티지 못한다.


손바닥과 발바닥이 벗겨지고 회복되고를 반복하면서 자랑스러운 굳은살이 생겼다. 수련 2개월이 되자 사범님은 승급심사를 보자고 했다. 성인은 5급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검도 생활생활은 지금의 유단자로 나를 만들어줬다. 선배관원들과 시합도 출전했다.


검도의 맛.


검도는 예의를 중요시한다. 도장에 들어가고 나올 때까지 예법이 있다. 본인의 단수에 맞게 줄을 선다. 답답한 호구도 순서대로 벗어야 한다. 검도가 나를 다시 막내로 보내버렸다. 호구는 대게 3개월 차부터 맞춘다. 여기서 검도를 계속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호구값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몸을 풀고 기본기를 한 후 호구를 착용한다. 난 이때가 제일 좋았다. 호구를 하나씩 착용할 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호면(머리에 쓰는 것.)을 착용하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 마치 '사무라이'를 연상케 한다.


상대방과의 대련시간이 오면 기장된다. 죽도를 진검이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상대방의 죽도와 내 죽도를 겨누며 기싸움을 펼친다.


'먼저 칠까'

'머리를? 손목을? 아니야 내가 받아서 허리를 치자.'


다양한 생각들이 찰나의 순간을 만든다. 고단자들은 빈틈을 파고들며 빠르고 정확하게 부위를 때린다.

기세가 중요하다. 뒤로 물러나지 않는 자세와 풍모를 갖추어야 했다. 관장님은 대련 시에 커다란 거인처럼 보였다. 칼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모든 수련을 마치면 순서대로 호면을 벗고 묵상을 한다. 올라왔던 기운을 차분하게 내려앉힌다. 그리고 생각한다. 오늘 내 칼이 어떠했는지 반성한다.


회사에서도 쉴 때마다 비닐우산우로 연습을 했다. 부러뜨린 우산이 여러 개 된다. 언제부턴가 나도 일본 검도 선수들의 영상을 찾아보게 됐다. 검도를 나에게 보여주었던 공익요원을 제대를 했다. 내가 첫 승급을 하고 녀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첫 승급했다."

"축하드립니다. 언제 한 번 칼 한번 나누시죠."


검도인들은 이런 식이다. 칼로 대화를 한다고 한다.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몸을 움직이고 단련하다 보니 회사생활에 활력을 얻게 됐다. 독서와 운동은 시간을 버는 길이라고 한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다. 놀고 있는 새 죽도들이 보면 당장이라도 검도관에 등록하고 싶어 진다.

30대와 40대를 지탱해 준 복싱과 검도가 날 일으켜 세워줬다.


여러분도 더 늦기 전에 아니 후회하기 전에 배워보세요.

잠시 모래시계 이정재처럼 변신하는 것도 좋습니다.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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