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런 사람 있죠?

아픈 이름 완성이 형.

by 코와붕가

첫 만남.


그를 만난 곳은 내 명찰이 두 번이나 누군가에게 부러뜨려졌던 곳이다.

그를 만난 곳은 셔터를 열지 않아 공포의 외인구단에게 살해의 위험을 강하게 느낀 곳이다.

그를 2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험한 역에서 만났다.

나도 그도 2000년 사번이다. 하지만 그는 사연이 있다. 우리 회사에 97년에 시험을 보고 합격을 했지만, 하필 그때 IMF가 터지고 말았다. 동기중 일부만 채용되고 나머지는 2000년에 들어오게 됐다는 사연을 들었다.

즉, 어떻게 보면 선배이고(97 사번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큰 형이다.(나와 10살 차이가 났다.)


잘 들어주었던 형.


험한 역에서 근무하다 보면 여러 어려운 일을 겪다 보니 서로 돈독하게 된다. 아직도 이 역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모임이 있다. 주간에는 팔이 떨어져라 표를 팔았고, 밤에는 한 명씩 취객을 맡았다.

말이 잘 통하고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회사 내에서 그런 분을 만나는 건 커다란 행운이다.

그가 그랬다.


당시에 우리 조는 총 4명이었다. 부역장은 부역장대로, 바로 밑에 있는 선배는 우리 역 일꾼이었다. 매표를 들어올 시간이 부족했다. 내 위치에서는 바로 위가 중요했다. 내 자리를 함께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가 그랬다.


나도 5년 차가 되면서 매너리즘이 왔다. 회사에 대해 인간관계에 대해 조금은 눈이 떠졌다. 업무는 제법 익숙해졌다. 지폐를 감으로 잡아도 100장이 맞았다. 달인이 되어갔다. 이때 그가 우리 반으로 왔다.

첫인상은 이랬다. 반쯤 감긴 눈, 활짝 웃지 못하는 표정, 적당한 가르마, 어떤 민원이 와도 무심 경한 멘털을 소유했다. 그리고 그는 술을 잘했다.


회사 내에서 동기들을 제외하고 그와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언제든 한잔 하자고 하면 그는 빼지 않았다. 술 값도 그가 많이 계산해 주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얼마나 힘든지 요새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를 형이라 불렀다. 이곳저곳에서...


어느 날 들려온 소식.


우리는 근무 특성상 다른 곳으로 발령 나거나 근무조가 바뀌면 전에 친했어도 연락이 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와 형은 꾸준히 연락을 하면서 가끔 만났다. 내가 술을 먹고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형에게 전화를 했다. 형은 먼저 연락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날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데 형에게 전화가 왔다.


"XX야 잘 있냐?"

"모야, 형이 웬일이야? 우리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ㅋ"

"오늘 시간 있냐?"

"오늘은 마눌님이 저녁을 차려놔서 곤란한데? 다음에 안 될까?"

"짜식, 알았어. 다음에 보자."

"어. 담에 보자고.."


몇 달이 흘렀을까,

또 다른 친한 분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분은 나와 형의 사이를 잘 알고 있었다.


"XX 씨, 최근에 XX 씨하고 연락해?"

"몇 달 전에 보고 최근에는 못 봤죠."


그분은 얼마 전 그 형이 근무하는 역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고 말해줬다.

불미스러운 일의 주인공은 형이었다.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형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형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는 달랐다.

마치 다른 사람과 첫 통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부랴부랴 약속 날짜를 잡았다. 능력은 안 되지만 형을 도와주고 싶었다.


약속 날짜가 다가왔다. 형을 만나러 지하철 승강장까지 내려갔다.

형에게 전화가 왔다.


"XX야, 오늘 어렵겠다. 다음에 보자."

"왜? 형 커피라도 마시자."

"아니야, 다음에 보자."

"......."


이후 그는 휴직을 냈다. 정신적으로 아팠다. 그리고 복귀한 지 얼마 안 돼서 퇴직을 했다.

나도 아팠다.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형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내가 알고 있는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돼서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형은 본인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 시절에는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기색이었다. 그래도 새로운 사람과 만나면서 회복해 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형이 나에게 먼저 전화해 주었을 때 달려갔어야 했다. 너무도 미안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내가 들어줄 차례였다. 나를 자책했다. 그 형은 이제 회사에 없다.


형이 퇴사한 후 가끔 안부전화를 해본다. 형은 병원에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꾸준히 약을 먹으면서 산에 다닌다고 한다. 보자고 해도 다음에... 또 다음에... 를 반복한다.


"오늘 형이 무척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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