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와붕가 Dec 04. 2023

파업은 끝났다. 하지만...

동기(친구)를 잃을 뻔했다.

시작 전에도 후에도 시끄럽다.


파업은 그렇다. 노조는 직원들에게 관심을 선점하기 위해 '구조조정'이라는 용어로 불안을 야기시킨다. 커다란 포스터를 사무실에 부착한다. 붉은 바탕에 띠 두른 노동자가 움켜 쥔 주먹이 이곳이 어디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사내 게시판에서는 1 노조 2 노조 3 노조가 키보드로 다투고 있다. 아무래도 키보드를 잘 다루는 3 노조가 유리해 보였다. 저마다의 명분을 내세운다. 이것을 위해 저것을 위해 파업을 해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다른 편에서는 상위 노총의 선봉대가 아닌 직원들의 권익을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은 서로가 다른 노조여도 서로를 비판하지 않는다. 노조는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평화롭게 적당선에서 합의를 보기를 원한다. 임금으로 다투던 시절은 사라졌다. 파업도 지난번 글에서 말했다시피 '필수유지 사업장'으로 분류돼서 전부 참여할 수도 없게 됐다. 


MB시절 들여온 복수노조 정책은 한 회사에 여러 노조를 만들게 했다. 힘은 분산됐고, 선거를 해도 새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경선이 없는 단독후보가 대부분이다. 할 사람이 없다고 나오는 조합 간부들의 말을 들을 때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파업이 끝났다.


희미한 1차 경고 파업(파업이 파업이지. 경고 파업이란 말은 또 무슨 말인가)을 종료하고 사측과 합의를 봤다.

사측 안에서 달라진 점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러려고 파업을 했는가라는 글들이 사내 게시판에 쏟아졌다.


2년 연속 파업이라는 대업을 이루었다. '라'등급으로 떨어진 기관 평가급이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파업이 평가 요소에는 없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의심스럽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돼 버렸다.


동기를 잃을 뻔했다.


같은 대학 친구이자 입사 동기가 노조 간부로 미약하게 활동하고 있다. 노조 성향에 맞이 않는 친구다. 이 친구가 노조간부를 한다는 사실을 소식지에 나온 사진을 보고 알게 됐다. 바로 연락을 취했다. 안부를 전하면서 격려보다 선을 지키라는 말을 전했다. 무리하게 노조 일을 하다 보면 회사와 가정에 소홀하게 된다. 주변에서 그런 직원을 많이 보았다. 여러 가지로 우려 됐다.


친한 동기 5명이 있는 카톡방이 있다. 합의서를 본 동기들은 노조 간부를 맡고 있는 친구에게 질문을 했다.


동기 1: 길식아 이번 합의사항 얻어낸 거 있냐?


동기 2: 길식아, 수고했다. 그렇데 바뀐 거 있나?


동기 1: '노력한다'는 문구뿐이네.


동기 2: 아.. 노~오~력.

이때 길식이가 등장했다.


길식이: 드문드문 연락하는 사이지만 너희들까지 이렇게 내 욕을 할 줄 몰랐다. 

그리고 방에서 퇴장했다.


동기 3:?


동기 1: (길식이를 다시 방에 초대했다.) 어디를 나가! 우리 길식이~


길식이: 다른 노조 넘들이 욕해도 복잡한데 그러지 말아라. 

           니들끼리 뒤에서 욕하든 말든 해라. 한 번 더 초대하면 차단할 테니 부르지 마라.


동기 4:  이 넘 노조하더니 성격 버렸네. ㅉ ㅉ. 우리가 뭐라고 했길래 저러냐.


우리 단체방은 대학 때부터 알던 사이라 낯 뜨거운 말보다 놀림과 농담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모두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난 다음날 아침 길식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식이가 전화를 받아줘서 고마웠다. 길식이는 2년여 조합 간부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다. 본인도 만족스럽지 않은 합의서를 보고 실망했다고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 친구들의 말이 상처가 됐다고 했다. 이번을 끝으로 노조를 그만두겠다는 생각도 밝혔다. 


나는 길식이의 말을 100% 이해할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공감을 했다. 왜? 나 또한 조합간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칭찬보다 들을 욕이 많았던 시절. 내가 갖고 있던 에너지 총량이 바닥을 향하던 시절이었다.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내가 힘들어서 나왔다.


며칠뒤 단체방 동기들과 조촐한 송년회를 가진다. 노조 이야기는 뒤로하자. 지금까지 버텨온 회사생활을 축하하자.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 하자. 그런데 혹시나 길식이가 노조 이야기를 꺼낸다면..........

그냥 소주 한 잔 따라주며  "수고했다"라고 전해주자.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노조를 떠나면 웃으면서 하자꾸나.


"내 친구 길식아.. 우리 같이 가자."






작가의 이전글 파마는 날 띄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