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않음의 맛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다. 난 항상 그래왔다.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인가. 존재라고 함에 흐름 타고 간다면, 그 행 변화 막을 수는 없는 것이라. 그리 생각했다. 사람의 피부는 생기를 잃어 간다. 나무의 피부는 갈라져 간다. 하지만, 여전히 오늘 하늘은 파란가. 오늘 나는, 파란 하늘 같은 맛을 느꼈다. 12년 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스모스시에서.
약 10년 전, 이 가게를 처음 방문했다. 아버지 손 이끌려 처음 방문한 스모스시. 당시엔 손님이 참 많았다. 웨이팅 두 팀 거치고. 비좁은 가게. 초밥 정식. 연어 초밥, 광어 초밥, 새우 초밥. 그때의 내 입맛은 새우 초밥을 좋아라 했다. 아버지는, 연신 감탄 하시면서. ‘이 집은 뭘 좀 안다.‘ 그리 얘기 하셨다. 장국엔 토로로. 충격적인 한 끼. 난 아버지 손 없이 스모스시를 재차 방문하게 된다.
그 후로 1년. 폐인 생활을 하던 나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고. 생전 처음 겪는 일에. 그녀는 독일 사람. 돈이 필요했던 나는, 불안정한 마음 다 잡아. 알바몬을 켜게 된다. 상하차는 하기 싫다. 뭐는 하기 싫다. 말이 많았다. 힘든 일을 하기 싫었음은 나 마찬가지였으라. 그 정도야, 당연하겠거니. 그러던 와중, 스모스시라는 이름의 초밥집 공고를 보게 된다. 당시 가게 이름을 몰랐던 나는 왠지 모르게 이끌리듯 그곳에 이력서를 넣게 된다. 그 가게의 이름이 스모스시라는걸, 면접을 갔을 때에야 처음으로 알았다.
시작하게 된 서빙 알바는, 다음 날 출근이 무서워질 정도로 힘들었다. 출근 전부터 이미 웨이팅 줄이 있을 정도로 가게는 분주했고, 당시 운동도 무엇도 하지 않았던 내겐 감당하기 힘든 업무량이었다. 일머리도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던 나였지만, 하나 둘 적응해 가며 사람들과의 호흡을 맞춰 나갔다. 성장한다. 좋은 사람, 좋은 음식이 나 이 자리에 머물게 하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사장님들에게 뻔뻔하게 굴기 시작했던 거는. 지금도 그러고 있으니, 여러모로 나의 초석이 되어 준 가게이리라. 그릇을 깨도 웃는다. 배웠다.
가끔 손님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출근 시간이 오픈 후 30분이었다는 점을 이용해서, 오픈 시간 맞춰 방문하고, 식사 후에 출근을 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했었다. 그렇게 해서 방문을 하면, 당시 주방을 지키고 있던 형들이 내게 말했다. ‘또냐? ㅋㅋ’ 워낙 스모스시의 맛을 좋아했던 나는 훔쳐 먹기 바쁜 사람이었다. 그럴 때마다 형들은 정식 위에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하나 더 얹어주시고. 식사를 하지 못하고 출근 한 날에는, 남은 횟거리와 샤리를 덮밥 형태로 만들어 나의 끼니를 챙겨주셨다. ‘밥은 먹고 다녀야지 이것아.‘ 애정어린 투덜거림처럼 들렸다.
일을 사정 때문에 그만두게 되고. 독일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군대를 다녀오고. 여러 깨달음에 대해 논하고. 그 사이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가. 무엇이 날 이렇게나 바쁘게 했는지. 무엇이 날 살아가게 했는지. 시간은 기다리지 않는다. 의문이다. 시간의 성격은 의문이다. 그 시절의 난 이미 다른 사람이 되었는가. 물어도 알 수 없었다. 기억만이 나의 증거이라.
자전거 타 옛날 동네를 거닐 때가 많다. 내가 웃었던 곳. 울었던 곳. 싸웠던 곳. 곳에 기억 잔상 남아있나. 날씨 좋으니 자전거를 탈 맛이 나, 바람 따라 기억 거슬러 간다. 시간 흘러간다. 살아가는 사람의 얼굴은 바뀌고, 학생이었던 내가 거닐던 거리는, 이젠 내게 너무 작다. 여기서 그 여자애를 바라봤던 게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애는 이제 없다. 놀이터에 깔려 있던 모래는 어느새 사라졌고, 처음 보는 횡단보도 생겨나 걸음 멈춰야 했다. 일산은 변하지 않는가, 싶었지만. 주름 쌓임 보인다. 이곳도, 세월 흐름을 막진 못했나. 야속하다.
왜. 스모스시를 방문했는지 묻지 않았으면 한다. 그저 바람이 얘기했을 뿐이니. 자전거를 타고 배회하던 중에 우연치 않게 그곳을 지났을 뿐이다. 그리고,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났을 뿐이다. 가게의 외관은 여전했다. 내부 또한, 여전했다.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동네 사람들이 간간이 방문해 주시는 것 같았다. 메뉴판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초밥 정식이 10000원이었는데. 지금은 15000원이구나. 세월은 숫자에만 묻었나보다. 주방에 있던 형들도 이젠 없다. 그곳에는 사장님으로 보이시는 분 한 분만이 계셨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10년 만에 시킨 초밥 정식. 우동과 모밀을 선택해야 하는데, 난 냉모밀을 좋아한다. 연어 초밥, 광어 초밥, 소고기, 생새우. 참치 초밥이 추가되고 다른 하나 빠졌나. 판도 그대로, 세팅 방법도 그대로. 광어의 선도, 연어의 크기, 샤리의 간, 뭐 하나. 정말 뭐 하나. 바뀐 것이 없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옛 혀의 맛을 상기하게 된다. 그랬었지. 난 이 맛을 느꼈었고, 이것을 너무나 좋아했다. 이 맛이 그때 내 맛이었다. 내 안 어딘가 10년 전 나있으라. 세월이 지났구나. 하지만, 여전한 것도 있으니. 참된 나 기억 쌓임의 탑이오. 그 층위 불 지피고 어린 나를 깨웠는가. 잊고 있었나. 잊고 있었다. 그 또한 나였음을.
변하지 않는 것에는 불만을 가진다. 그것은, 아직도 그러하다. 흐름에 맞춰 춤을 추지 않는 이를 존중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각해 본다. 우리 지고 변하는 존재인가. 세월 맞아 태 옮기던 나를, 나 아님이라 할 수 있는가. 변화는 필연인가. 혹은, 허상인가. 확인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확실한 것 있으니. 나에게 스모스시의 변치않음은, 울림이었다. 그 맛은 나에게 향수였고, 상기였으며. 역사이고, 초석이다. 내 삶 한줌 기억 의존해, 있음을 증명해야만 했던 나에게, 변치않음의 맛은 나 살아온 길을 보여주었다. 그 맛은, 내 여정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난 살아왔구나. 증거, 증명이라.
앞으로도 많은 일들을 겪게 되겠지. 아마, 지금의 수난도, 난세도. 어느 순간에는 과거 되어, 미래의 난 웃고 있으리. 그것은 변화이고, 잊어 가는 것도 많겠지. 변하겠지, 여전하게. 하지만 분명, 난 그대로 일 것이라. 스모스시처럼. 어느 시간은 여전히 거기 있으라. 내 안 작은 나. 그 소년처럼. 변치 않고 머무는 무언가는 거기 있으라. 그 한줌 퇴적 믿고 나를 앞으로 이끈다. 흔듦에 허리 굽히지 않고, 눈은 빛난다. 다시 믿고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