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를 넘기면 또 다시 새로운 가난이다
그 빈 페이지에 떨어진 열매 하나가
한강에 지는 노을처럼 붉었고
우는 엄마의 얼굴은 희고 희었다
언덕 위에 올라서면
숨이 찬게 아니라 가슴이 턱턱 막혔다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운 것은
내 한숨과 닮은 어떤 것들
비가 오면
골목을 채운 가난이 집 안으로 들이쳤다
들이치는 가난을 막아내려는
아버지의 등이 까맣다
어느 봄밤, 침묵처럼 무거운 가난이
골목을 덮었다
다시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 넘어가지 않기 위해
고통에 무릎 꿇지 않기 위해
한 뼘 짜리 연못에도 꽃이 핀다고 했다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는
젖은 자욱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