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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Feb 09. 2023

한 장의 가난

한 페이지를 넘기면 또 다시 새로운 가난이다

그 빈 페이지에 떨어진 열매 하나가 

한강에 지는 노을처럼 붉었고

우는 엄마의 얼굴은 희고 희었다


언덕 위에 올라서면

숨이 찬게 아니라 가슴이 턱턱 막혔다

좁은 골목을 가득 채운 것은

내 한숨과 닮은 어떤 것들


비가 오면

골목을 채운 가난이 집 안으로 들이쳤다

들이치는 가난을 막아내려는

아버지의 등이 까맣다


어느 봄밤, 침묵처럼 무거운 가난이

골목을 덮었다

다시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 넘어가지 않기 위해

고통에 무릎 꿇지 않기 위해


한 뼘 짜리 연못에도 꽃이 핀다고 했다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는

젖은 자욱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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