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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Mar 07. 2020

사랑의 임계점에 대하여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보고



평생을 한 사람만 사랑한다는 약속은 가능한 것일까. 열렬히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해서 사랑의 임계점이 지나면 사람들은 정으로 산다고 고백한다. 난 그 정이 필요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끝나는 순간 필요라는 길에 접어들고, 그 이후의 사랑은 거짓말일 뿐이다. 나의 시니컬한 이론에 관한 또 다른 사례가 바로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이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스티븐 호킹과 그의 아내 제인 와일드 호킹의 삶을 다룬 영화다. 스티븐 호킹은 모든 것을 단 한줄로 설명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아름다운' 공식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하지만 그 여정은 순탄치 않다. 스티븐 호킹의 여정을 가로 막은 가장 큰 벽은 루게릭 병이었다. 루게릭병은 근육이 딱딱해지고 경련을 일으키며 결국 무의식적인 호흡이 어려워지면서 사망에 이른다. 루게릭병에 걸린 대부분의 환자들은 2~3년내에 목숨을 잃는다. 치명적인 치사율보다 더 큰 비극은 죽는 순간까지 환자의 의식과 오감은 정상이라는 점이다. 


제인 와일드 호킹은 루게릭 병에 걸린 스티븐 호킹을 평생의 동반자로 선택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는다. 제인 와일드 호킹은 스티븐 호킹을 선택하면서 자신의 삶을 포기했다. 아이들과 스티븐 호킹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호킹의 루게릭 병은 점점 더 심해졌고, 숨을 쉬는 것도 곤란해져 목숨을 건 수술을 해야했다. 제인 와일드 호킹은 스티븐 호킹의 목숨을 건 도박을 성공시킨다. 스티븐 호킹은 생명을 얻었지만 기관지 절제술로 목소리를 잃었다. 스티븐 호킹은 얼굴의 움직임과 눈의 깜빡임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했다. 


스티븐 호킹이 목소리를 잃는 순간부터 스티븐 호킹에서 제인 와일드 호킹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제인 와일드 호킹은 스스로 선택한 삶 속에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간다. 성가대 선생님 조나단 존스를 만난다. 조나단 존스는 제인 와일드 호킹에 대한 사랑으로 스티븐 호킹과 그의 자식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스티븐 호킹과 조나단 존스와 제인 와일드 호킹은 비정상적인 결합으로 정상적인 가정으로서 '기능'한다. 


세 사람의 비정상적인 관계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제인 와일드 호킹은 또 다른 아이를 임신한다. 그리고 그 아이의 존재는 세 사람의 관계를 파국으로 이끈다. 조나단 존스는 제인 와일도 호킹을 위해 떠나고, 제인 와일드 호킹은 떠나는 그를 바라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새로운 간호사 일레이 메이슨을 남은 인생의 새로운 동반자로 선택하고, 두 사람은 이혼한다. 그리고 제인 와일드 호킹은 조나단 존스와 재혼을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쉽게 종말을 맞이한다. 


영화는 여기서 끝이 나지만 서글픈 진실이 하나 숨어있다. 일레이 메이슨은 상습적으로 그의 남편인 스티븐 호킹을 폭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스티븐 호킹은 끝까지 일레이 메이슨을 감쌌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역시 이혼으로 마무리 된다. 


다시 사랑과 필요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병에 걸린 순간 사랑하는 제인 와일드 호킹을 밀어낸다. 하지만 제인 와일드 호킹은 포기하지 않는다. 두 사림이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은 완벽한 사랑이었으며 필요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고, 제인 와일드 호킹은 지쳤다. 이 순간 제인 와일드 호킹은 스티븐 호킹마저 반대한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고,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가정과 연구를 이어오기 위해서 똑똑한 조수 이자 아내 제인 와일드 호킹이 필요했다. 제인 와일드 호킹의 희생이 더욱 커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 저울은 기울어지기 시작했고, 스티븐 호킹은 조나단 존스라는 추를 받아들여 다시 균형을 맞춘다.


조나단 존스가 떠나면서 스티븐 호킹과 제인 와일드 호킹 사이에 균형은 무너졌고, 스티븐 호킹은 다시 그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했다. 대신 그는 제인 와일드 호킹을 대신 할 사람을 찾는다. 사랑이 필요가 된 순간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긴 했지만 필요를 인정하고 서로의 균형을 다시 찾으려는 노력이 사랑이다. 그 노력을 포기하는 순간 사랑은 필요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필요를 넘어선 다시 사랑하는 것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어쩌면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p.s 이 영화의 제목은 '모든 것의 이론'에서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바뀌었다. 바뀐 제목에 대해 사랑과 모든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사랑은 일반화 할 수 없는 것이며 사랑만큼 개별적인 것들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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