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서브스턴스'를 보고
***이 리뷰에는 어마어마한 스포일러가 있음을 경고드립니다. 사실 저는 리뷰와 스포일러는 하나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몸뚱이는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아프면 아픈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버리지 못하고 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몸뚱이를 통해 얻는 쾌감은 잠깐이고 그를 유지하는 고통은 참 길다. 무엇보다 몸은 정직하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면 기분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아프다. 건강하게 지내는 것은 무척이나 귀찮고 힘들다. 깨끗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은 대부분 맛이 없다. 그것들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적응해야 하고, 운동은 말할 것도 없이 괴롭다.
건강의 필수 요소인 깊은 잠에 들기엔 재미있는 것도 즐길 것들도 할 일도 너무나 많다. 침대에 몸을 뉘이면 끊임없이 머릿속을 파고드는 생각들에서 해방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선택은 몸뚱이를 희생하는 방향으로 하기 마련이다. 지금 당장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늘 인간은 문제가 터지면 후회한다. 그게 인간의 본질이다.
'더 서브스턴스'는 한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명예의 거리까지 입성한 대스타였지만, 지금은 TV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한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50살이 되던 날,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에게서 “어리고 섹시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돌아가던 길에 차 사고로 병원에 실려간 엘리자베스는 매력적인 남성 간호사로부터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권유받는다. 한 번의 주사로 젊고 아름답고 완벽한 수(마가렛 퀄리)가로 '다시' 태어난다. 단 한 가지 규칙은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지킬 것. 엘리자베스는 이제 주사 한 방으로 7일간 수로 지내고 다른 7일은 엘리자베스로 지내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더 서브스턴스'는 여성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여성에서 출발해 삶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엘리자베스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외모가 변했다는 이유로 그의 본질은 철저하게 부정당한다. 엘리자베스의 선택은 '완벽한' 나를 위해 주사를 맞는 것이다. 얼굴도 몸매도 완벽한 수가 탄생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수는 어리고 섹시하다는 이유로 순식간에 엄청난 영광을 얻는다. 그의 본질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지만 모두가 수를 사랑한다.
수로 인해 얻는 기쁨이 커질수록 엘리자베스로 지내야 할 일주일은 지옥이 된다. 결국 수는 섹스를 위해 규칙을 어긴다. 쾌락은 달콤했지만 대가는 치명적이었다. 수가 즐긴 쾌락의 결과는 엘리자베스의 손가락이 썩어 들어간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썩은 손을 되돌리기 위해 서브스턴스에 전화를 건다. 하지만 서브스턴스는 규칙을 지키지 않아 생긴 피해는 복구되지 않으며 둘이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만 강조한다.
엘리자베스는 수와 자신을 분리한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수가 누리는 허울뿐인 영광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관심과 주목을 받을 때만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엘리자베스를 자연스럽게 희생양으로 정해버린다. 이 역시도 쾌락에 적셔진 엘리자베스의 잘못된 선택이다.
엘리자베스는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받고 싶은 사람도 조언해 주는 사람도 돌봐주는 사람도 없다. 간혹 청소부가 그의 집에 들르고, 짜증스러운 앞집 남자가 있을 뿐이다. 그의 인간관계는 일로 엮여있거나 그의 외모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뿐이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아름답다고 칭찬해 주는 과거 동창과의 만남도 외면한다. 수와 비교해 빛나지 않는 자신을 내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인간관계가 없는 엘리자베스는 수의 삶에 더 집착하게 되고 결국 엘리자베스는 극단적인 수를 쓰게 되고 엘리자베스는 점점 더 썩어만 간다.
엘리자베스와 수의 파국은 배고픔처럼 정확히 찾아온다. 수를 위해 희생할 엘리자베스가 점점 사라져 가게 된다. 수가 가장 빛나야 할 새해전야쇼를 앞두고 수는 죽을 위기에 처한다. 결국 수는 살기 위해 엘리자베스와 몸을 바꾸고 늙어서 괴물이 된 엘리자베스는 모든 것을 멈추고 싶어 한다. 엘리자베스는 수를 죽이고 더럽고 추악해진 자신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모든 것을 종료하는 주사를 결국 놓지 못한다. 엘리자베스는 수를 살리기 위해 다시 몸을 바꾼다. 그렇지만 결말은 결국 파국이다. 엘리자베스는 다시 살아난 수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한다.
수는 인생에서 가장 어리고 섹시한 모습으로 새해전야쇼 무대에 선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이미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수는 자신의 치아가 빠지는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몸이 무너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 금기를 어긴다. 폐기해야 하는 주사를 다시 놓고 끔찍한 모습으로 눈을 뜬다. 수는 끔찍한 몸을 이끌고 새해전야쇼 무대에 서고 끔찍한 모습을 본 관객은 그녀를 괴물이라고 욕하고 공격한다. 이젠 수라고도 엘리자베스라고도 칭할 수 없는 괴물은 명예의 거리에 있는 엘리자베스의 명판 위에서 청소된다.
'더 서브스턴스'의 미덕은 끝까지 간다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끝까지 가며, 영화를 본 관객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아름다운 여자의 삶과 그 삶에 대한 집착이 만든 파국을 통해서 '더 서브스턴스'는 현대사회에서 모두를 유혹하는 금지된 선에 대해서 경고한다. 너무나 달콤한 것은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 현대 사회에 만연한 사기의 본질에는 선을 넘겠다는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적어도 눈을 뗄 수 없는 전개와 충격적인 장면들을 통해 흥미진진한 주제를 펼쳐낸다. 몬스터가 된 엘리자베스라는 살인까지 저지른 수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신이 망가지면 어떤 모습도 의미 없는 것이다. 예쁜 모습이든 늙고 추한 모습이든 인간의 본질은 정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반짝반짝 빛나고 예쁜 몸을 묘사하거나 촬영하는 방식은 징그러울 정도다. 오로지 섹슈얼에만 집착하는 시선으로 찍는 카메라는 결국 아름 다고 예쁘다고 칭찬받는 몸매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를 자극한다.
결국 섹슈얼한 모든 것을 느끼는 것 역시 정신이다. 무엇이 아름답고 예쁜 것을 탐닉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것 역시 정신이다. 정신을 건강하게 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느끼는 기쁨 역시도 공허할 뿐이다. 내 지긋지긋한 몸뚱이의 본질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