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공포가 현실공포로 변하는 과정에 대하여

넷플릭스 '84제곱미터'를 보고

by 박아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있으시니 영화 감상 후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부동산은 자산이다. 자산이기 때문에 언제든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의 일부 아파트들은 끊임없이 우상향 함으로써 하락하지 않는 자산으로 인식 됐고, 내가 가진 서울의 아파트도 우상향 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계속해서 자산은 상승한다. 자산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정하고, 정부는 재건축을 막으면서 공급을 덜 하고, 그 결과 만족되지 못하는 수요는 계속해서 가격을 올려왔다.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자산을 늘릴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됐기 때문에 계속해서 오르는 것이고, 이 기회를 잡기 위해 영끌족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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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끌어서 올인한다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지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부동산을 좋은 가격에 잘 사기는 어렵다. 부동산을 구매하는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구매를 많이 하지 않아 본 어르신들이 '호갱'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대부분의 개인은 일생에 집을 사 볼 기회가 3~4번 정도일 것이다. 그중에서 처음으로 집을 살 때는 엄청난 혼란에 휩싸인다. 갚아야 할 이자와 기존 보유 자산이 오를 기회비용과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공포 그리고 나만 부동산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자격지심 등 수많은 심리적인 불안 요소를 가지고 부동산을 구매하게 된다. 리스크에 불안을 더한 투자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저런 상황들은 무시되고 개인의 무지함이나 탐욕에 대한 책임으로 '영끌족'이라는 이름으로 오롯이 조롱을 당하고 있다.


'84제곱미터'에는 30대 회사원 영끌족 성우가 등장한다. 성우는 주식이며 비트코인이며 향후에 상승할 수 있는 모든 자산과 레버리지를 동원해서 84제곱미터의 아파트를 구매한다. 하지만 꿈과 희망에 차서 아파트를 구매한 성우는 아파트값이 3억이나 떨어지면서 파혼당하고, 온갖 대출로 인한 과도한 이자, 끔찍한 층간 소음에 시달린다. 14층에 사는 성우는 자신이 층간소음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벗기 위해 윗집의 이상한 남자 진호(서현우 분)를 충돌하고 급기야 아파트 꼭대기 펜트하우스에 사는 동대표 은화(염혜란 분)와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을 둘러싼 끔찍한 음모의 실체를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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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제곱미터'는 두 가지 장르가 혼합된 것처럼 보인다. 층간소음의 범인을 쫓는 추리 스릴러와 부동산 투자에 실패한 우성을 둘러싼 인물들의 블랙코미디다. 이 영화에서 초 중반부를 책임지는 블랙코미디는 아주 성공적으로 보인다. 우성은 시작부터 조롱을 당한다. 비트코인으로 대박 난 한 직원이 퇴사를 하고, 우성은 그 비트코인을 처분해서 집에 투자했지만 처참한 실패와 함께 감당하기 어려운 이자를 내기 위해 집에서 에어컨은커녕 불도 켜지 못하고 살고 있다. 구질구질하게 회사 비품과 전기를 훔치며 살아가는 그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8월 15일 오전 8시 15분에 815%가 오를 GB코인뿐이다. 성우는 몇 년간 밤낮없이 일하며 이자를 내가 지킨 집을 시세보다 7천만 원 저렴하게 팔아서 받은 계약금 8500만 원을 가지고 인생을 건 올인을 한다.


'스물'부터 코미디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줬던 강하늘은 '84제곱미터'에서도 여지없이 백점만점의 활약을 보여준다. 온갖 고통을 짊어지고 버티는 30대 청춘의 모습을 때로는 웃기고 때로는 비참하게 보여준다. 집과 함께 침몰해 가는 인생을 붙잡고 있는 성우의 모습은 짜증 나면서도 불쌍하게 보이게 만든다. 무엇을 위해서 버티는지 모르지만 버티고 있는 나의 모습이 떠오르며 자연스럽게 이입하게 된다. 어쩌면 진정한 위로는 함께 버티고 있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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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로서 이 영화는 평가하기 쉽지 않다. 블랙코미디에 기댔기 때문에 캐릭터들의 개연성이나 캐릭터의 동기나 시나리오의 핍진성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 캐릭터들이 이상하게 행동하며 이상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결말까지도 다소 허무할 지경이다.


저 네모난 박스 중 일부를 차지하는 공간에 인생을 걸고 살아가고 있다는 허탈감이 '84제곱미터'가 주는 '부동산 공포'다.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윤리적 도덕적인 기준을 포기해 가며 아파트 가격이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에 휘둘리는 모습이 공포다. 집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한 집에 얼마 있지도 못하면서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것이 공포다. 그런 공포에 휘둘린 결과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인생을 살 것인지 알 수 없는 방황에 이르게 만든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부동산인가 동산인가 허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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