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에 대한 집착에 대하여

영화 '사마귀'를 보고

by 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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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에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 감상후 읽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영화는 하나의 세계이다. 명작 영화들은 확장성이 무한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영화 '사마귀'는 '길복순'의 세계관에 기대 탄생한 영화다. 하지만 '사마귀'는 '길복순'의 세계관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동어 반복하며 그저 그런 영화가 됐다.


'사마귀'는 모든 룰이 무너진 살인청부업계에 긴 휴가 후 컴백한 A급 킬러 사마귀(임시완 분)와 그의 훈련생 동기이자 라이벌 재이(박규영 분), 그리고 은퇴한 레전드 킬러 독고(조우진 분)가 일인자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대결을 그린 액션 영화. '길복순'의 스핀오프 작품이며 '길복순'을 감독한 변성현 감독이 각본을 맡았고 '길복순'의 조감독이었던 이태성 감독의 데뷔작이다.


'길복순'에서 시작된 '사마귀'의 세계관은 킬러들이 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가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세상이다. 그리고 그 세계관에서 킬러들의 살인은 청소부들에 의해 완벽하게 지워지고 킬러들은 엄청난 부를 가지고 세력다툼을 벌인다. 그들은 철저하게 사람을 죽이는 실력대로 대우를 받으며 자신이 속한 회사의 서열도 모두 인지하고 있다. 사람을 죽이는 능력을 공부하는 능력이거나 자본으로 바꾸면 한국 자본주의 사회랑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면이 있다.


'사마귀'와 '길복순'은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킬러들의 사랑과 희생이다. 사랑과 희생이 같은 단어는 아니지만 희생 안에는 사랑이 들어갈 여지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숭고할 때도 있지만 '사마귀'와 '길복순'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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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에서는 킬러로서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사마귀 이자 이한울의 짝사랑을 그린다. 신재이는 한순간도 이한울을 사랑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신재이는 이한울을 자신의 넘어서야만 할 장애물로만 여긴다. 그럼에도 이한울은 신재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희생한다. 자신의 킬러로서 평판이나 부는 전부 다 신재이를 향한 사랑 앞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만든다. 신재이는 이한울의 사랑을 이용하고, 후에 왜 자신의 싫어하면서도 왜 떠나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라고 비겁하게 변명을 한다.


'불한당'부터 '길복순' 그리고 '사마귀'에 이르기까지 변성현 감독은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의 사랑과 희생에 천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불한당'은 한재호(설경구 분)와 조현수(임시완 분)의 미묘한 관계와 희생을 한재호와 차민규와 사마귀는 모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도 던질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결코 숭고하지 않으며 어떻게 포장을 해도 자기만족을 위한 욕망처럼 보일 뿐이다.


심지어 '사마귀'에서는 '불한당'과 '길복순' 보다 더 후퇴했다. 독고는 사마귀를 차세대 킬러들의 대표로 생각해 키우려고 할 뿐이며, 사마귀와 신재이는 서로 다른 곳만 바라보고 있다. 신재이는 처음에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사마귀를 보지 못하고, 이후에는 철저하게 사마귀를 이용할 뿐이다. 신재이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게임 회사 CEO 벤자민 조(최현욱 분)의 돈이다. 누구 하나 서로 마주 보지 않는 상황에서 사마귀 혼자 미친놈처럼 날뛰며 신재이를 향한 사랑과 희생을 울부짖기에 영화는 누구 하나 공감하게 만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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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가 기존에 차민규가 만든 룰과 세계를 부수려고 날뛰면서 자신의 사랑을 납득시키려 했으면 어땠을까. 사마귀는 독고한테도 신재이한테도 비겁하다. 비겁한 주인공을 사랑하는 관객은 많지 않다. 사마귀는 끝까지 솔직하지 못하게 상황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는다. 수동적인 인물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그래서 그의 화려한 패션 역시도 눈을 사로잡지 못한다. 결국 사마귀는 결말까지 그렇게 아무런 색깔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행동한다.


특히나 신재이의 캐릭터는 기괴할 정도로 뒤틀려있다. 신재이가 자신의 주장대로 정말 사마귀를 넘어설 수 있다고 믿었다면 사마귀가 자신과의 승부에서 일부러 져줬을 때 모든 것을 인정하고 포기하거나 완전히 무너져야 했다. 신재이는 사마귀가 자신에게 져주는 것을 이용해 위로 올라간다. 마치 자신이 실력으로 사마귀를 넘어섰다고 정말 믿는 사람처럼. 이 시점에서 이미 사마귀의 신재이를 향한 희생은 기괴한 집착처럼 보일 뿐이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과 사랑은 진실되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마귀'는 변성현 감독의 세계관에 대한 집착의 부산물처럼 보일 뿐이다. 이태성 감독이 데뷔할 수 있는 작품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보이지 않는다. 감독이 바뀌었지만 이태성 감독의 색깔은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마귀'는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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