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에 대하여

영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를 보고

by 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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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라는 것은 큰 범주의 단어이다. 후회도 절망도 쓸쓸함도 아쉬움도 다 슬픔에 포함될 수 있다. 그렇기에 슬픔이라는 단어를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칫하면 신파로 흘러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혜영 감독은 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창작자 중에서 슬픔과 슬픔을 극복해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는 예술가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이하 괜괜괜)에 씌워진 왕관은 그 어려운 것을 해낸 김혜영 감독에 대한 찬사다.


'괜괜괜'는 한 고등학교 소녀 인영의 이야기다. 인영(이레 분)은 서울국제예술단에서 한국 무용을 하는 고등학생이다. 인영은 불의의 사고로 인해 혼자가 되고, 이런 사정을 알게 된 차가운 완벽 주의자이자 서울국제예술단 예술감독 설아(진서연 분)와 동거를 하며 살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괜괜괜'의 가장 큰 매력은 재미다. 처지가 좋지 않은 여자 미성년자가 주인공인 영화들 중에 가장 시간이 빠르게 간 영화다. 일단 영화에 필요 없는 장면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장면들은 영화의 재미에 충실하게 기여한다. 답답하거나 늘어지는 장면이나 불필요하게 보이는 장면들이 없다. 편집에 있어서 감독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가 가장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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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괜괜'의 또 다른 재미는 유머다. 김혜영 감독은 괜찮지 않은 일들을 괜찮게 만들어주는 힘이 유머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활용하고 있다. 세상이 무너질듯한 상황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은가. 특별출연으로 등장한 손석구가 연기한 동욱이 구사하는 아재 개그 역시도 남용되거나 촌스럽지 않다. 손석구 이외에 주연 배우들이 구사하는 유머들 역시도 보는 사람을 흐뭇하게 만들어준다. 한국영화에서 가장 필요한 편안한 유머가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가치가 있다.


좋은 영화는 극장을 나오면서도 긴 여운을 준다. '괜괜괜'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 속 캐릭터들은 판타지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적어도 그들이 마주하는 갈등이나 문제들은 현실에 발을 꼭 붙이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갈등이나 문제들이 완벽하게 해결되는 과정에서 현실적이지 않은 묘사도 있지만 영화를 만든 이의 의도라고 생각하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괜괜괜'이 주는 여운 중에 가장 큰 부분은 위로다. 세상 괜찮지 않은 보이는 인영과 인영을 둘러싼 인물들은 솔직하게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서로 보듬어준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유 없이 미운 이들이나 짜증 나는 이들을 아주 조금만 더 이해하고 적당히 안아주고 사는 게 조금 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호의를 덕분에 살아가는 존재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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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돋보이는 것은 이레의 연기다. 능청스러우면서도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내는 인영은 소화하기 쉬운 캐릭터가 아니다. 어느 한순간이라도 인영에 완벽하게 녹아들지 않으면 어색해 보일 수 있는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레는 그 어려운 일은 해냈다. 빌런 아닌 빌런 설아를 맡은 진서연 역시도 '독전'에서 보여준 얼굴 뒤에 따듯한 면모를 보여주며 영화를 따스하게 이끌어 간다. 영화의 에필로그에서 환하게 웃는 설아와 인영의 모습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하나도 괜찮지 않은 세상이다. 거울을 봐도 뉴스를 봐도 통장을 봐도 전혀 괜찮지 않을 때가 너무나 많다. 그래도 '괜괜괜'과 함께하고 난 뒤에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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