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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Jan 10. 2021

가난을 조롱하는 방법에 대하여

로버트 기요사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읽고

나에게 있어서 세상에 책은 두 가지 종류다 읽은 책과 절대 읽지 않을 책. 이 책은 절대 읽지 않을 책에 포함되는 책이다. 하지만 절대에도 예외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바로 선물이다. 그 사람에게 선물 받지 않았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 책이다. 이미 이 책과 함께 선물 받은 다른 책에 꽤나 실망했기 때문이다. 부와 재테크는 노력보다는 운이 작용하는 분야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이 책을 절대 읽기 싫었던 이유 중 첫번째는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라는 구분은 사실 자본주의에서 적절치 않다. 부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얻기 힘들다. 부를 경험한 이들이 다음 세대에 부를 물려줄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싫었다. 아빠들도 부를 선택하지 못했다. 가난해지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자식들은 로버트 기요사키처럼 아빠를 선택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결과를 두고 놀리고 조롱하는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한 개인이 아무리 잘났어도 시스템의 허점이나 다른 사람의 무지나 실수나 오점을 이용하지 않으면 '폭발적인' 부를 얻을 수 없다. 한국의 재벌 역시도 누구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로비와 인맥과 혼맥 등을 통해 독재정권과 결합해서 이기적으로 독과점을 한 결과물이다. 부동산 부자들 역시 비싸게 그것을 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부를 이룩할 수 있었다. 주식 부자들 역시도 기업에 투자해서 배당을 돌려받았기보다 후에 비싸게 주식을 사서 헐값에 파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돈을 벌 수 있었다. 건물주 역시 단지 자본을 소유했다는 이유로 임차인들의 고혈을 빨아 부를 끊임없이 굴릴 뿐이다. 그 자리에 들어서냐 그렇지 못하냐는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타고난 태생과 수많은 운들이 결합한 요소일 뿐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쓴 로버트 기요사키 역시 부자아빠가 가르침을 주고 전문가들을 소개해주고, 전문가들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용기를 북돋워줬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해서 현재의 부를 성취해서 거들먹거리는 책을 써서 또 한 번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결국 그들의 부는 조금의 눈치와 조금의 운이 작용한 우연의 산물이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혁신가를 제외하고 자신들의 부를 거들먹거리고 부를 이용해 갑질 가치는 없다. 혁신가들은 책을 쓰기보다는 자신의 정보와 깨달음을 소수의 가치 있는 사람들과 나누며 더 큰 혁신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운 좋은 졸부들이 그 운을 가지고 책씩이나 쓰면서 거들먹거리는 꼬락서니는 여전히 보기 싫다. 그들이 이뤄낸 부가 타인의 노동과 시간을 착취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저 괴물일 뿐이다.


물론 이 책이 내 예상을 완벽하게 벗어나진 못했다. 적어도 30대 중반의 미혼 직장인인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인생의 실마리를 준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은 확고하다. 부채가 아닌 자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자산은 적극적으로 돈을 불리는 수단 이어야 하는 것이다. 세금, 이자, 집세 등을 내는 것은 부채를 유지하는 것이지 절대 자산을 불리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결국 인생을 팔아 나라와 은행에 빚을 갚는 삶이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 아버지 역시 30년간 대기업에 충성하고 버려진 뒤에 중소기업 임원에서 국가의 계약직으로 점점 더 고용불안에 가까워지는 삶을 체감하고 있다. 아버지 인생에 화양연화는 독재정권이었기에 그들을 그리워한다. 아버지의 삶이 불운해진 것은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지 정권이 바뀌어서는 아니다. 하지만 삶이 불우해진 만큼 딱 그 깊이만큼 지금의 정권을 미워한다.


나의 삶 역시도 아버지의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아버지가 누렸던 황금기를 상대적으로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아버지의 하강곡선 보다 더욱더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것은 내가 주식을 시작하고 안하고 이 직업을 택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 시대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분명 한계가 존재하고 그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결국 낙오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낙오된 나를 가족 이외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 책에 대한 비판만 주야장천 늘어놓았지만 그럼에도 난 이 책을 인정한다. 나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돈을 그 누구보다 좋아하면서 돈 앞에서 쿨한 척한다는 것. 월급을 받는 생활에 불만을 느끼면서도 손을 놓고 있다는 것.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잡지 못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이 책을 잃으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열심히 살지 않아 마음이 괴롭다기보다는 불만이 있으면서도 불만이 없다고 자위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짜증 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수많은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 허송세월하고 있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서. 


로버트 기요사키가 말한 자산은 내가 없어도 되는 사업, 주식, 채권, 수익을 창출하는 부동산, 어음이나 차용증, 음악이나 원고 특허 등 지적 자산에서 비롯되는 로열티, 그 외에 가치를 지니고 있거나 소득을 창출하는 것들이다. 


나는 사업이나 채권이나 수익을 창출하는 부동산이나 어음이나 차용증 등을 당분간 가질 가능성은 없다. 그나마 원고나 특허 등 지적 자산을 만드는 것이 유일한 자산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동기와 방법을 한 책에서 동시에 발견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문학에서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여러 동기를 부여해주지만 방법을 깨닫게 해주지 않는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지적 자산을 만들기 위해 7년간 직장에서 내가 해왔던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다. 칭찬을 많이 받아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잘 해내고 있지는 못했다. 그저 임기응변과 주변의 도움으로 그때그때를 넘기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내가 한 일은 내 이름으로 차곡차곡 쌓여있기 때문에 카테고리만 잘 나눈다면 충분히 지적 자산으로 바꿔서 작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공상을 해본다.


로버트가 말하는 재산이란 사람이 앞으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내가 오늘 일을 그만둔다면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 부분에서 나는 혼자서 산다면 죽을 때까지 걱정이 없다. 나 역시 상당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대신 결혼과 자식을 포기해야 한다. 적어도 포기하기 위한 선택권을 갖기 위해서 지금 보다 조금 더 부를 얻을 필요는 있다. 선택을 포기당하는 것만큼이나 슬픈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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