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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 Jul 19. 2022

붕괴된 사람에 대하여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영화 관람 후에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헤어질 결심'은 훌륭한 멜로다. 품위 있고 치명적인 주인공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기나긴 모험을 떠난다. 그리고 그 모험의 끝은 한 없는 바다와 파도다. 사격장에서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매력적이었다. 해준이 쏜 그 탄환은 내 마음 확실하게 관통했다.


'헤어질 결심' 유능한 형사인 해준(박해일 분)이 산에서 떨어져 죽은 의문의 남자 사건을 맡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해준은 죽은 남자의 부인 이자 중국인인 서래(탕웨이 분)를 만난다. 해준은 처음 서래를 심문할 때부터 그의 매력에 빠져든다. 해준은 서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비싼 횟집의 초밥을 사준다. 수사를 핑계 삼아 밤새 그를 관찰하고 또 관찰하면서 깊은 사랑에 빠진다. 서래 역시 해준의 관심을 느끼고 점점 더 가까워진다.


이 영화에서는 시선이 곧 사랑이다. 해준은 아내인 정안(이정현 분)과 성관계를 하면서도 바라보지 않는다. 두 사람의 시선은 늘 어긋나 있다. 밥상에 앉아서도 해준과 정안은 대화를 나누지만 찌개만 바라본다. 그렇지만 해준은 서래만은 지독하게 바라본다. 서래가 보든 보지 않든 서래를 차분하게 바라본다. 사랑의 시작은 관찰이며 관찰하면서 사랑이 더욱더 깊어진다. 바라보기 싫어지는 것이 이별의 시작이다.


해준은 서래가 중국에서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확인하고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 밤중에 서래를 찾아간다. 서래는 어머니를 죽였다고 순순히 해준에게 자백한다. 해준은 서래를 의심하지 않을 증거를 찾아 헤맨다. 서래가 준 편지를 힌트로 유서를 찾아낸다. 해준은 서래를 만나 기나긴 불면의 밤에서 벗어나게 된다. 해준은 서래의 숨을 느끼면서 곤하게 잠이 든다.


유능한 형사인 해준은 서래가 남편을 죽였다는 증거를 찾아내고 절망한다. 그리고 또다시 서래를 찾아간다. 자신의 애정이 이용당하고 배신 당했다고 느낀 해준은 서래에게 상처를 주려고 애쓴다. 해준은 서래에게 자신의 품위는 자부심이었으며, 여자에 미쳐서 붕괴됐다고 말하면서 서래를 외면한다. 서래는 해준에게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라"라고 가슴 아파한다. 배신 당했다는 생각에 복수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해준에게는 서래에 대한 깊은 사랑이었다.


안개의 도시 이포에서 해준과 서래는 402일 만에 우연히 시장에서 다시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아내와 남편을 둔 부부다. 또 다시 범죄자의 아내가 된 서래는 다시 한 번 남편에게 이용당한다. 안타깝게도 서래의 두 번째 남편 역시도 살해당한다. 서래의 두 번째 남편 살해 사건의 담당 형사 역시 해준이다. 서래를 다시 만나 활력을 되찾은 해준은 서래를 남편을 죽인 용의자로 의심하고 체포한다. 1시간에 47번이나 깨는 해준은 서래와 경찰차에 실려 오면서 또다시 잠이 든다. 해준의 자부심은 붕괴 됐지만 그의 사랑은 붕괴 되지 않았다. 해준은 여전히 서래를 가슴 깊이 사랑하고 있다.


서래는 붕괴된 해준을 되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서래는 첫 번째 남편을 죽인 증거가 담겨있는 할머니의 휴대폰을 해준에게 돌려준다. 그러면서 해준에게 어머니의 유골을 호미산에 뿌려달라고 부탁한다. 이별을 예감하고 마음의 준비를 마친 서래는 해준에게 키스한다.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알지만 되돌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서래와 그 마음을 받지 못하는 해준의 키스는 그래서 더 아름답다. 대가 없는 희생이라는 폭포에 몸을 던지는 사랑만큼 아름 다운 것은 없다.

해준은 여전히 서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고 결국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된다. 서래는 두 번째 남편을 죽이지 않았지만 남편을 죽이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을 살해했다. 서래가 또 다른 사람을 살해한 이유는 두 번째 남편 임호신이 해준과 자신의 불륜 사실을 밝히겠다고 협박해서였다. 서래는 끝가지 해준의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서 사라지기로 마음먹는다. 서래는 이 사실을 해준에게 알리고 해변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간다. '박쥐'에서 자살을 선택한 상현과 태주처럼. 서래는 그렇게 사리져버리고 만다.


이 영화가 완벽한 멜로로 느껴지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 지독하게 사랑을 확인하고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서래는 가정도 형사로서 자부심도 잃은 해준을 살게 하기 위해 죗값을 치르는 대신 사라지는 것을 택한다.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자신을 찾아 헤매며 살기 원한다. 완성되지 않는 사랑만큼 가슴에 남는 것이 있을까. 해준은 아마 세월이 오래 지나도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서래를 찾을 것이다.


사실 붕괴라는 거창한 표현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면서 사람은 변한다.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사랑이 아니다. 붕괴되면서 변하고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인간이기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여운이 더 오래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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